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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자의 동행]"함께 살자냥~" 쑥섬 고양이들 중성화하던 날
[최기자의 동행]"함께 살자냥~" 쑥섬 고양이들 중성화하던 날
  • (고흥=뉴스1) 최서윤 기자
  • 승인 2020.05.09 0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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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구조119, 길고양이 중성화 의료 지원 나서
주민과 길고양이가 함께 살아가는 문화 조성 중
[편집자주]반려동물 양육인구 1000만명 시대. 전국 각지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반려동물 관련 행사가 열립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 기미를 보이면서 중단됐던 행사들도 속속 재개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꼭 가보고 싶은 행사인데 거리가 너무 멀거나 시간대가 맞지 않아 놓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이런 행사들을 '최기자'가 대신 가서 생생하게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동물 구조 현장이나 야생동물 등 '생명'과 관련된 현장은 어디라도 가겠습니다.

전남 고흥군 애도(쑥섬)에 사는 길고양이들. © 뉴스1 최서윤 기자

(고흥=뉴스1) 최서윤 기자 = "노랑아~ 잠깐만 기다려. 금방 끝날 거야. 어머, 고양이 귀가 커팅이 돼 있네요. 그냥 풀어줘야겠어요."

지난 3일 찾은 전남 고흥군 애도(이하 쑥섬)의 날씨는 봄비에 매서운 바닷바람까지 겹쳐 우산도 펴기 힘들었다. 포획틀에 갇힌 길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더 처연하게 느껴진 이유다. 중성화 수술을 위해 길고양이 포획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포획한 고양이의 귀 끝이 잘려 있는 것을 보고 자원봉사자들은 곧바로 다시 풀어줬다. 귀 끝이 잘려 있다는 것은 중성화를 했다는 표시이기 때문.

동물구조119(대표 임영기, 이하 구조대)와 봉사자들이 길고양이 의료지원을 위해 쑥섬을 방문했다. 이곳에는 20명의 주민들이 50여마리의 길고양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 구조대가 수의료지원을 위해 쑥섬을 찾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 동물보호활동가인 정소현씨가 지난해 우연히 이곳을 찾았다가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고양이들을 발견했고 쑥섬지기인 김상현씨, 구조대와 논의 끝에 겨울집도 만들어 주고 수의료지원을 추진하게 됐다.

이곳 주민들의 대다수는 80대 이상 고령자들이다. 주민들보다 2배 이상 많은 길고양이들을 챙기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 외부의 도움이 절실했다. 이에 구조대는 지난달 수의료지원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와 비 소식으로 인해 한 차례 연기됐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진행하게 됐다. 5월은 고양이들의 번식기라 이 때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으면 개체수 조절이 더욱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길고양이 개체수 조절을 위해서는 포획과 중성화 수술, 방사(TNR) 작업이 필요하다. 중성화는 고양이의 발정기 울음소리를 줄여준다. 이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이자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안이기도 하다. 구조대와 봉사자들은 섬에 도착하자마자 TNR을 위해 조를 나눠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고양이 포획에는 박혜경 부산동물사랑길고양이보호연대 대표와 류승현 동국대 동아리 동냥꽁냥 회장,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동아리 함께하냥에서 활동 중인 조희강, 정유석씨 등이 나섰다. 비도 오고 세찬 바람 때문에 고양이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각오로 고양이를 기다렸다가 한 마리, 두 마리씩 포획에 성공했다.

기자도 포획에 동참했다. 포획틀 안에 고양이 전용 참치 캔을 넣고 고양이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술래잡기도 이보다 어려울까? 들어올 듯하면서도 주위만 맴돌다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고양이가 야속하기도 했다. 고양이를 기다리다 궁금해서 참치 캔을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한번 먹어봤다. 사람 참치 캔만큼 맛있었다. 다만 동물에게 염분이 좀 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양이들을 보고 있으니 이 섬엔 왜 강아지가 없는지 궁금해졌다. 쑥섬지기에 따르면 과거 이곳에서는 1년에 한번 정도 당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당제사는 마을신을 위한 제사다. 그런데 개와 닭이 울면 귀신이 도망간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쑥섬지기는 "옛날에 당제사를 지낼 때 개를 키우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얘기를 들으니 쑥섬에 별칭으로 붙은 '고양이섬'이란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듯 했다. 고양이 귀 모양의 지붕과 조형물도 달리 보였다.

