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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울까 굶을까…한파 속 길냥이 걱정 앞서는 '쪽방촌 천사다옹~'
추울까 굶을까…한파 속 길냥이 걱정 앞서는 '쪽방촌 천사다옹~'
  • (서울=뉴스1) 김연수 기자
  • 승인 2019.12.06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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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영등포역 뒷골목 캣맘·캣대디들 "좋은 사료 못줘 미안"
동물단체들 의료·사료·겨울집 후원 "홀몸도 힘든 그들, 감동"
영등포 쪽방촌에 사는 할아버지가 10여년간 돌봐온 '똘망이' © 뉴스1 김연수 기자

(서울=뉴스1) 김연수 기자 = "아이고, 이놈들 이제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겠구나"

체감온도가 영하 7도까지 내려간 지난 5일 오전 12시, 영등포역 6번 출구 쪽방촌으로 들어가는 길목 초입에는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선 노숙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들 맞은편 작은 공터 앞에는 동물단체 활동가들이 모여있었다. 활동가들이 들고 있는 길고양이 겨울집을 보며 방금 식사를 마친 한 노숙자는 이같이 말했다.

동네고양이 서울연대, 동물구조119, 동물을위한행동 회원과 캣맘 등 5명은 추운 날씨에 사다리까지 들고 나타났다. 쪽방촌 캣맘, 캣대디들이 돌보고 있는 길고양이에게 겨울집을 선물하기 위해서다.

영등포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는 봉사자들 © 뉴스1 김연수 기자

올해 8월부터 이곳 길고양이들을 돌봐왔다는 이보경 동네고양이 서울연대 대표는 "길고양이 중성화를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었는데 얼마 안 돼 다시 돌아와 보니 고양이는 없고 문만 닫혀 있었다. '누가 방해하나'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고양이를 돌보던 캣대디가 악의적으로 설치한 것일까 싶어 닫았던 것이었다"며 "그렇게 만삭의 어미고양이를 받아준 노부부, 학대받던 길고양이들을 구조한 아주머니 등 쪽방촌의 캣맘, 캣대디를 알게됐다"고 말했다.

이후 이들 단체는 아픈 고양이들의 치료와 쪽방촌 캣맘, 캣대디들에게 사료를 후원하는 방식으로 돕고 있었다. 본업이 있기 때문에 해가 진 저녁에 찾아와야 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여성인 봉사자들이 사람도 자주 다니지 않는 곳에 길고양이 밥을 주러 온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했다.

올여름부터 이 대표와 함께 쪽방촌 길고양이들을 돌봐왔다는 민혜란씨는 "일부 노숙자분들 중 술에 취해 아무 데서나 노상방뇨하는 분들도 있고, 한번은 고양이용 캔 사료를 두고 갔더니 고양이 것인 줄 모르고 술안주로 전부 드셨다더라"며 "좋은 분들도 많아 얼굴이 익숙해진 주민분들은 보면 반갑게 인사해 주시고, 김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한다"고 전했다.

새 길고양이 급식소와 길고양이 겨울집. 원래 있던 스티로품 박스로 된 집에 때마침 길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가 쉬고 있었다. © 뉴스1 김연수 기자

이날 준비한 길고양이 겨울집은 모두 10개. 고양이들이 주로 다니는 장소에 나누어 설치했다. 그러다 활동가들이 "똘망아"라고 부르며 발을 옮긴 곳에는 검은색, 흰색 털이 예쁘게 섞인 길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이곳에 살던 할아버지가 10여년간 돌봐온 길고양이라고 했다.

임영기 동물구조119 대표는 "똘망이는 구내염 때문에 사료도 못 먹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구내염이라는 것을 모르니 그저 똘망이를 보며 '가슴이 미어진다'고 하셨다"며 "휠체어가 없으면 거동이 불편한 분이었는데 똘망이의 밥을 10년간 챙겨주셨다. 현재는 치료를 받고 많이 좋아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할아버지가 살던 집은 비워진 상태였다. 할아버지 건강이 갑자기 안 좋아지며 키우던 백구도 입양 보내고, 짐도 모두 정리하게 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쪽방촌 할아버지가 10여년간 돌봐온 '똘망이'. 할아버지의 입원으로 집은 비어있지만, 똘망이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 뉴스1 김연수 기자


쪽방촌 골목 초입에는 20여 마리의 길고양이들을 돌보는 캣맘도 있었다. 이 대표 말에 따르면 술에 취한 노숙자들이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거나 학대하는 고양이들을 하나둘씩 구조하면서 지금처럼 많이 늘어난 것이라고 했다.

"아주머니가 올해 여름 구조한 삼색이는 귀 끝에 날카로운 것이 관통한 상처가 있었다. 일부 노숙인들의 학대로 난 상처였다"며 "아주머니 본인 집 벽도 곰팡이가 가득하고 도배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인데 이렇게 학대받는 길고양이들을 구조해 돌보고 계셨다. 그런데도 '저렴한 사료밖에 줄 수 없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신다"고 말했다.

쪽방촌에 살며 본인도 힘든 상황이지만, 학대받는 길고양이를 구조해 돌보고 있는 캣맘. 사진 이보경 동네고양이 서울연대 대표 제공 © 뉴스1

이날 겨울집을 설치하며 누군가는 '사람도 먹고 살기 힘든데 고양이만 챙기느냐'며 불평을 늘어놓을 법도 했지만 "(똘망이를 가리키며)얘는 길고양이가 아니라 여기 주민이 돌보는 고양이다. 어디서 왔느냐"며 고양이를 챙기거나 새로운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주민들이 많았다.

이 대표는 현재 이곳 주민들도 함께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했다. 그는 "영등포역 앞 화려한 건물들 뒤에는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 쪽방촌이 있다"며 "그 속엔 힘든 상황에서도 길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내주고 따뜻한 자리를 내어주는 마음이 부자인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네이버 해피빈 모금을 통해 쪽방촌 길고양이들의 사료나 치료비는 우리가 후원을 하고 있지만, 고양이뿐만 아니라 사람도 돕기 위해 동물자유연대와 방법을 찾고 있다"며 "좋은 기업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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