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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논란 속에 개장한 영등포 실내체험 동물원 '주렁주렁' 가보니…
[르포]논란 속에 개장한 영등포 실내체험 동물원 '주렁주렁' 가보니…
  • (서울=뉴스1) 김연수 기자
  • 승인 2019.07.2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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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 구걸하는 수달, 정형행동 보이는 어미 왈라비


(서울=뉴스1) 김연수 기자 = "수달은 관람객들이 먹이 줄 것을 알고, 먹이를 구걸하는 거예요"

지난 24일 실내체험 동물원 주렁주렁 영등포점이 논란 속에 개장했다. 이날 9개의 시민단체가 영등포 타임스퀘어 앞에 모여 실내체험 동물원의 확산을 규탄하고, 국회에 발의된 동물원수족관법의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같은 논란은 지난 2월부터 예고됐다. 실내 동물원이 생긴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시선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일부에서는 동물원 개장을 환영하는 반면 또다른 한 쪽에서는 동물학대라며 반대하고 나섰다.(관련기사 : 영등포 타임스퀘어 실내동물원 개장 예고, 환영 vs 반대 '팽팽')

개장 첫날 주렁주렁 영등포점을 찾았다. 최태규 수의사와 함께 실내동물원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관계자들은 "어디에서 왔냐, (기자를 제외한)집회 참가자는 입장이 어려울 수 있다"며 다소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매표소 앞에는 어린 자녀와 함께 찾은 가족 단위 관객들이 눈에 띄었다. 직원들은 손 소독제를 뿌려주며 "먼저 다가가서 동물을 잡으려고 하지 마세요"라고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처음 마주한 것은 옹기종기 모여 있는 홍학과 홍따오기였다. 새들과 관람객 사이에는 발목 정도의 인공 연못이 울타리 대신 놓여 있었다. 홍따오기 몇 마리는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면서도 관람객들이 있는 쪽으로는 건너오려고 하지 않았다. 홍학도 서 있는 작은 사각형 발판 위에서 제자리걸음을 할 뿐이었다.

최 수의사는 "새들이 관람객 쪽으로 넘어오지 않도록 훈련된 것 같다"며 "장다리물떼새와 뒷부리장다리물떼새는 윙컷(날개깃의 일부를 잘라 장거리를 날지 못하게 하는 것)이 돼 있다"며 "대부분의 동물원에서 날 수 있는 새들에게 하는 시술인데, 유럽연합에서는 이를 금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관 내 동물들이 관람객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은신처는 없어 보였다. 사진 (위 왼쪽)홍학과 홍따오기, (위 오른쪽) 장다리물떼새와 뒷부리장다리 물떼새, (왼쪽 아래) 사막여우, (오른쪽 아래)기니피그 © 뉴스1 김연수 기자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미어캣, 사막여우, 코아티 등의 소형 포유류들이 있었다. 사막여우 한 마리는 사람들을 경계하듯 항아리 안으로 몸을 숨겼다. 하지만 항아리 입구가 관람객들을 향해 있어 속이 훤히 보였다. 최 수의사는 "사막여우는 성격이 매우 예민한 편인데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며 "항아리 안에 숨어서도 불안한 표정과 몸짓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특히 어미 왈라비는 한쪽 구석에서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동안 계속 침을 흘리는 모습이 관찰됐다. 이를 본 일부 관람객들이 "왜 저렇게 침을 흘리지, 계속 흘리네"라고 말했고, 사람들이 모여들자 사육사가 갑자기 다가갔다. 그러자 놀란 어미는 새끼를 버려두고 좌우로 왔다 갔다를 반복하는 정형행동을 보였다.

황주선 야생동물보전협회(Wildlife Conservation Society·WCS) 베트남 지부 야생동물 보건팀 수의사는 "왈라비가 침을 흘리는 것은 스트레스, 부적절한 실내기온에 의한 고체온, 구강감염병 등 3가지 가능성이 있다"며 "새끼가 있어서 기본적으로 예민한 상태인데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노출되면서 불안감으로 인해 나타나는 전형적인 이상행동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동물원 이곳저곳에는 '서로 조심! 눈과 마음으로 예뻐해 주세요'와 '교감 전, 후 반드시 손을 씻어 주세요'라는 모순된 내용의 팻말이 나란히 걸려있었다. 하지만 관람객과 동물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해 손을 뻗으면 만질 수도, 넘어 다닐 수도 있었다.

