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07:28 (금)
"개도 유행 타요"… '펫방'이 만들어 낸 기이한 현상
"개도 유행 타요"… '펫방'이 만들어 낸 기이한 현상
  •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승인 2016.03.31 14: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채널A '개밥 주는 남자'에 등장하는 웰시코기들. (개밥 주는 남자 페이스북 캡처) © News1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주말 밤 한 TV 프로그램. 유명 개그맨이 함께 사는 반려견들과 함께 스튜디오에 나왔다. 그는 아내나 딸보다 개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행복하다고 말해왔던 ‘개 바보’ 개그맨이다. 이날 방송에선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강아지 여섯 마리가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가 등장한 장면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방송 방식이 신선한 덕분도 있었지만 아직 눈도 채 뜨지 못한 강아지들의 모습이 시청자들의 눈을 훔쳤다. 강아지들의 인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방송이 끝나자 각종 포털사이트에서 강아지들의 견종인 ‘화이트 프랜치 불독’이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먹방’, ‘쿡방’에 이어 ‘펫방’이 방송가를 휩쓸고 있다. tvN의 ‘삼시세끼’에 등장한 밍키와 산체, 벌이가 큰 인기를 끌자 방송가는 앞 다퉈 반려동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방송들을 쏟아냈다. 채널A의 ‘개밥 주는 남자’를 비롯해 JTBC의 ‘마리와 나’, EBS 1TV의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등이 주요 펫방 프로그램이다.

‘펫방’이 큰 인기를 얻을 것이라는 방송가 예측은 맞아 떨어졌다.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한 시대의 흐름을 잘 읽은 결과였다. 특히 채널A의 ‘개밥 주는 남자’는 30대 여성 시청자 층에서 동시간대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들을 따돌리고 시청률 1위(지난 1월 1일 닐슨 코리아 전국유료가구 기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반려동물이 등장하는 TV프로그램의 인기를 끌 때마다 펫숍과 유기동물 보호소에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TV프로그램에서 한 반려견이 등장해 인기를 끌면 펫숍 등에서 해당 견종의 판매량이 급증한다. 또 1, 2년이 지나면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이 견종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한 동물병원의 관계자는 “‘삼시세끼’가 방영될 땐 장모치와와를 분양받고 싶다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라며 “지금은 ‘개밥 주는 남자’에 나오는 웰시코기에 대한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주 오래 전이지만 ‘1박 2일’에 출연해 인기를 끌었던 상근이(그레이트 피레니즈)는 대형견인데도 불구하고 분양을 문의하는 사람이 늘어 놀란 적이 있었다”며 “방송엔 귀엽고 예쁜 모습만 비치니 덜컥 구입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방송에 나온 반려동물과 같은 종을 분양 받은 뒤 책임감 있게 끝까지 키우지 않고 쉽게 중도에 포기한다는 데 있다. 십수년을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점이나 병원비, 사료비 등 경제적 부담은 간과한 채 반려동물을 구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들은 버려지는 반려동물의 종을 보면 반려동물 유행의 흐름을 알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반려동물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1, 2년이 지나면 방송에 나왔던 견종들이 보호소에는 많이 입소한다.

박소연 동물보호단체 케어 대표는 “그나마 장모치와와나 화이트 포메라니안처럼 작은 견종은 귀엽고 예쁘니 지인을 주는 경우도 많고 보호소에 들어와도 금방 입양되지만 상근이처럼 대형견이 문제”라며 “대형견이 유행하면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난다. 유기견이 돼 보호소에 굉장히 많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반려동물을 소중한 생명으로 인식하지 않는 미성숙한 문화를 꼬집었다. 그는 “반려동물을 정말 사랑하고 잘 아는 사람은 견종을 잘 따지지 않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특히 유행에 민감하고 순혈종을 무분별하게 선호한다”면서 “반려동물을 장난감처럼 생각하지 않는 반려동물 문화가 하루빨리 정착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