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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개는 없어요, 잘못 가르친 사람 문제죠"
"나쁜 개는 없어요, 잘못 가르친 사람 문제죠"
  •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승인 2016.09.11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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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식 위드펫동물병원장은 10일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반려견이 사람과 조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선 사회화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News1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얜 진짜 똑똑한 친구예요. 보호자만 몰랐던 거예요.”

수년간 자신의 반려견이 말을 잘 안 듣는 ‘문제견’이라고 생각한 박진주씨(35·경기 수원시). 여덟 살짜리 코카스파니엘 로빈의 보호자인 박씨는 김광식 수의사(위드펫동물병원장)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로빈은 8년간 산만함과 여러 문제행동으로 박씨를 힘들게 해왔다. 그는 ‘로빈도 다른 개들처럼 바뀔 수 있을까’라는 한 가닥 희망을 갖고 지난달 20일 처음 김 원장을 찾았다.

그런데 로빈은 김 원장 앞에선 말 잘 듣고 착하디착한 반려견이었다. 심지어 김 원장은 로빈을 ‘천재’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몇 달을 반복해야 따라온다는 교육들을 로빈은 척척 해냈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문제 행동을 보이는 대부분의 반려견들에 대해 보호자들은 ‘우리 애는 정말 심각하다’고 말하지만 실제 문제가 있는 반려견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반려견의 문제행동은 모두 보호자 잘못 때문이라고 했다.

로빈은 10일 반려동물 전문 플랫폼 해피펫과 동물자유연대(대표 조희경)가 함께 진행한 '반려동물 사회화교육' 마지막날 뛰어난 성적으로 다른 반려견들을 제치고 최종평가 1위의 영예를 안았다.

김 원장의 손을 거친 개들은 로빈뿐만이 아니다. ADHD가 의심될 정도로 산만했던 개도, 산책할 때마다 애를 먹였던 개도, 심하게 짖는 개도, 보호자를 물었던 개도 김 원장을 만나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개와 함께 보호자들이 변했다.

10일 서울 강서구에서 호서직업전문학교에서 만난 김 원장은 ‘반려견 사회화 교육’ 전문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교육을 진행한 대상은 개가 아닌 사람이라고 말한다.

“전 트레이너가 아니에요. 개를 훈련시키는 게 아니라는 거죠. 전 개가 올바른 행동을 하도록 보호자를 교육하는 거예요. 개가 문제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보호자의 잘못된 행동 때문이거든요. 그걸 교정하는 거죠. 전 보호자에게 항상 리더가 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개는 사회적인 동물이고,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리더가 시키는 일은 다 해요. 리더 말을 들으면 먹이를 쉽게 구할 수 있거든요. 보호자가 리더가 돼야 해요. 새끼 때부터 바로잡는 게 좋아요.”

10일 김광식 원장(왼쪽에서 세 번째) 이 사회화교육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의 왼쪽에서 세 번째 개가 1등을 차지한 로빈. © News1

그의 교육법은 여러 곳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지난해 그가 집필한 ‘개를 자식처럼 기르자’는 대한수의사회가 공식 추천한 반려견 교육 지침서로 활용되고 있다.

또 2011년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기획하고 대한수의사회가 주관해 만든 초등학교 재량 교과서를 펴내기도 했다. 동물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을 함축해 담은 이 교과서엔 김 원장이 직접 자신의 반려견과 찍은 사진들이 예절 교육 예시 사진으로 들어가 있다. 현재 서울시 내에서만 150여 명의 수의사가 이 교과서로 초등생들을 강의한다.

“세계 각국에 전화해서 ‘이런 내용이 담긴 교과서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없다’고 하더라고요. ‘왜 없냐’고 물었더니 이미 (올바른 반려견 문화가) 형성돼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은 안 그렇잖아요. 우리도 올바른 문화를 만들어야 하니 교과서를 만들어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김 수의사는 2011년 제작한 초등학교 재량교과서에 자신이 직접 사진자료를 만들어 넣기도 했다. © News1

그의 이 같은 행보에 궁금증을 갖는 사람들도 적잖다. 서울 송파구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면서 한국동물병원협회 인정을 받은 반려견 예절 교육 강사로, 한국가정견트레이너협회장으로 활동하며 반려견들의 사회화 교육에 앞장서고 반려동물의 올바른 문화 정착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그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반려동물의 아픈 몸을 치료하는 수의사가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 수의사가 돼야겠다고 결심했고요. 92년에 졸업하고 병원을 열어 그냥 그렇게 생활을 했어요. 그런데 IMF 사태가 발생한 뒤 유기견이 엄청나게 발생하기 시작한 거예요. 2000년대 초반에 극에 달했죠. 그래서 동물보호단체들도 생겨났고요. 그때 저도 생각했죠. ‘같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지 이건 아니다’라고요.”

그는 반려견들이 목줄 없이도 거리를 잘 돌아다니고, 이동장 없이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영국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개가 사람과 함께 어우러져 사는 시민이 된 듯했다. 문제행동을 보이는 반려견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사회화교육이 되지 않으면 이런 어울림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결국 문제행동 때문에 버려지는 유기견 문제와도 관련이 깊었다. 그렇게 그는 반려견 예절교육을 위해서 뛰기 시작했다. 수의사로서는 처음이었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건 같이 잘 사는 문화를 만드는 거예요. 개도, 개를 키우는 사람도, 키우지 않는 사람도 다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거죠. 그러려면 반려견을 기르는 사람이 더 열심히 해야 해요. 반려동물 양육인구가 1000만명이라고 하잖아요. 나머지 4000만명이 안 기르는 거예요. 모두가 불협화음 없이 살아가려면, 또 동물학대나 유기 문제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으려면 배워야 한다는 거죠. 그렇게 배우다 보면 문화로 정착될 겁니다.”

동물의 신체적 질병만이 아닌 마음의 질병까지 보살펴 준다는 김 원장. 그의 바람대로 반려동물도, 보호자도, 반려동물을 기르지 않는 사람도 모두 행복하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 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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