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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톡톡] "고맙고 사랑해"… 국내 '최장수견' 하늘로
[펫톡톡] "고맙고 사랑해"… 국내 '최장수견' 하늘로
  •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승인 2018.11.22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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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용희 수의사는 지난 21일 반려동물 장례식장 펫포레스트에서 순돌이의 장례를 치러줬다. © News1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국내 최장수견(犬)으로 기록된 24세(추정나이 27세) 순돌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이는 순돌이의 견주인 심용희 한국마즈 수의사가 지난 2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소식을 올리면서 알려졌다.

순돌이가 처음 발견된 곳은 1994년 어느 놀이터였다. 당시 치사율이 높은 홍역에 걸린 상태였다. 병에 걸린 순돌이를 누군가가 버린 것이었다. 나이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어 발견한 날이 순돌이의 생일이 됐다.

다행히 순돌이는 동물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홍역을 이겨냈고 좋은 가정에 입양도 갔다. 하지만 산책 중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골반뼈가 부러졌고 동물병원 앞에 다시 유기됐다고. 순돌이는 자연스럽게 병원 가족이 됐고 10년 넘게 병원에서 생활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건강 상태도 안 좋아지자 병원에서는 조심스럽게 안락사 얘기가 오갔다. 2006년 당시 심 수의사는 고양이 8마리를 키우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자신의 집에서 마지막을 편하게 보내주기 위해 데려가게 됐다.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한 그는 순돌이를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덕분에 2006년 입양 후 12년이 넘도록 큰 병 한번 앓지 않고 잘 지냈다고.

순돌이의 이 같은 사연이 공개되면서 누리꾼들의 위로가 이어졌다. 특히 노령견을 키우고 있는 누리꾼들은 인스타그램에 "순돌이는 하늘에서 잘 뛰어놀고 있을 것", "좋은 아빠를 만나 행복한 기억만 갖고 있을 테니 힘내시라", "누구나 한번은 겪어야 할 일이다, 우리 강아지도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순돌이와 친구가 될 수 있겠다" 등의 글을 남겼다.

순돌이 생전 모습과 영등포구청에서 발급한 동물등록증 사진. 1994년생으로 기록돼 있다. © News1

다음은 심용희 수의사가 순돌이에게 보내는 편지 전문.

순돌아,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

순돌아, 미안해. 아빠는 사실 우리 순돌이와 처음 만난 날짜를 기억하지 못해. 우리 순돌이는 아빠가 동물병원에서 일하면서 만나는 수많은 강아지들 중에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이제 아빠는 평생 11월 21일이라는 날짜를 기억하겠지? 별처럼 반짝이는 눈을 가진 순돌이가 하늘나라로 간 날이니까. 네가 떠난 오늘 새벽에 하늘도 슬픈지, 보슬비가 내리고 있더라.

우리 순돌이는 27세라는 국내 최고령견이라는 별명이 있지. 우리 순돌이가 건강한 것이 너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고, 순돌이 아빠인 내가 수의사라는 직업을 가졌다 해서 너무 자만했던 것 같아. 너를 보낼 준비를 오래 전부터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빠는 오늘 너무 당황스럽고 마음이 아팠단다.

너의 동생들인 강아지 4마리와 고양이 2마리는 평소에도 네가 워낙 조용하고 의젓하게 지냈기 때문인지 네가 다른 곳으로 간 것을 모르는 것 같아. 방금 전에도 서로 안기겠다고 아우성을 치더구나.

혼자만 온전히 받아도 모자랐을 사랑을 오지랖 넓은 아빠 때문에 너무 많은 형제들과 나눠 갖게 해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우린 다들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만났잖아. 이해해 줄 거지?

어떤 사람들은 '고작 개가 죽었는데 유난을 떤다, 세상에 얼마나 불쌍하고 딱한 다른 사연들이 있는 줄 아냐'라고 말하지도 몰라. 그래서 아빠는 내일이면 평상시와 같이 말하고 행동하고 웃고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아빠의 마음속에는 늘 순돌이가 있을 거야. 약속할게.

순돌아 고마워. 동물병원 수의사가 되겠다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서울에 올라와서 유난히도 예민하고 까칠한 성격에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고 외로워하던 아빠의 삶에서 우리 순돌이는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어. 아빠의 평생 꿈이었던 동물병원 수의사로서의 삶이 순탄치 않았을 때 너는 아빠가 살아갈 수 있게 한 유일한 안식처이자 버팀목이었단다.

늘 아침을 먹자마자 바로 낮잠에 드는 너였기에, 최근 몇 년 동안 아빠가 출근할 때 배웅을 해주지 못했는데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출근길 배웅해줘서 고마워. 아빠의 늦은 퇴근까지 떠나지 않고 버티어 주다가 아빠 옆에서 하늘나라로 떠나줘서 정말 고마워. 또 아빠가 지금까지 봐 온 무지개다리를 건넌 친구들 중 그 누구보다도 단정하고 온전한 모습을 끝까지 보여줘서 정말 고마워.

순돌아 사랑해. 아빠는 순돌이와 함께한 동안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늘 순돌이를 사랑할거야. 순돌아 사랑하고 사랑한다.

_비가 오고 하루 종일 흐렸던 2018년 11월 21일 새벽. 순돌이의 응석 많은 아빠이자 순돌이의 보호를 받으며 살았던 보호자가 순돌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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