수달은 사람들을 보자 먹이통에 손을 넣고 안절부절못했다. 관람객이 먹이를 유리통 안으로 넣어주면 수달이 받아먹을 수 있도록 구조였다. 최 수의사는 "수달은 먹이 주기 체험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라며 "먹이를 구걸하고 있는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펭귄들은 물속에서 막 나온 듯 몸이 젖은 채 나란히 서있었다. 그러면서 물기를 털듯 몸을 털기를 반복했다. 최 수의사에 따르면 이같은 행동은 햇빛과 바람을 맞으면서 털을 말리고, 체온을 조절하는 것이다.

그는 "실내 동물원이 아무리 신경을 쓴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야생동물을 위한 환경을 갖추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며 "동물복지를 한다면 이곳은 천장이 열리는 구조여야 한다. 결국 다양한 기후에서 온 각종 동물을 한 곳에 넣어둔다는 것 자체가 동물의 생태 습성을 모두 무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수달은 사람들을 보자 먹이통에 손을 넣은 채 안절부절 못했다. © 뉴스1 김연수 기자

구석구석을 둘러본 최 수의사는 앞으로 생길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초식동물인 왈라비는 풀을 뜯어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안에선 '뜯어먹는' 행위가 불가능하니 건초 등 아무거나 먹다가 잇몸에 염증이 생기는 방선균증(actinomycosis)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며 "또 왈라비는 점프하며 이동하는데 팰랫을 뿌려놓긴 했지만 미끄러운 바닥이 부분부분 그대로 드러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카나리아, 십자매 등의 여러 새가 한곳에 모여 있던 전시관에선 일부 새들이 나가려고 창문에 계속 부딪히거나 사람들 쪽으로 날아다니는 모습이 관찰됐다"며 "개장 첫날이라 동물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직원이 여러 명 있던 것은 장점이지만, 그 직원들이 어느 정도의 전문 지식을 갖추고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이에 대한 법적 기준이 없기 때문에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유사 수족관·동물원을 금지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모든 수족관, 동물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동물복지가 지켜질 수 있는 서식환경과 관리기준을 갖추고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전국 곳곳에 체험동물원, 실내동물원, 이동동물원, 동물 카페, 온갖 종류 동물원이라 부를 수 없는 유사 동물원·수족관이 난무한다"며 "최소한의 동물복지 기준도 없는 그곳에서 동물들은 생태 습성과는 무관한 정형행동 멈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동물원수족관법)이 2017년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업계의 반발로 머리 자르고, 꼬리 자른 '껍데기 법'"이라며 "이런 현실을 개선해 줄 법이 여러 건 발의돼 있다. 국회는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동물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조속히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해 한정애·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Δ동물원이 아닌 시설에서 야생동물을 전시하는 행위 금지 Δ야생동물 판매 허가제 도입 및 통신판매 금지 Δ학술 연구 또는 야생동물의 보호·증식 및 복원 목적 등을 제외한 야생생물의 판매 제한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실내 체험동물원의 동물들은 단절된 밀폐공간이나 생태 특성과는 무관한 곳에서 생명이 아닌 물건으로 취급되고 있다"며 "체험이라는 미명 아래 지속적으로 학대에 가까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동물은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물 각각의 생태 특성이 있고, 그 생태 특성에 따라 사육환경도 달라져야 한다"며 "조속히 관련법을 개정해 인간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동물원법이 시행된 지 2년이 지나면서 법안 제정 당시 소극적으로 추진되었던 부분들이 현실에서의 문제로 드러나고 있다"며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되고 있는 동물들의 복지 문제, 맹수 탈출사고 등이 발생하면서 현행 동물원법의 개정 필요성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된 바 있다. 저와 동료의원들이 발의한 동물원수족관법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돼 전시동물의 복지 개선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진 (위) 코아티가 떨어질 수 있지만 밑에는 아무런 안전장치가 돼 있지 않았다. © 뉴스1 김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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