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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만 보면 바들바들…'학대 트라우마' 겪는 반려견들
사람만 보면 바들바들…'학대 트라우마' 겪는 반려견들
  •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승인 2016.04.2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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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보호자에게 심한 구타를 당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바다. © News1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위치한 동물보호단체 팅커벨프로젝트 입양센터에는 마음이 아픈 믹스견 한 마리가 살고 있다. 개 이름은 바다. 바다는 사람이 다가가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구석으로 도망가 몸을 작게 웅크린다. 급하게 숨을 곳을 찾는 것이다. 구석에 몸을 밀어 넣고는 온몸을 바들바들 떤다.

바다가 이처럼 극심한 불안증을 보이는 까닭은 학대 경험 때문이다. 팅커벨프로젝트 관계자는 "바다가 주인에게 맞다가 몸부림치며 주인을 문 적이 있는데 화가 난 주인이 바다가 기절할 때까지 때렸다"고 귀띔했다. 그 이후로 바다는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입양센터에 온 지 벌써 10개월이나 됐지만 친구들과 재밌게 놀다가도 사람만 보면 구석으로 도망가 바르르 떤다.

팅커벨프로젝트의 훈련사는 "입양센터에서 함께 지내던 친구가 입양을 가도, 새 친구가 입소를 해도, 지내는 방이 바뀌어도 바다에게는 모두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그만큼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면서 "환경 변화가 없는 가정에서 쭉 돌보는 것만이 바다의 트라우마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사람의 손길을 피해 구석으로 도망을 간 바다. © News1

한국은 동물학대에 매우 관대한 나라다. 밥 먹듯 맞는 동물이 넘쳐난다. 동물보호단체 케어에 따르면 지난해 동안 이 단체가 제보 받은 동물 학대 건수는 1836건이나 된다. 다른 동물보호단체가 접수한 학대 건수를 포함하지 않은 점, 신고 되지 않은 학대가 훨씬 많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에 동물학대가 얼마나 만연한지 짐작할 수 있다.

동물을 생명체가 아닌 소유물로 간주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학대당하는 개들은 바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케어 답십리입양센터 김은일 팀장은 학대당한 개가 정신적으로 얼마나 큰 트라우마를 겪는지 알면 말 못하는 개라도 함부로 때리진 못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김 팀장은 가해자였던 전 보호자에게 지속적으로 구타를 당한 호동이라는 개의 사례를 언급했다. 호동이는 전 보호자로부터 얼마나 맞았는지 이빨이 모두 빠진 것은 물론 두개골이 함몰되고 양쪽 시력마저 잃었다. 하지만 호동이는 사람을 좋아한다. 누군가 다가가면 만져달라는 뜻으로 발을 내민다.

김 팀장은 "이처럼 한없이 온순한 호동이도 50, 60대 남성과 쇠 냄새만 맡으면 공격성을 드러낸다. 이가 없는데도 철창을 잇몸으로 물어뜯는다"면서 "중년의 전 보호자로부터 쇠파이프로 맞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은 트라우마가 봉사자들에게 애교를 부리다가도 50, 60대 남성만 보면 돌변하는 개로 호동이를 만든 셈이다.

김 팀장은 또 다른 개의 사례도 소개했다. 그는 "평상시엔 꼬리를 치며 애교를 잘 부리는 호두는 입 쪽을 만지려고만 해도 소스라치게 놀란다"면서 "낚싯줄에 입이 묶였다가 최근 구조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 보호자에게 심한 학대를 당해 시력을 잃은 호동이. (사진 케어 제공) © News1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는 반려견들의 트라우마는 훈련과 교육을 통해서도 고치기 쉽지 않다. 사랑을 듬뿍 주고 관심을 가져주면 증세가 차츰 나아지긴 하지만 완치는 어렵다.

김 팀장은 "사람은 대화를 통해 '이런 건 너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라는 걸 인식시킬 수 있지만 개들은 그렇지 않다"면서 "개가 스스로 터득할 때까지는 사람보다 몇 배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이어 "바로 좋아지진 않지만 '우린 널 해치려고 하지 않아'라는 진심을 계속해서 보여주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나아지는 개들도 있다"면서 "그런 순화작업을 통해 좋아지는 개가 있기 때문에 학대받은 개들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렇게 한 생명에게 지워지지 않는 육체적·정신적 상처를 안겨도 한국에선 처벌받지 않거나 벌금형에 그친다는 데 있다.

황동열 팅커벨프로젝트 대표는 "동물학대 현장을 적발해도 처벌이 이뤄지지 않거나 벌금형을 선고하는 게 한국의 현실"이라면서 "동물학대자를 엄격하게 처벌하고 동물보호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강력하고 구체적으로 법을 개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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