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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지만 고기 취급받는 '공장돼지'의 슬픔
살아 있지만 고기 취급받는 '공장돼지'의 슬픔
  •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승인 2016.03.1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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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좁은 축사에서 자라는 돼지들. (사진 유튜브 캡처)© News1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지난 3일은 삼겹살데이였다. 3이 두 번 겹친 이 날은 2003년 구제역 파동으로 큰 피해를 입은 양돈 농가를 돕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이벤트 데이다. 늘 그랬듯 이날 돼지고기는 날개 돋친 듯 팔렸고, 삼겹살집은 가게를 찾은 손님들로 문정성시를 이뤘다. 홈플러스에 따르면 삼겹살데이가 들어간 주간은 평균 삼겹살의 판매량이 평소보다 40% 가량 많다.

돼지고기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고기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한 해에만 1600만마리의 돼지가 국내에서 도축됐다.

특히 한국에서의 돼지고기 소비는 한국인 특유의 '삼겹살 사랑'의 영향이 크다. 연간 삼겹살 소비량을 보면 한국인이 얼마나 삼겹살을 좋아하는지 실감할 수 있다. 한국인은 연간 1인당 20.9kg의 삼겹살을 먹는다. 이는 전체 고기 소비량의 절반에 육박한다.

이렇게 사람들은 많은 양의 돼지고기를 소비하며 돼지의 '속살'을 보지만 살아 있는 돼지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미디어를 통하지 않고선 평생 돼지 한 마리 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눈앞에서 보기 힘든 만큼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는 삼겹살 한 점이 꿀꿀 거리는 돼지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하는, 그래서 돼지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많을 리 만무하다.

항생제를 맞는 돼지 (유튜브 영상 캡처) © News1

동물보호단체는 돼지야말로 수많은 육식용 동물 중에서 가장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동물 중 하나라고 입을 모은다. 공장식 축산 방식으로 돼지를 키우기 때문이다.

공장식 축사에서 자라는 돼지들의 삶은 끔찍하기 짝이없다. 새끼를 낳는 게 '임무'인 어미 돼지는 몸을 돌릴 수도 없는 좁은 분만틀인 스톨(금속제 틀)에 갇혀 인공수정을 통해 일평생 임신과 출산을 반복한다. 그러다 출산을 할 수 없게 되면 곧바로 도축된다. 스톨 안에선 몸을 뒤척일 수도, 한 걸음을 뗄 수도 없다. 폭이 60cm, 길이가 210cm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어미 돼지에게에서 태어난 고기용 돼지는 태어난 지 6개월 정도가 되면 도축된다. 죽을 때까지의 삶도 온전하진 않다. 사람들은 비정상적으로 자라면서 발생하는 정신적 이상행동에 대비해 새끼 돼지의 송곳니와 꼬리를 자른다. 또 '맛'을 위해 마취도 없이 거세를 한다.

돼지는 본래 활발하게 움직이기 좋아하는 동물이다. 또 돼지는 분변을 가려 누울 정도로 깨끗한 걸 좋아하는 동물이다. 이런 동물을 몸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좁은 곳에 가둬 키우다보니 비위생적인 환경 및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돼지의 면역력은 극도로 떨어지고, 바이러스의 확산 경로가 되기도 한다. 항생제 남용이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자란 돼지는 인간의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데 있다.

동물보호단체 카라(대표 임순례)에 따르면 한국의 공장식 축산 농가에서 돼지에게 주사하는 항생제의 양은 선진국의 10배가 넘는다. 일부 전문가들은 돼지고기 속의 항생제가 고기를 섭취한 사람들의 항생제 내성을 높이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 지구 온실가스의 18%가 공장식 축산을 통해 나오고 있으며, 자동차 사용을 절반으로 줄이는 것보다 고기 소비를 절반으로 줄이는 게 지구 온난화를 막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내용의 보고도 있다. 공장식 축산이 인류의 생존과도 관련이 있는 셈이다.

카라에 따르면 1970년 국민 1인당 5.2kg의 고기를 먹던 한국의 육류 소비는 2013년 1인당 무려 42.7kg으로 늘어났다. 늘어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소규모의 축산 농가들은 도태되고 소수의 대형화·기업화된 공장식 축산이 대신 자리 잡았다.

전진경 카라 이사는 "공장식 축산은 사실상 대규모 동물 학대이자 고문행위"라고 했다.

전 이사는 "돼지는 사람들이 아는 것과는 달리 매우 영리하고 무리를 지어 넓은 영역을 탐색하며 살아가는 사회적인 동물"이라면서 "이런 동물을 자신의 몸도 돌릴 수 없는 환경에서 키우는 공장식 축산은 대규모 동물 학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전 이사는 "유럽연합은 농장동물의 5대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돼지 스톨을 금지하고 있다"며 "한국도 하루빨리 스톨 철폐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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