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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스쿨]세상을 볼 수 없었던 장애견 '사랑이'
[펫스쿨]세상을 볼 수 없었던 장애견 '사랑이'
  • (서울=뉴스1) 라이프팀
  • 승인 2016.05.1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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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견 사랑이. © News1

(서울=뉴스1) 라이프팀 = 시각장애견 사랑이에 대한 이야기다.

믹스 진도견 사랑이는 개농장의 번식견이었다. 6년 전 동물보호단체 동행(동물과 함께 행복한 세상)에 의해 구조될 당시 사랑이는 한 살의 나이에 새끼를 배고 있었다.

그런데 사랑이는 그 새끼들을 모두 잃었다. 개농장에서 살포한 독성이 강한 살충제를 흡입하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새끼들을 모두 사산한 것이다.

게다가 사랑이는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시각장애견이었다. 홍채가 없이 태어나 단 한 번도 세상을 보지 못했다.

당시 동행 관계자가 "사랑이는 시각장애견이라 입양을 가기 어려울 것 같다"며 입양을 권유했고,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 사랑이와 가족이 됐다.

사랑이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일이었다.

사랑이는 평생 뜬장(배설물을 쉽게 처리하기 위해 바닥에서 띄워 설치한 철창) 밖을 벗어나본 적이 없었다. 비좁은 철창에 갇혀 지냈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 것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사랑이에게 자유로운 세상은 오히려 장애물이 됐다.

모든 동물은 본능적으로 안전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먼저 사랑이가 새로운 환경에서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모든 행동을 조심스럽게 했다. 특히 소리에 예민한 사랑이를 위해 걸을 때도 신경을 썼다. 또 TV를 작게 틀어 놓고 소리에 적응할 수 있게 했다. 사료를 급여할 땐 사랑이의 이름을 불러 이름을 가르쳤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랑이가 장애물에 부딪치는 일을 막기 위해 나무 난간에 놓여 있던 물건들을 모두 없앴다. 혹시라도 물건에 부딪쳐 트라우마가 생기기라도 하는 날엔 움직임을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이가 움직이는 반경은 고작 1~2m 남짓이었다. 눈이 보이는 개라면 몇 분 만에 적응했겠지만 앞이 안보이고 뜬장에 갇혀 살아온 사랑이에겐 더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3일이 지나자 사랑이의 행동반경이 넓어졌다. 난간 기둥에 가까워질 땐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기둥에서 멀어지면 걸음이 빨라졌다. 난간이 있다는 걸 인지한 듯했다.

보통 동물들은 한 감각기관에 장애가 있으면 스스로 다른 감각기관을 월등하게 발달시키는데, 사랑이는 후각에 많은 의존을 하는 것 같았다.

난간 기둥에서 나는 나무 냄새를 맡아 거리를 예측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배변 보는 장소가 난간 끝 모서리 부분인 걸로 볼 때 난간이 어디까지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또 냄새의 정도로 사람과 일정 간격을 유지하기까지 했다. 사랑이는 환경 적응을 완벽하게 한 듯했다.



문제는 배변이었다. 환경 적응이 끝난 만큼 마당에서 배변을 보는 교육을 해야 했다.

사랑이가 마당에 나가는 데에 큰 도움을 준 건 함께 살고 있는 반려견 산들이(믹스 리트리버)와 볼트(미니어쳐 핀셔)였다. 사회성이 좋은 산들이와 볼트는 사랑이가 마당으로 갈 수 있도록 길을 안내했고, 배변 장소도 알려줬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배변교육이 완벽하게 돼 있던 산들이와 볼트는 사랑이에게 좋은 도우미가 되기에 충분했다.

마당으로 나가는 좁은 계단통로는 볼트가 안내했다. 작은 몸과 느린 움직임이 큰 도움이 됐다. 사랑이는 후각을 이용해 볼트가 가는 길을 추적했다.

사랑이의 배변시간을 미리 체크한 뒤 그 시간에 산들이, 볼트, 사랑이를 함께 마당에 나가도록 했다. 사랑이는 자연스럽게 친구들을 따라 마당에서 대소변을 봤다.

앞은 볼 수 없지만 자기만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사랑이.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장애견들에게 동정심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들의 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준우 동물행동심리 전문가.©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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