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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은인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개'
'생명의 은인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개'
  • (서울=뉴스1) 이병욱 기자
  • 승인 2016.09.12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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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시장에서 구조된 두리.(사진 카라 제공)© News1

(서울=뉴스1) 이병욱 기자 = 2014년 12월 14일 경기도 성남시 모란시장. 진열된 닭들 옆에 불안한 눈빛의 개들이 들어가 있는 철장이 하나 보인다.

누렁이 '두리'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 개들의 철장 바로 앞에는 큰 도마와 칼, 그리고 개고기를 진열한 냉장고가 자리잡고 있다.

두리는 지켜보는 내내 단 한번도 편히 앉지 못하고 철장 밖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서성거렸다. 목에는 빨간 가죽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그 목걸이를 채워준 사람을 기다리기라도 하는듯 누군가 애타게 찾고 있는 모습이었다.

동물보호단체 카라(대표 임순례)에 따르면 모란시장에는 약 20개의 개 상점이 영업중이다. 전국 개고기 유통의 70% 가량이 이곳을 거쳐간다.

대부분 가게들은 월세 600~700만원을 내고 자리를 임대해 영업하지만 일부는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조사를 나간 카라 회원들은 눈이 마주친 두리를 그곳에 남겨두지 못했다. 결국 가게 주인에게 돈을 지불하고 구조를 했다.

두리는 철장에서 벗어나자 사력을 다해 시장을 벗어나려 했다. 그리곤 병원에 가는 길 차 안에서 사람들의 손을 연신 핥았다. 마치 생명의 은인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라도 하듯 말이다.

전진경 카라 상임이사는 "차로 이동하는 두리는 계속 사람을 바라보며 눈을 맞추고 어떻게든 아는 척을 하려고 했다"면서 "잘 보이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니 편히 있으라고 여러 차례 말해도 소용없었다. 이토록 영리한 녀석에게 모란장 철장 속에서의 시간은 어떤 것이었을까 생각해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말했다.

병원에 도착한 두리는 자신이 죽음의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실을 바로 알아차렸다. 눈에 띄게 밝은 얼굴로 마킹(영역표시)도 하고, 사료도 먹었다.

만에 하나 주인이 잃어버린 개일지 몰라 재차 확인해보니 안타깝게도 녀석은 주인이 직접 개장수에 판 경우였다.

그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구조된 두리에게 동물병원 수의사는 억세게 운 좋은 녀석이라며 '캐롤'이란 애칭을 붙여줬다.

두리에 대한 건강검진이 바로 진행됐다. 다행이 큰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었다. 그런데 며칠 후 비극은 시작됐다.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고 있는 두리.(사진 카라 제공)© News1

두리가 식욕부진과 함께 기침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개 인플루엔자가 의심돼 치료를 시작했으나 차도가 없었다.

이에 정밀검사를 진행했고, 결국 '홍역'이란 끔찍한 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됐다. 시장에서 홍역과 감기에 감염된 두리는 잠복기를 거쳐 증상이 뒤늦게 나타났다.

그래도 초기에 치료를 시작했으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모든 치료를 집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 두리는 홍역바이러스가 뇌로 올라가 머리가 경련으로 씰룩거리고 그토록 예쁜 눈으로 더이상 세상을 볼 수 없게 됐다.

당시 카라 회원들은 "눈이 안보여도 좋아, 장애가 생겨도 괜찮아. 살아만 주면 되니까 힘내라 두리야. 제발"이라며 희망을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간절한 바람을 뒤로 하고 두리는 2015년 1월 3일 새벽 '별'이 되고 말았다.

현재 성남 모란시장을 비롯해 부산 구포시장, 서울 경동시장, 대구 칠성시장 등에는 여전히 또 다른 두리들이 철장 안에 갇혀 있다.

인간을 가장 잘 이해하는 반려동물인 개에게 도살 순번을 매기고, 사람들과 다른 개들의 사체 앞에 전시하는 행위는 위법여부를 떠나 매우 가학적이고 비정상적인 행위다.

전진경 이사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존속되고 있는 개식용 문제는 동물에게 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비극이다"라며 "우리는 지금 이런 불필요한 비극과 갈등을 어떻게 하면 신속히 없앨 수 있는지, 어떻게 국가 위상에 걸맞는 수준의 동물보호를 하고 더 좋은 국가 이미지를 만들어 큰 틀에서 발전을 이룰 수 있을지, 개식용과 관련하여 그동안 헛되이 이뤄져 온 찬반논쟁을 극복하고 개식용을 종식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아마도 두리가 우리의 손길을 갈구하며 전달한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뉴스1> 반려동물 전문 플랫폼 '해피펫'과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대표 임순례), 한국수의임상포럼(회장 김현욱), 버려진동물을위한수의사회(운영진 명보영), 팝아티스트 한상윤 작가가 공동캠페인을 전개한다. '식용개 라고요? 저의 자리는 식탁 위가 아닙니다(식용개는 없다)' 캠페인은 '식용개'라는 거짓말과 이에 기대어 벌어지는 동물차별, 동물학대, 공중위생 문제 등의 진실을 알린다.

▶[저의 자리는 '식탁 위'가 아닙니다]스토리펀딩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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