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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개들의 지옥' 애린원 철거되던 날…"1000여마리 생지옥 탈출"
[르포]'개들의 지옥' 애린원 철거되던 날…"1000여마리 생지옥 탈출"
  • (포천=뉴스1) 김연수 기자
  • 승인 2019.09.26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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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린원 있던 부지에 새로운 시설 마련…1300여 마리 보호 예정
유영재 대표 "유기동물 보호소 중성화 미비 문제 커"
국내 최대 사설 유기동물보호소 '애린원'이 지난 25일 철거됐다. © 뉴스1

(포천=뉴스1) 김연수 기자 = "거긴 보호소가 아니라 개 지옥이에요. 봉사자들도 마음 아플까 봐 선뜻 가지 못하는 그런 곳…"

경기도 포천시에 위치한 사설 유기동물 보호소 '애린원'은 개들이 너무 많아 지금껏 개체 수를 파악해 볼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곳이다. 한때 개가 3000마리였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이었다. 문제는 이 많은 개들이 제대로 된 '보호'는커녕 자체 번식으로 인해 새끼가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한다는 점이다.

유영재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를 필두로 약 3년 전 결성된 시민단체 '생명존중사랑실천협의회'(생존사·현재 비글구조네트워크로 통합)는 권유림 변호사와 함께 애린원 철거를 위한 법정 싸움을 이어왔다. 애린원 땅 주인과 직접 임대계약을 맺고 토지를 점거한 K소장을 상대로 명도소송을 진행했다.

그리고 지난 2월 의정부지방법원은 애린원과 K소장에게 '14일 이내 자진철거하라'는 계고장을 전달했다. 하지만 K소장이 이에 불응하면서 2년 7개월 만에 강제철거 명령을 이끌어냈다. 지난 25일은 생존사가 '꼭 꺼내주겠다'는 개들과 후원자들에게 한 약속이 지켜지는 날이었다.

철거를 시작하기로 한 이날 오전 10시쯤, 왕복 1차선 도로 옆 산길 중턱에 위치한 애린원 맞은편에는 철거를 위해 모인 법원 집행관, 수의사, 훈련사, 철거인력, 봉사자 등 200여 명이 K소장과 대치 중이었다. K소장은 문을 잠근 채 가스통을 들고와 "들어오면 불을 붙이겠다"며 협박을 했다. 결국 소방관, 경찰까지 부르는 소동이 일기도 했지만 결국 집행관의 제지로 관계자들이 문을 넘어 소장을 끌고 나오면서 철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애린원 입구에서 K소장과 경찰이 대치하고 있다. © 뉴스1

보호소 안에는 법원에서 지정한 훈련사와 수의사 21명, 경호 인원 4명, 철거인력 50명만 들어갈 수 있었다. 봉사자들은 인간 띠를 만들어 준비돼 있던 켄넬을 안으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훈련사의 지시 아래 목줄 없이 나와 돌아다니는 개들부터 켄넬 안에 넣어 밖으로 이동시켰다. 켄넬을 넘겨받은 봉사자들이 안전한 곳으로 옮기면 집행 관계자가 개체 수를 파악했다.

애린원에서 구조돼 나오는 개들 © 뉴스1

보호소 안 개들의 상태는 심각했다. 개들 대부분이 피부병에 걸려 털이 빠져 있었고, 곳곳에서 죽은 듯 누워만 있거나 아픈 부위를 계속 핥는 개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한 봉사자는 개가 불러도 반응이 없자 서둘러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견사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물그릇, 사료 그릇에는 죽은 쥐가 떠 있었고, 개 사체가 발견되기도 했다. 후원자들이 보내준 후원 물품은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컨테이너 아래를 한참 쳐다보던 한 수의사는 "이 안에 새끼들이 있다"며 이리 저리 옮겨다니더니 이내 눈도 뜨지 못한 새끼들을 꺼냈다. 어미는 안에서 죽어 있었다. 구조가 진행되던 이날도 새끼를 낳고 있는 개, 태어난지 얼마 안되는 개들이 발견됐다.

