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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졌던 루나와 함께 꽃길을 걷고 싶어요”
“버려졌던 루나와 함께 꽃길을 걷고 싶어요”
  •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승인 2016.05.0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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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보호자 최윤정씨 집에서 밝게 웃고 있는 루나. (사진 최씨 제공)© News1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어린이날을 축하라도 하는 것처럼 볕이 따사롭던 지난 5일. 유기동물이 모여 있는 서울 강서구 팅커벨프로젝트 입양센터에선 여느 때처럼 유기견 10여 마리가 활기찬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한가로이 앉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을 맞고 있는 믹스견 성산이, 배가 고픈지 한편에 놓인 사료를 야금야금 먹고 있는 스피츠 희철이, 그리고 오늘따라 무척 기분이 좋아 보이는 스피츠 루나까지. 그런데 여기저기 뛰어 다니며 친구들에게 장난을 거는 루나를 바라보는 황동열 팅커벨프로젝트 대표의 표정이 평소와 사뭇 달라 보였다.

“루나야, 오늘 너 입양 가는 날이야. 이제 여기서 안 지내고 엄마 있는 집에 가서 사랑 듬뿍 받으면서 살 거야. 가서 잘 살아야해. 예쁨 많이 받고 행복하게 잘 살아야해.”

황 대표가 루나를 품에 안고 작별인사를 한다. 루나는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황 대표의 손을 핥아댄다.

루나는 지난달 20일 <가족의 발견 1화> ‘털이 많이 빠진다는 이유로 버려진 새하얀 강아지’ 편에 소개된 두 살짜리 암컷 스피츠다.

‘퍼피밀(강아지공장)’에서 태어난 루나는 젖을 떼기도 전에 애견숍에 팔려간 뒤 애견숍 진열장에서 새 가족을 만났다. 그런데 행복도 잠시, 루나는 털이 많이 빠진다는 이유로 버려졌다.

황 대표에 따르면 루나의 사연이 기사로 나간 뒤 루나를 입양하고 싶다는 사람들의 문의가 이어졌다. 황 대표와 팅커벨프로젝트 회원들은 그 중 루나와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입양자를 선정했다. 그렇게 루나는 1년 6개월간의 기다림 끝에 새 가족을 만났다.

“정이 뭔지…. 오늘따라 루나를 구조했던 그 날이 많이 생각나네요.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공사장에서 이 조그마한 강아지가 새까맣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거든요. 이제 좋은 곳으로 입양을 가게 돼서 정말 기쁘지만 한편으론 아쉬운 마음도 있어요. 시원섭섭합니다. 물론 좋은 마음이 더 크긴 하지만요. 유기견들에겐 입양센터에서의 생활보다 자기를 사랑해주는 가족을 만나는 게 더 좋죠.”

서울 강서구 팅커벨프로젝트 입양센터에서 최윤정씨 품에 안겨 있는 루나. / 천선휴 기자© News1

루나의 새로운 인생을 함께할 입양자는 인천 남구에 사는 최윤정씨(여·39). 유기묘였던 번개(수컷·5), 꽃지(암컷·4)와 함께 생활하는 ‘집사’다.

평소 유기동물에 관심이 많았던 최씨는 4년 전 주인이 뇌출혈로 쓰러지는 바람에 갈 곳을 잃은 부녀(父女) 고양이 번개와 꽃지를 입양해 키우고 있다. 그러다 1년 전부터 유기견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 유기견을 입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루나의 사연이 소개된 기사를 읽게 됐다.

“주말이면 유기견 입양행사에 가기도 하고 인터넷 검색도 하면서 유기견들에 대한 정보를 찾곤 했어요. 그러다 최근 ‘이제 맘의 준비가 됐으니 유기견을 입양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죠. 그런데 지난 2일 루나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됐어요. 루나를 보자마자 당장 입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예쁜 아이를 왜 버렸는지, 지금까지 왜 가족이 나타나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였어요. 너무 사랑스럽더라고요.”

최씨는 루나의 기사를 본 그날 퇴근 후 곧바로 루나를 보려고 입양센터를 찾았다. 당장 데려가고 싶었지만 입양을 원하는 사람은 최씨 말고도 4명이 더 있었다.

“입양대기자 중 누가 루나를 입양하는 게 가장 알맞은지 판단한 뒤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어요. 4일 저녁 연락이 왔는데, 그때까지 어찌나 가슴이 조마조마하던지…. 입양자로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고 그날 바로 루나에게 필요한 물품을 사러 갔어요. 앞으로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날을 생각하니 설레고 가슴이 벅차오르더라고요.”

루나는 자기를 데리고 갈 새로운 가족이라는 걸 아는 건지 신기하게도 최씨 품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연신 뽀뽀를 하는가 하면 다른 유기견이 최씨에게 다가가려면 짖어대며 쫓아내기까지 했다. 루나가 처음 보이는 모습이었다.

루나가 새 집으로 떠날 시간이 되자 입양센터 간사의 손길이 분주해졌다. 루나가 먹었던 사료와 간식, 루나의 병원기록 등이 담긴 가방이 최씨에게 전해졌다.

최씨는 루나에게 준비해온 알록달록한 목줄을 채웠다. 루나는 최씨와 함께 가벼운 발걸음으로 센터를 나섰다. 그렇게 5월 햇살처럼 따뜻하고 새로운 삶이 루나에게 열렸다.

“루나와 집에 가면 가장 먼저 집 앞 놀이터를 소개해 줄 거예요.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그 길을 루나랑 걷고 싶어요. 루나와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다른 유기견들도 하루빨리 새 가족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최윤정씨 집 앞 놀이터에서 산책을 즐기고 있는 루나. (사진 최씨 제공)©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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