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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무서워요" 애견카페서 골병드는 개들
"애들이 무서워요" 애견카페서 골병드는 개들
  •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승인 2016.01.1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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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미지투데이)© News1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지난 9일 경기도 일산에 위치한 한 애견카페. 10여 마리의 개가 상주하고 있는 이 카페는 손님이 많기로 유명하다. 리트리버부터 푸들, 웰시코기에 이르기까지 개의 종류도 다양하다. 그런데 최근 이 애견카페를 찾는 손님은 물론 사장에게도 말 못할 고민이 생겼다.

A(28)씨는 수년 전부터 주말이면 반려견과 함께 이 애견카페를 찾는 단골이다. 평일엔 종일 혼자서 집을 지키는 반려견과 주말이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는 A씨에게 애견카페는 최적의 장소였다. 다른 개들과 함께 신나게 뛰노는 반려견을 보고 있으면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가셨다. 하지만 A씨는 몇 달 전부터 이곳을 잘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애견카페가 키즈카페처럼 변했기 때문이다.

A씨는 "얼마전부터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이 이곳을 많이 찾기 시작했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부모들은 마치 동물체험 놀이터에 온 것처럼 개들을 만지게 한다"고 했다. 그는 "개와 교감을 나누는 건 좋지만 개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제지하는 사람이 없는 게 문제"라면서 "개 꼬리를 잡아당기고 구석에서 쉬고 있는 개에 올라타 몸을 흔드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작은 개를 들었다가 던지듯 내려놓으며 못살게 구는 아이도 있다"고 했다.

기자가 애견카페를 방문한 날도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유아부터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보였다. 그런데 애견카페의 일부 개는 사람을 대하는 걸 불편하게 느끼는 듯했다. 자신을 거칠게 다루는 아이들을 피해 숨거나 도망다니는 모습도 목격됐다. 어떤 개는 자기를 따라다니며 꼬리를 잡아당기는 한 아이를 향해 무섭게 짖어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의 행동을 말리는 이는 없었다.

애견카페가 아이들 놀이터로 변하면서 인터넷에서도 쉽게 반려견 보호자들의 볼멘소리를 찾아볼 수 있다. 한 네티즌은 포털사이트에 "5개월 된 푸들을 데리고 애견카페를 갔는데 8세 정도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콩콩 뛰며 개들을 건너다니더니 결국 우리 개를 밟았다"면서 "우리 개는 낑낑거리며 누워 있는데 애 엄마는 태평하게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란 말만 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애견카페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는 한 네티즌은 "5~9세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엄마들이 엄청 많다. 아이들을 풀어놓고 엄마들끼리 음료를 마시곤 한다"며 "아무리 통제를 해도 아이들은 인형 같은 개가 움직이니 신기한지 개한테 소리를 지르고 침을 뱉기도 하고 일부러 발이나 꼬리를 밟기도 한다"고 했다.

애견카페 사장들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애견카페를 운영하는 B씨는 "손님이 데리고 온 개를 한 아이가 괴롭혀 아이 엄마와 반려견 보호자간 다툼이 있기도 했다"면서 "개를 데리고 예전부터 이곳을 찾던 단골들은 아이들이 개를 막 대하고 괴롭힌다며 항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이들도 손님이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애견카페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부터다. 지난해 7월 동물보호단체 카라가 실시한 '동물카페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재 개, 고양이 등이 상주하며 음료나 음식을 팔고 있는 동물카페는 총 288개가 있다. 이 중 개만을 다루는 애견카페는 66%(191개).

반려견과 보호자가 함께 방문할 수 있는 데다 반려견을 키우지 않는 이들도 개를 보고 만질 수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애견카페는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방학 땐 자녀를 동반한 학부모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진다.

지난해 7월 '동물카페법'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입법 정책토론회. (자료사진) © News1

문제는 앞선 사례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개를 맘껏 만질 수 있는 곳에 온 아이들이 개를 괴롭히고 학대해도 막을 방법이 전혀 없다는 데 있다. 반대로 스트레스를 받은 반려견들이 아이들을 공격하는 사고가 발생해도 책임 소재를 가릴 수 있는 가이드라인도 없다.

실제로 지난해 6월 애견 카페를 방문한 7세 남자아이가 개에게 허벅지를 물리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카페 주인은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돌발사고가 있을 수 있으니까 아이들은 뛰거나 소리를 지르면 안 되고 보호자가 계속 동행해야 한다는 게 이용안내에 다 나와 있다"고 했다.

애견카페 관리상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동물 사육공간에 따른 개체수 조절이나 위생관리, 건강관리 등을 규제할 방법도 없다.

애견카페 등 동물카페는 현재 일반카페와 마찬가지로 휴게(혹은 일반)음식점으로 영업신고를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확한 수를 파악하기 힘들 뿐더러 전문지식을 갖지 않은 사람이 업장을 여는 사례도 다반사다.

이처럼 늘어나는 애견카페 수 만큼 부작용도 심각해지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동물카페법(동물보호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반려동물과 관련된 영업의 종류에 동물카페(동물동반휴게음식점업), 동물보관·미용 등의 서비스업종 등을 포함하고, 영업자는 정기적으로 교육을 받도록 해 동물보호 및 관리·감독을 강화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동물보호단체 카라(대표 임순례)의 전진경 상임이사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동물을 만지고 체험하면서 교육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면서 "동물과 함께 생활하면서 동물의 감정을 이해하고 관찰하며 동물도 희로애락이 있는 걸 알고 책임감을 갖고 돌봐야 한다는 걸 깨달을 때 교육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전 이사는 이어 "아이들에겐 이례적인 즐거움이 될 수는 있지만 그걸 반복적으로 당하는 동물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서 "하루빨리 동물카페법이 통과해 관리기준이 명확해져야 하고 관련 종사자들의 교육도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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