그동안 수의사 단체 등이 의료 봉사를 진행하며 이곳의 개체수 조절을 하려 했지만 보호소로 새로운 개들이 계속해 들어오면서 자체번식으로 인해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자체번식으로 개체수가 계속 늘어난 애린원 © 뉴스1

겁에 질린 개들은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공간을 찾아 숨어 있었다. 그 중 한 마리를 발견한 수의사가 "괜찮아, 겁내지 마"라며 달래봤지만 몸이 뻣뻣이 굳은 개는 나올 줄 몰랐다. 수의사는 "많은 개들이 한 곳에 모여있다 보니 약한 개들은 살기 위해선 이렇게 숨어지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뒤쪽으로 개들이 많이 숨어있다. 이 아이들은 마지막으로 구조를 진행해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매주 애린원에 봉사를 다니다 생존사와의 소송이 진행되면서 K소장의 거부로 6개월 동안 애린원에 오지 못했다는 봉사자들은 "이제 집에 가자"며 한 마리씩 안아 켄넬에 넣었다. 그는 "꽤 오래 못 봤는데 이렇게 다가오는 것을 보면 그래도 개들이 알아보는 것 같다"며 행복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K소장은 오랜 봉사자들의 봉사 출입을 6개월간 막기도 했다. © 뉴스1

이날 오전 10시반부터 시작된 구조는 오후 9시까지 이어졌지만 보호소 내 개들을 전부 다 구조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구조돼 파악된 개들만 1041마리. 하지만 잡지 못한 개 수백여 마리가 아직 보호소 안에 남아 있다.

강제집행 대상은 애린원이 불법 점거하고 있던 부지 위 시설물들로, 철거 전 개들의 구조가 먼저 진행된 것이다. 유영대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는 "애초 이날 오후 2시까지 철거를 끝내려 했지만 구조가 전부 안 됐기 때문에 2주 후 다시 날짜를 잡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구조된 개들은 생존사가 마련한 인근 부지에 머물다가 철거가 끝나고 애린원이 있던 자리에 새 시설물이 마련되면 그곳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동안은 켄넬에서 지내야 하기 때문에 많은 봉사자들과 후원 물품이 필요한 상황이다.

애린원 맞은 편에 생존사가 마련해 둔 부지에서 구조된 개들은 당분간 생활해야 한다. 사진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 뉴스1

유 대표는 "K소장은 이날 퇴거하면서까지 개 30마리를 용달차를 불러 데려가려고 해 봉사자들이 그 길을 막고 제지했다"며 "이삿짐만 가지고 떠나는 그 와중에도 1톤 트럭을 불러 후원자들이 개들을 먹이라고 보내준 사료를 한가득 실어 갔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애린원 철거는 단순히 애린원만의 문제라기보단 '사설 유기동물 보호소'의 문제점을 알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보호소'는 그 동물이 죽을 때까지 돌보는 장소가 아니라 새로운 가정을 찾아줄 때까지 임시로 돌보는 사회적 장소다. 아무리 좋은 보호사라도 가정보다 나을 수 없다. 더군다나 밀집된 공간에서 병들어 죽거나 다른 친구들에게 물려 죽는 곳은 더 이상 '보호소'가 아닌 '지옥'이다"며 유기동물 보호소의 중성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이날 철거 작업에 참여한 이학범 수의사는 "수의대학생 시절 꾸준히 애린원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생각했었다"며 "뭔가 근본적인 해결을 하고 싶었는데 그 방법을 몰라 그저 봉사활동만 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올해 초 애린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됐고 수의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 기꺼이 참여했다"며 "10년 전부터 애린원 봐왔던 사람으로서 다양한 감정이 들었다. 워낙 구조된 아이들이 많아 앞으로도 꾸준히 관심 갖고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유기동물보호소 애린원 모습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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