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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뼈만 남은 사자' 아쿠아리움 가보니…동물들 정형행동 심각
[르포]'뼈만 남은 사자' 아쿠아리움 가보니…동물들 정형행동 심각
  • (서울=뉴스1) 김연수 기자
  • 승인 2019.01.25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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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SNS상에 올라온 부천의 한 아쿠아리움에서 찍힌 백사자.(사진 SNS 캡처)© 뉴스1

(서울=뉴스1) 김연수 기자 = 지난 18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이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부천 한 아쿠아리움에서 전시하고 있는 사자의 사진이었다. 사진 속 사자는 '밀림의 왕'이라 수식어가 무색했다. 좁은 우리에 갇힌 채 앙상한 뼈가 다 드러나 있었다.

지난 22일 직접 찾아간 그곳은 해양생물과 야생동물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체험형 아쿠아리움이었다. 어린 자녀들과 함께 온 부모들은 "추운데 아이들과 갈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실내를 찾게 됐다"며 "아쿠아리움이라고 해서 해양 생물만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큰 야생동물들이 있을 줄 몰랐다"고 말했다.

◇좁은 전시관 내 대동물…정형행동, 무기력

야생동물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니 퀴퀴한 냄새와 함께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반달가슴곰이었다. 유리 하나를 두고 가까이에 마주한 반달가슴곰은 이유 없이 왔다 갔다를 반복하는 정형행동을 했다. 야생에선 볼 수 없는 동물원 동물들의 특징이다. 반달가슴곰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서 먹이 주기용 구멍만 가끔 쳐다볼 뿐이었다.

백호와 백사자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자와 호랑이는 하루 행동 반경이 30㎞에 이른다. 행동 풍부화 시설 조차 없어 사육장은 너무 갑갑해 보였다. 논란이 된 백사자는 인공바위 위에 누워 있었다. 관계자가 "먹이를 주면 내려온다"며 닭 한 마리를 던져주자 암컷 사자와 수컷 사자가 내려왔다. 그 모습을 본 관람객 중 일부는 "이번에 엄청 말랐다고 한 그 사자"라며 알아봤다.

눈으로 직접 본 사자는 사진처럼 심각하게 마르진 않았지만, 걸을 때마다 살짝살짝 갈비뼈가 드러났다. 아쿠아리움 관계자는 "조명이나 카메라 각도 때문에 그렇게 찍힌 것 같다"며 "하지만 표준 백사자 사진과 비교해 마른 것은 아니며 하루에 5~7kg씩 닭을 급여한다"고 말했다.



◇동물복지 없이 관람객 위주 환경…어린이들 "불쌍하다"

안쪽으로는 왈라비, 미어캣, 호저 등 소형 동물도 전시돼 있었다. 하지만 몸을 숨길 공간 없어 노출된 상황에서 잔뜩 몸을 웅크린 동물들을 보며 일부 어린아이들은 "불쌍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사막여우는 한 관람객이 구멍 속으로 밀웜을 넣어주려고 하자 빨리 달라는 듯 구멍을 손으로 계속 긁어댔다. 다른 동물들도 먹이 주기용 구멍 앞에서 정형행동을 했다.

관계자에게 언제 먹이를 급여 하는지 묻자 "개장 전 9시경에 주고 먹이 체험 후, 폐장 하는 7시~8시에 저녁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영수 동물권 단체 하이 대표는 "개체 수가 많은 동물은 먹는 동물만 먹고, 못 먹는 동물은 저녁 제공 때까지 굶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관람객들은 동물들을 보면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8살, 10살 된 자녀와 함께 왔다는 김나희(가명) 씨는 "동물들이 작은 곳에 갇혀 있어 그런지 모두 축 늘어져 있어 마음이 좋지 않다"며 "그나마 수족관에는 큰 해양 동물이 없는데, 야생동물들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프레리도그와 라쿤은 털이 빠져 피부가 드러나기도 했다. 아쿠아리움 관계자는 "사육사에게 (프레리도그가) 털갈이 하는 시점이 있다고 들었는데, 동물원은 온도 등 동물이 살기 좋은 환경에 맞춰놓다 보니 털갈이 시기가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수의사 상주 여부에 대해서는 "육안으로 상태를 확인하고 특별히 동물에 이상이 있으면 온다"고 설명했다.

한편 돼지, 거북이, 토끼가 한 공간에 모여 있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둘은 서식 환경이 엄연히 다르지만 '토끼와 거북이'라는 동화 속 이야기 때문에 일부 동물원에서 같이 두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아쿠아리움 관계자도 "거북이와 토끼를 같이 두는 것은 다른 곳에서도 많이 한다"며 "돼지는 최근 기증을 받았는데 둘 곳이 없어 일시적으로 이곳에 놔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야생동물 먹이 주기 체험, 잉어 먹이 주기 체험, 해양생물을 직접 만져보는 '터치관'이 있었다. 하지만 이를 관리 감독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러한 체험들이 특별한 시간제한 없이 이뤄지고 있어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들의 세균 감염도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동물원·수족관…구체적 관리 기준 마련 및 허가제 필요

황미혜 동물권단체 하이 대표는 "현장에서 수집한 백사자에 대한 증거 자료는 해외 백사자 전문 단체와 생추어리 전문 단체에 조언을 요청한 상태"라며 "치료가 필요한 동물들이 전시되고 있는 것에 대해선 민원을 제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실내 동물원에서 비슷한 문제들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것은 현행법상 동물 특성에 맞는 적정 서식환경에 대한 구체적 기준 없이, 기본적인 등록요건만 갖추면 되는 등록제이기 때문"이라며 "반면 해외의 경우 동물원을 운영하기 위해선 법으로 정하는 요건을 모두 갖추고 국가 허가를 받아야 하는 허가제 또는 면허제를 시행하고 있다"며 허가제 전환으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병원 부장은 "토끼와 거북이를 같이 전시하는 것은 서로에게 자극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 없다"며 "외국의 큰 동물원도 얼룩말과 기린처럼 서로 공격하지 않는 동물들끼리 합사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넓은 공간에서 서로 공격하지 않는 동물들끼리,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범위가 전제돼야 하고 결국 중요한 것은 서식 환경"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동물의 신체가 안 좋아지는 것은 '가혹 행위'"라며 "동물이 병에 걸렸다면 전시를 중단하고 합리적 수의학적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족관(실내)에서 동물을 전시한다고 해서 문제라기보단, 공간적 제약으로 인해 발생하는 학대성 전시, 소프트 웨어 부족 등과 같은 시스템 전체를 이야기해야 한다"며 "감독관제, 허가제를 통해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 무조건적인 희생만 강요하기보단 생태원, 서울대공원 등 대국민 서비스와 관련된 곳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부천의 한 아쿠아리움 내 전시된 야생동물 중에는 스트레스로 인해 정형행동이나 무기력증, 일부는 털이 빠져 있어 수의사의 진단이 필요해 보였다.(사진 왼쪽 동물권단체 하이 제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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