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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전기도살 사건 담당검사 "개·사람들의 '고통'에 주목했습니다"
개 전기도살 사건 담당검사 "개·사람들의 '고통'에 주목했습니다"
  •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승인 2020.01.05 1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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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피플]개 도살한 업자 첫 '유죄' 이끈 박재현 부장검사
6년째 푸들과 한솥밥 "개식용 근절 판결 아니야…제도·인식 개선 필요"
박재현 서울고등검찰청 부장검사 © 뉴스1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개 전기 도살 사건과 관련해서 검사로서 주목한 것은 '고통'이었어요. 살아있는 생명의 숨이 끊어질 때 고통을 느꼈을까, 도살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잔인하다고 생각해서 심적 고통을 느꼈을까 두 가지였죠."

지난 3일 만난 박재현 서울고등검찰청 부장검사(이하 부장검사)의 말이다. 박 부장검사는 최근 서울고등법원이 동물보호법 위반이라고 판단한 '개 전기 도살' 사건을 맡은 담당 검사다. 푸들 종의 반려견 해피를 6년째 키우는 일명 '개아빠'이기도 하다.

앞서 지난달 19일 서울고법 형사5부(김형두 부장판사)는 전기가 흐르는 쇠꼬챙이를 개의 주둥이에 대고 도살한 혐의로 기소된 개 사육업자 A씨의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서 원심인 무죄를 파기하고 벌금 100만원의 선고를 2년간 유예했다. 개의 뇌가 아닌 주둥이에 전기를 흘려 죽이는 것은 동물보호법에서 금지하는 '잔인한 방법'이라는 법원의 첫 유죄 판단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 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서울고검에서도 중요사건으로 분류했다.

◇ "뇌 아닌 입에 전기 충격, 무의식 상태 아니다"

박 부장검사가 주목한 두 가지는 1·2심 무죄 판결을 파기환송심에서 유죄로 뒤집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동물단체나 육견협회의 맹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건이라 재판부의 고심도 컸다. 재판부가 법에 근거한 판단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박 부장검사의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저도 집에서는 강아지를 가족처럼 키우지만 일터에서는 검사로서 법의 기준에 엄격히 맞췄다"며 "법의 기준은 천재들의 지식이 아니다. 불특정다수, 즉 보통 사람들이 봤을 때 사회통념상 잔인하냐 아니냐다. 누가 보더라도 개 도살 장면이 잔인한 것은 맞으니 이것을 어떻게 처벌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자료를 찾고 또 찾았다"고 설명했다.

동물의 생산·판매업을 포함한 축산법상 개는 소·돼지·닭 등과 함께 가축의 범위에 들어간다. 하지만 식품 가공을 위한 도축이 목적인 축산물위생관리법상 개는 가축의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 때문에 개식용 반대론자들은 축산법상 개를 가축에서 제외할 것을, 개식용 찬성론자들은 반대로 축산물관리법상 개를 가축의 범위에 넣어서 인도적 도살을 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국내법상 개가 가축이냐 아니냐 조차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결국 다른 동물들의 도살 방법이 동물보호법상 동물학대 여부를 판단하는 근거가 됐다. 박 부장검사는 "전임 검사가 동물학대를 입증해줄 우희종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를 증인 신청하고 미국 수의학회 도축 지침을 찾아둔 상태였다"며 "그래서 이 자료를 토대로 인도적 도살이 무엇인지 우 교수의 입을 통해 찾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도적 도살의 핵심은 무의식 상태를 야기했느냐다. 축산물관리법상 도살을 위해서는 타격법·전살법·총격법·자격법·이산화탄소 가스법을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목동맥을 절단한 뒤 피를 빼내는 방혈 작업을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때려잡는 타격법이나 칼로 목 부위 경동맥을 절개하는 자격법은 비인도적으로 인식돼 요즘은 이산화탄소 가스법을 사용하는 추세다. 전기 충격으로 도살하는 전살법은 주로 돼지 등을 도축할 때 사용된다.

동물보호법상 동물학대는 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다. 이에 따라 전기 도살이 잔인한 방법이냐 아니냐는 매우 중요한 쟁점이었다. A씨는 380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쇠꼬챙이를 사용한 것은 축산물관리법상 도살 방법을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칫 또다시 무죄가 나올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박 부장검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A씨의 주장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우 교수의 증언으로 A씨의 행위가 잔인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박 부장검사는 "피고인에게 개를 어떻게 잡았냐고 물었더니 입에 전기를 가하니까 바로 쓰러져서 토치로 태웠다고 하더라. 증인으로 나온 우 교수는 380볼트의 전기를 뇌에 대면 무의식 상태가 되는데 입에 대면 안 된다고 했다"며 "또한 기절을 시킨 다음에는 방혈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하지 않아 인도적 도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재판부에 강조했다"고 말했다.

 

 

 

박재현 서울고등검찰청 부장검사와 반려견 해피 © 뉴스1

 


◇ "개식용 문화 줄이려면 정책·인식 개선 필요"

개 전기 도살 사건 피고인은 유죄를 받았지만 따지고 보면 이 판결은 도살 기준을 제시한 것 뿐이다. 개식용 문화를 근절하는 판결은 아니다. 만약 개의 입이 아닌 뇌에 전기 충격을 가했다면 재판 결과가 달라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A씨는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박 부장검사는 개식용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개 사육업자들이 업종을 변경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 마련을 해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그는 "반려동물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사람들이 개를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과도기라 갈등이 있지만 개를 먹는 문화는 점점 없어질 것"이라며 "개농장을 운영하는 사람들 중에는 힘든 사람들도 많다. 우리나라는 복지국가니까 정부가 개를 소득원으로 하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보호대책을 세워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대로 개식용 문화는 서서히 사라지는 분위기다. 부산시와 성남시 등 지방자치단체들도 개시장 폐쇄에 앞장서고 있다. 일부 동물단체들은 개농장 업주들을 설득해 폐쇄 각서를 받고 개들을 구매한 뒤 해외로 입양을 보내고 있다. 이런 노력들이 개식용 문화를 바꾸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일부 개식용 반대론자들의 지나친 비난이나 개식용 금지 법제화 강요는 다른 동물들과의 형평성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이는 개를 먹지 않는 사람들까지 오히려 거부감을 갖게 하는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개를 먹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박 부장검사의 생각이다.

"요즘 핵가족화로 인해 가족구성원간 대화가 줄어들잖아요. 그런데 개들이 있으면 대화를 많이 나누게 돼요. 개는 우울감을 없애고 행복감을 증대시켜 주기도 하고요. 집에 있는 반려견 이름이 해피라서 부를 때마다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개는 이렇듯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입니다. 국회의 법 개정과 정부의 정책 개선,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함께 이뤄질 때 개식용 문화도 언젠가 사라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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