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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들이받고 사람 물고' 도심서 날뛰는 멧돼지들…왜?
'차 들이받고 사람 물고' 도심서 날뛰는 멧돼지들…왜?
  • (광주=뉴스1) 허단비 기자
  • 승인 2019.10.29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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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때도 없이 출몰…"애들 공격할까 아찔" 시민 불안감
"기후변화로 개체 수 증가, 산림개발로 서식지는 좁아져"
28일 오전 6시4분쯤 부산 온천동의 한 아파트 지하2층에서 경찰이 멧돼지를 실탄으로 사살하고 있다.(부산지방경찰청 제공) /© 뉴스1

(광주=뉴스1) 허단비 기자 = 멧돼지가 사람과 차를 들이받는 사고가 전국 도심 곳곳에서 연이어 발생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28일 오전 4시33분쯤 부산 동래구 명륜동에서 멧돼지 5마리가 집단으로 출몰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소방대원은 마취총을 맞고도 달아난 멧돼지를 잡기 위해 일대 수색을 벌였다.

달아난 멧돼지들은 오전 5시2분 동래구 명륜동 한 골목에서 한 마리, 오전 5시19분 인근 폐가 마당에서 또 다른 한마리가 경찰이 쏜 총에 사살됐다. 이어 오전 6시4분과 오전 6시56분쯤 각각 다른 장소에서 멧돼지 두 마리가 잇따라 포획됐다.

하지만 포획된 멧돼지 4마리(40kg 3마리, 30kg 1마리)의 어미 멧돼지(100kg 이상)는 현재 포획되지 않아 소방당국 등이 계속 수색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멧돼지의 도심 출몰은 계절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 25일 오전 1시쯤 광주 서구 매월동 서광주역 인근 제2순환도로에서도 멧돼지가 출몰했다는 신고가 동시다발적으로 접수됐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차 사고를 막기 위해 경찰차 등으로 멧돼지를 구석으로 몰아넣은 후 실탄 10발을 쏜 후에야 멧돼지를 사살할 수 있었다. 포획 과정에서 경찰관 한 명이 멧돼지 공격에 다치기도 했다.

앞서 23일 오전 0시43분쯤 경부고속도로 진입로에서 BMW 승용차가 멧돼지 2마리를 충격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승용차 앞 범퍼가 일부 파손됐고 차에 부딪힌 멧돼지 한 마리는 현장에서 죽고 한 마리는 달아났다.

진입로가 아닌 고속도로 한가운데에서 발생했다면 대형 인명피해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사고였다.

광주에 사는 송모씨(53)는 "농가가 밀집한 시골도 아니고 도심 한가운데에 멧돼지가 출몰한다는 뉴스를 여러차례 접하다 보니 당장 내 눈앞에 멧돼지가 나타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된다. 특히 멧돼지 출몰시 대처 능력이 전혀 없는 아이들이 걱정되기도 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 News1 DB

멧돼지 도심 출몰은 해마다 반복돼왔다.

하지만 최근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면서 멧돼지가 도심으로 내려오는 빈도수가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야생동물 전문가들은 따뜻한 기후와 낮은 적설량으로 멧돼지 생존율이 높아졌고 인간의 개발행위로 야생동물 서식지가 줄어든 것이 멧돼지 도심 출몰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김우신 서울대 산림과학부 야생동물학 교수는 "도심에 멧돼지 출몰이 늘어나는 이유는 개체 수가 늘고 행동권이 확대된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멧돼지 개체 수가 늘면 출몰 횟수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멧돼지는 보통 4, 5월에 태어나 그해 겨울에 약 50%가 죽는데 최근 날씨가 따뜻해지고 적설량도 줄면서 생존율이 80%까지 늘어난 것이 개체 수 증가에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또 "기존 개체군이 인간의 개발(산림 훼손, 골프장 개발 등)에 의해 자기 서식권역이 줄면서 도심으로 행동권을 확대한 것도 이유"라며 "서식지가 줄어드니 먹이를 찾아 행동반경을 넓힐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단순히 기후변화와 인간의 개발이 멧돼지 출몰의 이유라고 단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야생보다 잘 가꾼 농작물을 맛본 후 멧돼지들이 먹이를 찾아 도심으로 자주 내려오는 것도 이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생물자원관이 지난해 발표한 야생동물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멧돼지의 연도별 서식 밀도는 지난 5년간 증가세를 보였다.

2014년에 100헥타르(ha)당 멧돼지 4.3마리가 서식하던 것에 비해 2018년에는 100ha당 5.2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란선의 멧돼지 서식밀도 그래프(환경부 제공) 2019.10.28 /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연도별로는 100ha당 2014년 4.3마리, 2015년 5.0마리, 2016년 4.9마리, 2017년 5.6마리, 2018년 5.2마리로 집계됐다.

온난한 기후로 생존율이 높아진 멧돼지들이 개체 수가 증가했는데 오히려 인간의 산림 개발 등으로 살 수 있는 공간이 줄어 서식밀도가 증가한 것이다.

멧돼지 한 마리당 서식할 수 있는 영역이 줄면서 먹이를 찾아 도심으로 행동반경을 넓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에는 멧돼지의 먹이 섭취가 늘고 짝짓기를 시작하는 가을과 초겨울뿐만 아니라 봄과 여름에도 출몰 횟수가 증가하며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소방청 관계자는 "멧돼지를 직접 마주쳤을 때 큰소리를 지르면 오히려 멧돼지가 흥분할 수 있으니 침착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먼저 움직이지 않고 멧돼지 눈을 똑바로 쳐다봐야 한다. 매우 놀라거나 달아나는 행동을 보이면 겁을 먹은 것을 알고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일정 거리에서 발견했을 땐 신속히 안전한 장소로 이동하고 차로 멧돼지를 쳤을 경우엔 갓길에 정차한 후 즉시 소방당국 등에 연락을 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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