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0:48 (토)
204마리의 반려견, 이름도 없이 지옥에서 살고 있었다
204마리의 반려견, 이름도 없이 지옥에서 살고 있었다
  • (서울=뉴스1) 이병욱 기자,천선휴 기자,이찬우 기자
  • 승인 2017.01.12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강원 원주시 도심을 조금 벗어난 외곽의 한 야산엔 수백 마리의 식용개를 키우는 사육농장이 있다. 그 자리에서 11년간 개 사육장을 운영한 농장주는 하던 일을 접고 새 출발을 하겠다며 지난해 한 국제동물보호단체에 개들을 모두 구조해달라고 요청했다. <뉴스1>은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HSI)과 동행취재를 통해서 개 사육장의 적나라한 현실과 함께 보신탕집 식탁에 오를 뻔한 개 200여 마리를 구조하는 과정, 그리고 그 개들이 태평양을 건너 새 가족을 만나기까지의 이야기를 총 4회에 걸쳐 소개한다.

강원 원주시의 식용견 사육농장에 살고 있는 도사견. 안구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보이는 이 도사견은 '종견'으로 개체수를 늘리는 데 이용됐다. © News1 이찬우 기자

(서울=뉴스1) 이병욱 기자,천선휴 기자,이찬우 기자 = 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코와 입을 틀어막으면 눈이 시큰해져 눈물이 날 정도로 냄새는 지독했다. 풀과 나무 향기 대신 역한 냄새가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는 산 중턱의 그곳. 바로 식용견들이 살고 있는 개 사육농장이다.

농장주로부터 구조 요청을 받은 국제동물보호단체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Humane Society International·HSI)의 구조팀과 함께 지난 7일 찾은 강원 원주시의 한 개사육 농장엔 식용 개 204마리가 살고 있었다.

다른 개에게 온몸을 물어뜯긴 개, 앞다리가 부러져 절뚝이며 새끼를 돌보는 어미, 눈에 곰팡이가 잔뜩 껴 있는 개, 다리에 사람 주먹만한 종양을 달고 있는 개까지. 모두 지난여름 보신탕집과 개고기 시장에 팔려갈 뻔한 개들이었다.



개들이 생활하는 사육장은 말그대로 '지옥'이었다. 그나마 종견(씨를 받기 위해 기르는 개)에겐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개집과 함께 땅을 밟고 지낼 수 있는 한 평(3.3㎡) 남짓한 공간이 제공됐지만 다른 개들은 처지가 달랐다. 1~6마리가 함께 갇혀 지내는 뜬장(배설물을 쉽게 처리하기 위해 바닥에서 띄워 설치한 우리로 보통 구멍이 숭숭 뚫린 철망으로 바닥을 제작한다) 아래엔 개 배설물이 더미로 쌓여 있었다. 천성적으로 움직이길 좋아하는 개들에게 비좁은 데다 구멍이 뚫려 있는 뜬장은 스트레스로 인한 정형행동을 유발하고 발바닥을 상하게 한다.

누군가가 버리고 갔다는 리트리버(왼쪽)는 사람이 다가갈 때마다 환하게 웃었다.© News1

사육장엔 비글, 리트리버, 말라뮤트, 코카스파니엘 등 반려견으로 인기가 높은 개들도 눈에 들어왔다. '과연 보신탕집에 팔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앙증맞은 치와와도 보였다. 꼬리를 흔들며 취재진을 반기며 웃음 짓던 리트리버는 알록달록한 목줄을 차고 있었다. 농장주 A씨는 "모두 누군가 농장 앞에 버리고 간 개"라고 했다.

김나라 HSI 캠페인 매니저는 "식용견들은 무거울수록 값어치가 높아지기에 종견은 대부분 몸집이 큰 도사견"이라면서 "진돗개나 도사견이 아닌 비글, 리트리버 등 품종견들은 대부분 주인들이 버리고 간 개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농장주 A씨는 뜬장에 갇혀 있던 비글도 누군가에게 버려졌다고 말했다. © News1

누군가에게 버림받은 개라는 걸 알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사람을 보고 꼬리를 흔들며 짖다가도 사람이 다가갔을 때 뒷걸음질 치고 물러나는 개는 사육장에서 태어난 개다. 반면, 사람과 함께 생활해 본 경험이 있는 개들은 철장을 사이에 두고 자신의 몸을 들이밀어 사람에게 스킨십을 시도한다.

농장주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버리고 간다. 며칠 전에도 버리고 갔다"면서 "개뿐만 아니라 딱 봐도 비싸 보이는 페르시안 고양이 같은 품종묘들도 많이 버리고 간다"고 말했다.

이 농장엔 세 살을 넘긴 개가 없다. 가장 나이가 많은 세 살짜리들은 종견뿐이다. 나머지 개들은 모두 한두 살에 불과하다. 새끼 티를 벗고 몸집이 커지면 곧바로 중간업자에게 팔아넘기기 때문이다.

태어난 지 6개월 정도 되는 개들이 모여 있다. © News1

식용 개들은 무게에 따라 몸값이 결정된다. 사육업자로선 개가 무거울수록 좋다는 의미다. 하지만 사육장에선 살찐 개들을 찾기 힘들다. 등뼈 윤곽이 드러날 정도로 비쩍 마른 개가 되레 많다. 사람들이 버린 음식물 쓰레기를 먹는데도 살이 찌지 않는 이유에는 눈물겨운 사연이 있다. 김 매니저는 "살이 쪄 지방이 많아지면 고기맛이 없어진다는 이유로 개들을 일부러 굶긴다"고 말했다.

농장주는 "살이 찌면 고기 맛이 떨어져 등급이 낮아진다"면서 "잔반을 먹은 개가 가장 맛이 좋단 말을 듣고 하루에 한 끼씩 잔반만 먹여 항상 A등급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 농장은 그나마 규모가 작은 편이다. 큰 농장을 운영하는 사람은 여름철이면 한 번에 1000마리 넘게 (개를) 판다더라"고 말했다. 그는 200마리를 팔면 약 5000만~6000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귀띔했다.

김 매니저는 "적게는 수십 마리에서 많게는 1000여 마리까지 기르는 개 사육농장이 국내에만 1만7000여 곳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나라 HSI 캠페인 매니저가 다가가자 발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도사견. 김 매니저에 따르면 해당 도사견은 사람만 다가가면 발을 내밀어 악수를 한다. © News1

먹고살기 위해 30년 넘게 개농장을 운영했다는 A씨가 돌연 HSI에 개들의 구조를 요청한 까닭은 새로운 삶에 대한 열망 때문이다. 그는 "아이가 자라고 나도 나이가 드니 생각이 달라졌다. 이젠 이런 곳은 사라지는 게 맞다"고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