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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피플]16년째 유기견 돌보는 '개엄마'…"개들이 저를 살린 거예요"
[펫피플]16년째 유기견 돌보는 '개엄마'…"개들이 저를 살린 거예요"
  • (서울=뉴스1) 김연수 기자
  • 승인 2019.02.19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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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방치되거나 개장수에게 끌려가던 개 70여 마리를 구조해 돌보고 있는 고길자씨. © 뉴스1

(서울=뉴스1) 김연수 기자 = "친구 사십구재라 절에 갔더니 어린 강아지 한 마리가 덜덜 떨면서 들어오던 모습을 봤어요. 그게 '밍키'와의 첫 만남이자 유기견들을 돌보게 된 시작인 것 같아요"

제주도에서 16년째 유기견들을 돌보는 '개엄마',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캣맘'으로 사는 고길자씨(63)는 소위 말하는 일용직 근로자다. 설거지, 공사장 교통정리, 편의점 아르바이트, 귤 따기 등 사료 값을 벌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다. 하지만 그도 한때는 번듯한 직장에서 인정받던 커리어 우먼이었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꽤 오랫동안 회사에 다니다가 다시 제주도로 돌아와 결혼했어요. 그러다 남편과 사별하면서 어린 두 아이를 키우느라 보험회사도 다니고 주방일도 했죠. 아이들이 거의 다 컸을 때쯤 친구 사십구재를 지내러 갔는데 3개월도 안 돼 보이는 강아지가 벌벌 떨면서 절에 들어오는 거예요. 그게 '밍키'에요. 그러다 보니 점점 길 위의 개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현재 고 씨가 집에서 돌보는 개들만 약 70여 마리. '혼자 그 많은 개를 잘 돌볼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되지만 매년 광견병 예방접종은 물론 치료가 필요한 개들은 빚을 내서라도 병원에 데려가 치료해줬다. 본인은 라면을 먹으면서도 젖을 물리고 있는 어미 개에게는 미역국과 삶은 고기를 담아줬다. 번듯한 개집은 아니지만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안 쓰는 철물들을 주워와 개집도 만들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면 개들 밥이랑 물부터 챙겨주고 청소를 해요. 산책도 매일 시켜주고 싶은데 혼자 돌보다 보니 그러지 못하는 게 늘 미안하죠. 최근엔 같이 도와주는 봉사자들이 한두 명씩 생겨서 가끔 산책도 시켜줘요. 최근엔 열 마리나 입양도 보냈어요. 개장수가 임신한 어미 개를 잡아가는 것을 보고 구조해 와서 그만큼 다시 늘어나긴 했지만. 새해 소원으로 고통 받는 동물들이 없기를, 저를 도와주는 모든 분이 행복하길 기도했어요"

고길자씨가 돌보는 70여 마리의 개들 © 뉴스1

70여 마리의 개 중 어느 하나 안 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특히 '초롱이'에 대한 기억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고.

"해수욕장에서 주방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는데 비가 많이 오던 날 강아지 한 마리가 갑자기 들어와서 쓰러졌어요. 누군가 신고를 했는지 유기동물보호소에 들어갔는데, 홍역이라 전염성이 있다며 안락사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입양하겠다고 데리고 나와 제주시의 동물병원을 다 돌아다녔어요. 다행히 한 병원에서 받아줬는데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누워만 있던 아이가 딱 3일째 되던 날 병원에 들어가면서 '초롱아' 부르니까 링거가 꽂혀 있는지도 모르고 뛰어나오더라고요. 그날 얼마나 안고 울었는지, 병원 식구들도 다 같이 울었던 게 기억나요"

하지만 그도 한때는 가족들의 반대도 심해 유기견을 돌보는 것을 친척들에겐 비밀로 했어야 했다. 지금은 그저 개들과 행복해 하는 모습을 이해해 준다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원래 몸이 약해서 잘 쓰러지고, 면역력도 약해서 피부과를 4년이나 다녔어요. 그래서 개들을 처음 데리고 왔을 땐 털 알레르기 때문에 피부가 뒤집어졌었죠. 가족들도 많이 걱정했는데, 언제부턴가 피부가 괜찮아지더라고요. 병원을 안 다닌 지도 6~7년이나 됐네요. 개들이 저를 살린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고 씨의 가장 큰 바람은 제주도에도 반려동물 화장터가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또 안락사율 전국 1위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나 동물들과 사람이 함께 공존하는 진정한 '아름다운 섬 제주'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보호소에 봉사하러 갔다가 손수레에 꽁꽁 묶인 짐을 싣고 나가길래 '뭐가 저렇게 많냐'고 물으니 '안락사된 개들 사체가 쓰레기 매립장으로 가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마음 아파서 그 후부터 보호소에 못 가요. 쓰레기 매립장에 안 그래도 쓰레기들 넘쳐나는데, 생명까지 그렇게 해야 하는지. 정말 제주도엔 유기견들이 너무 많아요. 제주도 특성상 중성화도 안 하고 풀어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새끼 낳으면서 개체 수가 계속 늘어나는 거죠. 동물은 좋아해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고요. 이제는 도 차원에서 교육도 해주면서 사람도 동물도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집에 있는 개들 뿐만 아니라 길 위의 방치된 개들에게도 매일 같이 밥을 챙겨주는 고길자씨. (사진 봉사자 김씨 제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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