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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있어도, 유전병 있어도…강아지 생산에 동원되는 개들
주인 있어도, 유전병 있어도…강아지 생산에 동원되는 개들
  • (서울=뉴스1) 이병욱 기자
  • 승인 2016.09.05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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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동물보호소에서 개농장으로 넘어가 극적으로 구조된 '헌터'.(사진 카라 제공)© News1

(서울=뉴스1) 이병욱 기자 = 2015년 12월 경기 양평군 한 개농장. '파란 눈'을 가진 시베리안허스키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철장 안에 갇혀 파란 눈으로 바깥을 응시하던 이 개는 매끄러운 털 상태가 이 곳에 온지 얼마되지 않았음을 말해줬다.

드넓은 설원에서 힘차게 질주하는 모습이 잘 어울리는 이 개가 시골의 한 개농장 철장 안에 갇힌 사연은 과연 무엇일까.

시베리안허스키는 설원에서 주인과 생사를 함께해 온 견종으로 우리나라의 진돗개만큼이나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식용개 농장인 이곳에서 파란 눈의 개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자 곧바로 일어나 아는 척을 하며 꼬리를 세차게 흔들어댔다.

인근에 살고 있는 A씨는 이 모습을 본 뒤 한참 동안 고민에 빠졌다. 철장에 갇혀 꼬리를 흔들던 개가 잊혀지지 않았고, 다른 백구와 누렁이들도 자꾸만 눈에 밟혔다.

그는 결국 개농장을 설득해 비용을 주고 파란 눈의 개를 매입했다.

개농장 철장 안에 갇혀 있던 개들.(사진 카라 제공)© News1

죽음을 목전에 둔 시베리안허스키를 개농장에서 탈출시킨 A씨는 그토록 사람을 잘 따르는 모습을 보면서 과거 누군가의 곁에서 가족으로 살던 개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개의 입양을 준비하던 A씨는 동물병원을 찾았다가 다시한번 놀라운 사실을 알게됐다.

개를 세심히 살피던 수의사가 마이크로 칩 인식기를 몸에 갖다 대자 '삐익~' 소리와 함께 단말기에 15자리의 숫자가 표시됐다. 반려견 등록을 마친 상태였던 것이다.

그의 추측대로 시베리안허스키가 사실은 누군가의 사랑스런 반려견이었다는 사실이다.

잃어버린 반려견을 다시 찾게 된 보호자가 한달음에 달려와 잊혀졌던 이름 "헌터야!"를 외치자 개는 미친 듯 달려가 주인의 품에 안겼다.

해당 소식을 들은 동물보호단체 카라(대표 임순례)가 사실을 확인해보니 사연이 정말 기막혔다.

길 잃은 시베리안허스키를 군 유기동물보호소가 보호하다 임의로 개농장에 넘겨버렸다. 해당 보호소는 주인의 존재 여부를 확인도 하지 않고 여러 마리의 개들을 개농장에 넘긴 정황이 포착됐다.

카라는 즉각 지자체에 개선을 요구하고 유기동물보호소에서 개농장으로 흘러간 개들을 모두 구조했다. 여름철 '도살용'으로 태어난 강아지들도 함께 구조했다.

헌터가 개농장에 갇혀 있는 동안 개농장에서는 강아지 생산을 위해 백구 암컷과 교배시켰다. 강아지 오남매는 구조된 뒤 태어났는데 모두 어미를 닮아 하얀 털을 가졌고, 아비를 닮은 강인한 골격을 가졌다.

헌터의 새끼들인 진우(왼쪽)와 진아. 새로운 가정으로 입양돼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사진 카라 제공)© News1

특히 두 마리는 한쪽 눈이 푸른 바다와 같은 오드아이(홍채 이색증) 백구로 태어났다. 파란 눈의 헌터 새끼들인 '진우'와 '진아'는 얼마전 새로운 가족을 만나 따뜻한 가정에 입양됐다.

문제의 개농장에서는 다른 어미 개들도 함께 구조됐다. 그 가운데는 신경장애 때문에 하루종일 빙글빙글 도는 장애견도 있었다.

그런 개들 역시 강아지 생산에 동원됐다. 반려견이 아닌 '고기' 생산을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병든 어미개는 7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1마리는 태어나자 마자 죽고 1마리만 입양을 갈 수 있었다.

나머지 5마리는 아직 가족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이중 2마리는 어미에게 유전적 신경장애를 물려받아 하루종일 자리를 맴돌고 있다.

신경장애를 앓고 있는 2마리의 강아지들은 '루시진'과 '루짱'이란 멋진 이름을 얻었고 현재 카라에서 보호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전진경 카라 상임이사는 "반려동물 학대와 방치, 잔인한 도살, 불법사육의 흔적을 따라가다보면 거기에는 언제나 개식용 문제가 연루되어 있다"면서 "개식용은 비단 식용으로 희생되는 100만 마리 개들만 보호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반려동물 문화의 향상을 가로막고 동물보호법의 발전에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스1> 반려동물 전문 플랫폼 '해피펫'과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대표 임순례), 한국수의임상포럼(회장 김현욱), 버려진동물을위한수의사회(운영진 명보영), 팝아티스트 한상윤 작가가 공동캠페인을 전개한다. '식용개 라고요? 저의 자리는 식탁 위가 아닙니다(식용개는 없다)' 캠페인은 '식용개'라는 거짓말과 이에 기대어 벌어지는 동물차별, 동물학대, 공중위생 문제 등의 진실을 알린다.

▶[저의 자리는 '식탁 위'가 아닙니다]스토리펀딩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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