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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탁구의 전설' 정현숙이 노령견 입양한 사연
'한국탁구의 전설' 정현숙이 노령견 입양한 사연
  •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승인 2016.06.23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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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숙 대한탁구협회 부회장과 설이.© News1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22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위치한 팅커벨프로젝트 입양센터.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김없이 가족을 기다리는 반려견들이 왈왈거리며 뛰어나와 기자를 반긴다. 여느 때처럼 껑충껑충 뛰며 반가움을 표시하는 성산이(믹스견)와 그 뒤에서 '반갑다'는 눈빛을 보내는 스피츠 희철이, 그리고 '아빠' 황동열 팅커벨프로젝트 대표를 따라와 센터 친구들의 곁을 지키고 있는 순심이(시추)까지.

그런데 이날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개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입양센터 터줏대감인 시추 믹스견 설이(8세 추정·암컷)다.

팅커벨프로젝트 입양센터가 생길 때부터 지금까지 이곳을 지키고 있는 설이는 평소 손님이 방문해도 먼발치에서 살짝 혀를 내민 채 멀뚱멀뚱 지켜보기만 하는 개다. 그저 눈빛으로만 반가움을 전할 뿐 그 누구에게도 달려드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날따라 설이의 색다른 행동은 계속됐다. 마치 누구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센터의 문 앞을 떠나질 않았다. 친구들을 따라 돌아다니다가도 이따금씩 문 쪽을 바라봤다. 마치 자신을 데리고 갈 가족이 온다는 걸 아는 것처럼.

문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설이. © News1

지난 6일 '가족의 발견(犬)' 8화('기침을 했다는 이유로 파양된 강아지')에서 소개한 설이가 마침내 가족을 찾았다.

2014년 4월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구조돼 팅커벨프로젝트 입양센터에 온 설이는 한 번 파양의 아픔을 겪었다. 설이를 입양한 부부가 이튿날 '간밤에 설이가 기침을 했다'’는 이유로 설이를 다시 센터로 돌려보냈다.

그 뒤로 2년간 설이를 보듬어줄 가족은 나타나지 않았다. 설이의 예쁜 외모에 관심을 보이다가도 나이를 듣곤 손사래를 치기 일쑤였다. 설이는 점점 더 마음을 닫았다.

그런데 설이의 나이도, 다친 마음도 모두 보듬어주고 싶다는 이가 나타났다. '한국탁구의 전설'로 불리는 정현숙씨(64)가 그 주인공이다.

정씨는 1973년 4월 9일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에서 김순옥, 박미라, 이에리사 선수와 함께 한국 구기 종목 사상 첫 금메달 따낸 한국 탁구계의 '살아있는 역사'다. 입국 후 카퍼레이드를 벌일 정도로 열렬한 환영을 받았던 '국민 영웅' 정씨는 현재 대한탁구협회 부회장과 여성탁구연맹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설이가 정 부회장에게 애교를 부리고 있는 모습. © News1

정 부회장이 유기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지난해부터다. 개를 좋아하는 어머니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개와 함께 생활한 정 부회장은 지난해 15년간 함께했던 반려견을 떠나보냈다. 슬픈 마음을 추스른 뒤, 정 부회장의 관심은 자연스레 가여운 유기견들에게 향하게 됐다.

"정든 개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유기견 관련 기사들을 보면서 유기견을 입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한동안 입양 생각을 못하다가 최근에 백설이 기사를 보고 입양센터를 찾게 됐죠.”

정 부회장은 곱슬이 몰티즈 백설이의 이야기가 실린 '가족의 발견(犬)' 2화를 보곤 백설이를 입양하고 싶어 센터를 찾았다. 안타깝게도 백설이가 이미 가족을 찾은 뒤였다.

정 부회장은 센터에 있는 다른 개들을 살펴보다 유독 눈이 가는 설이를 입양하기로 결심했다. 입양센터에서 가장 오랫동안 생활하고 있다는 말을 듣곤 더욱 마음이 갔다.

정 부회장은 "많은 개들을 소개받았지만 설이에게 가장 마음이 가더라"라면서 "입양이 잘 안 되는 강아지를 데리고 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설이는 나이가 많아 번번이 입양이 좌절됐다. 적게는 여덟 살, 많게는 열 살로 추정되는 노령견이다. 이빨도 다리도 건강하지 않다. 하지만 정 부회장에게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정 부회장에게 중요한 건 설이 그 자체였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 아프잖아요. 개도 똑같아요. 자연스러운 거죠. 아픈 곳이 생기면 치료해주면 돼요. 나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오히려 나이 든 개가 더 점잖고 생각이 깊은 점도 있어요."

설이가 정 부회장 곁에서 웃고 있는 모습. © News1

정 부회장의 진심이 설이에게 전해진 걸까. 도도했던 설이는 정 부회장 곁에 찰싹 붙어 끊이지 않고 애교를 부렸다. 황동열 대표도, 입양센터 간사들도 그런 설이의 처음 보는 모습을 놀라워했다.

황 대표는 "설이가 그렇게 애교도 많고 붙임성이 좋은 개인지 몰랐다. 정말 깜짝 놀랐다"면서 "2년 전 직접 구조해 지금까지 함께 생활해온 터라 정이 많이 들어서 섭섭했는데, 이런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고 흐뭇하다"고 했다.

정 부회장은 설이를 가장 먼저 어머니에게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해 세상을 떠난 반려견이 가장 좋아했던 산책 장소인 올림픽공원에 설이를 데려가겠다고 했다.

"설이와 함께 집에 가면 어머니가 무척 좋아하실 거예요. 어머니가 강아지를 정말 좋아하시거든요. 그리고 설이를 제 사무실이 있는 올림픽공원에 데리고 가고 싶어요. 지난해 세상을 떠난 아이가 그곳을 참 좋아했어요. 설이도 분명히 좋아할 거예요."

그렇게 설이는 입양센터 친구들을 뒤로하고 정 부회장 품에 안겨 2년간 떠나지 못했던 입양센터에 작별을 고했다. "설이와 행복하게 살겠다"며 문을 나서는 정 부회장의 품에 안긴 설이의 표정은 그동안 겪은 아픔을 모두 날려버렸다는 듯 한없이 밝아 보였다.

정 부회장 집에 도착한 설이. (사진 정 부회장 제공) © News1


◆'가족의 발견(犬)'코너는 반려동물 식품기업 네츄럴코어가 응원합니다. 네츄럴코어는 가족을 만난 아이들의 행복한 새출발을 위해서 사료 및 간식, 용품 등을 선물합니다.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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