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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질환 앓으면서도 끝까지 살고 싶었던 고양이들
뇌질환 앓으면서도 끝까지 살고 싶었던 고양이들
  • (서울=뉴스1) 이병욱 기자
  • 승인 2017.06.20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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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유기견 '토리'와 길고양이 출신 '찡찡이'가 대한민국 '퍼스트 도그'·'퍼스트 캣'이 됐다. 반려동물 양육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설 만큼 우리 사회는 동물들과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한해 평균 8만마리에 이르는 유기동물이 발생하듯 여전히 버려지고, 학대 당하며, 이유 없이 고통 받는 생명들도 많다. <뉴스1>의 반려동물 전문 플랫폼 '해피펫'은 고양이보호단체 사단법인 '나비야사랑해'(이사장 유주연)와 함께 '나비에게 행복을' 시리즈를 연재한다. 이 땅에서 고통받는 생명들의 아픔과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다시 행복을 찾아준 사연 등을 통해서 사람과 동물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2015년 9월 경기 시흥시와 일산시에서 각각 구조된 '행주'와 '산성'이는 나비야사랑해(이사장 유주연) 보호소로 와서 서로 의지하며 단짝이 됐다.(사진 나비야사랑해 제공)© News1

(서울=뉴스1) 이병욱 기자 = 사단법인 나비야사랑해(이사장 유주연)에는 저마다 아픔 하나씩은 간직한 130여 마리의 고양이들이 모여 살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버림받고, 화상으로 두 다리를 잃고, 개에게 물린 채 방치되고, 뇌종양을 앓고 있는….

이 거짓말 같은 옛 사연의 주인공들은 이젠 아늑하고 깨끗한 보호소에서 서로를 의지한채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며 새로운 가족을 만나 행복할 날을 꿈꾸고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는 처지가 조금 다른 고양이들이 있다. 한 방에 모여 있는 이 고양이들은 '나비야사랑해' 유주연 이사장과 간사의 손길만 기다리고 있다.

특히 '캐딜락'과 굿모닝미스터화이티(이하 굿모닝)'는 사료를 일일이 떠먹여야 하고, 흔들리는 몸 때문에 벽이나 가구에 부딪히기 일쑤여서 항상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이런 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두 마리 모두 뇌질환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캐딜락과 굿모닝을 볼 때마다 유 이사장은 두 마리의 고양이를 추억으로부터 소환한다.

2015년 9월 어느 날, 믿기 어려운 일이 유 이사장에게 일어났다. 그날 경기 시흥시와 일산시에서 각각 다른 한 마리씩 두 고양이를 운명처럼 만난 것.

시흥의 작은 공원에서 만난 어린 고양이와 일산의 찻길에서 만난 고양이가 똑닮아 있었다. 외모는 물론 한쪽 눈이 괴사된 상처까지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신기할 정도였다. 이 뿐만이 아니다.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자꾸만 옆으로 쓰러지던 모습까지 둘은 정말 똑같았다.

구조당시 행주 모습.(사진 나비야사랑해 제공)© News1

구조당시 산성이 모습.(사진 나비야사랑해 제공)© News1

구조한 고양이들은 데리고 동물병원에 간 유 이사장은 수의사로부터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컴퓨터 단층촬영(CT) 결과 두 고양이 모두 뇌질환 때문에 마비가 진행되고 있으며, 온몸 타박상과 영양실조가 심각하다고 했다.

이런 상태라면 고양이를 돌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입양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나비야사랑해 보호소로 오게 된 두 마리의 고양이들은 '행주'와 '산성'이란 이름과 함께 빛이 잘 드는 방까지 선물 받았다. 이젠 남아 있는 한쪽 눈을 감고 편히 잠들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유주연 이사장은 "같은 날 함께 보호소로 오게 된 행주와 산성이는 마치 자신들이 같은 처지라는 것을 아는 듯 서로에게 의지하며 단짝이 되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보호소로 오게 된 아픈 고양이들은 생존을 위한 '한 끼 전쟁'을 시작했다.

행주와 산성이는 흔들리는 몸과 머리 때문에 사료를 먹기 힘들었지만 의지는 분명했다. 어린 생명들은 살겠다고, 먹어보겠다고, 얼굴과 온몸에 묻은 젖은 사료까지 집착했다.

1~2시간 걸려 밥 한 끼 겨우 먹으면 그 시간만큼 다시 흔적을 지워야 하는 일이 반복되던 어느날. 한 사료회사 봉사단과 함께 아이돌그룹 '인피니트' 멤버 엘(김명수)이 '나비야사랑해' 보호소를 찾아왔다.

아이돌그룹 '인피니트' 멤버 엘이 '나비야사랑해' 보호소를 찾아와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사진 나비야사랑해 제공)© News1

반려묘 '별이'를 키우고 있던 엘은 소문난 애묘인답게 행주와 산성이를 능숙하게 돌봤다. 그렇게 행주와 산성이는 엘과 함께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다.

나비야사랑해 회원들의 정성 어린 보살핌에도 행주와 산성이의 상태는 점점 더 심각해졌다.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진행된 뇌질환이 그들의 몸을 마비시켜 작은 주사기 하나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입은 굳어가고 있었다.

한 달 남짓 이어진 사투 끝에 행주는 늘 먹던 만큼의 사료를 힘겹게 넘긴 뒤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그리고 한 달 후쯤 산성이가 행주의 뒤를 따랐다.

유주연 이사장은 "캐딜락과 굿모닝을 볼 때마다 행주와 산성이의 모습이 떠오르곤 하는데 무지개다리 너머 고양이별에서 둘이 함께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을 것"이라면서 "현재 나비야사랑해 보호소에는 많은 아이들이 있는데 하루빨리 좋은 가정으로 입양돼 행복해질 수 있기를 매일같이 기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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