포획에 성공했지만 이미 중성화된 고양이들은 풀어주고 10마리의 고양이들은 수술에 들어갔다. 고유거(유기동물과 함께하는 애니밴드) 수의사와 일산 조은옥 이솝동물병원장, 김동근 초원동물병원장은 길고양이라고 대충 수술하지 않았다. 고양이의 몸무게를 정확히 잰 뒤 마취약을 투약했다. 그리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재빨리 수술했다.

조 원장에게 수의료 봉사가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내 몸이 아직 동물들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힘들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이번에 봉사 간다고 했더니 캣맘인 박은성씨가 마취를 위해 고정을 하는 기구인 포크도 구해다줬다"며 자랑했다.

박성희 동물구조119 팀장은 수술이 끝나고 마취에서 아직 깨지 않아 축 늘어진 고양이들을 이동상자에 넣었다. 그리고 고양이들이 깰 때까지 기다렸다. 마취에서 깬 고양이들에게는 '우린 널 해치지 않아'라는 의미의 눈키스를 날리며 안심시켰다.

그렇게 10마리의 중성화 수술이 끝났다. 첫 번째 방문 때 27마리 고양이를 중성화한 숫자에 비해서는 적었지만 날씨를 감안했을 때 큰 성과였다. 이날 중성화 과정을 모두 지켜본 쑥섬지기 김상현씨는 봉사자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고양이들의 몸 상태가 회복되면 방사해 주기로 약속도 했다.

쑥섬지기는 중학교 교사라고 했다. 약사인 부인과 함께 쑥섬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지난해부터 고양이를 돌보면서 생명에 대한 생각도 다시하게 됐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저도 활동가 덕분에 길고양이에 대해 알게 됐다. 구조대가 오고 고양이에게 사료를 먹이면서 어르신들도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다"고 전했다. 처음엔 사람 음식을 줬다가 사료로 바꾸니 밥 주기도 수월해지고 변 상태가 좋아져 청소하기 쉬워졌다는 것이다.

다만 구조대의 사료 후원에 한계가 있다 보니 매번 어르신들에게 사료를 사서 먹이게 하는 것까지 하기에는 부담이 된다는 얘기도 했다. 그는 "사료가 정기적으로 지원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겼다. 그러면서 "지금 이렇게 쑥섬을 가꾸는 이유는 관광지를 조성해서 돈 벌려는 것이 아니다"며 "원래 이곳에 있던 고양이들이 더 잘 지낼 수 있도록 주민들과 함께 도와주는 거다. 어르신들도 지금은 밥만 주지만 나중엔 고양이의 표정과 꼬리를 보고 동물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문화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영기 동물구조119 대표도 쑥섬이 전국 최초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문화 마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물단체 중에는 학대 장면과 같은 자극적인 영상으로 후원금을 받는 곳들이 꽤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이런 것들이 지나치면 결국 사람과 동물이 멀어지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서 임 대표는 '사람과 동물의 공존'을 꿈꾼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쑥섬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하나다. 사람과 동물이 어떻게 어울려 살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을 하나의 인식 변화가 사람과 동물의 공존을 위해 어떤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주는지 지켜봐달라"는 임 대표의 말은 빗소리와 함께 귓가에 더욱 의미있게 와 닿았다.

동물구조119와 고유거, 부산길고양이보호연대 등은 3일 전남 애도(쑥섬)에 사는 길고양이 의료 지원에 나섰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동물구조119와 고유거, 부산길고양이보호연대 등은 3일 전남 애도(쑥섬)에 사는 길고양이 의료 지원에 나섰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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