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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구용의 써봤구용] '써봤고양'…삼성 에코패키지로 고양이 용품 만들기
[권구용의 써봤구용] '써봤고양'…삼성 에코패키지로 고양이 용품 만들기
  • (서울=뉴스1) 권구용 기자
  • 승인 2020.06.29 0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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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보호 넘어선 업사이클링으로 CES 혁신상 수상
완성도 높지만 집사 생각…고양이들 위한 디자인 개선 필요
[편집자주]가전제품을 살 때, 주변에서 사용해 본 사람의 이야기나 영상을 주로 참고한다는 말에 직접 사용해보고 체험해본 생생한 리뷰를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려운 용어나 수치를 곁들이기보단 실제 접한 주관적인 느낌을 지인에게 묘사해주는 듯한 리뷰를 쓰고자 합니다.
사실 이름이 한 몫 톡톡히 했습니다. 사용기나 체험기가 궁금한 제품이 있으시면 언제든 하단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서울=뉴스1) 권구용 기자 = ◇그래서 만들어봤습니다.

삼성전자가 지난 4월부터 전 세계에 출고 되는 라이프스타일 TV 포장재의 각 면에 점을 찍었습니다. 한두 개가 아니라 거의 모든 면에 가로세로 1㎝ 간격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포장 박스 상단에는 QR코드를 인쇄해놨죠. 무슨 일일까요.

이 TV 포장지는 업사이클링(Up-cycling, 새활용) 개념을 도입한 '에코 패키지'(Eco package)입니다. 단순한 재활용 이상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것을 업사이클링이라고 합니다. 가장 대중적인 예시로는 트럭의 방수포를 이용해 만든 가방이 있죠.

삼성전자는 라이프스타일 TV '더 프레임'(The Frame)·'더 세리프'(The Serif)·'더 세로'(The Sero) 포장재로 고양이터널·책꽂이·탁상선반·수납함·TV콘솔·잡지수납함·고양이집 등 7개의 생활용 가구를 만들 수 있게 했습니다.

이 에코 패키지는 지난 1월 열린 세계최대가전박람회 CES 2020에서 소비자에게 주는 가치를 인정받아 'CES 혁신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신선했고 궁금했습니다. 기업이 버려지는 포장재에 신경을 썼다는 게 재밌고, 정말 쓸만한 제품을 손쉽게 만들도록 해놨을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봤습니다. 써보는건 고양이님들이 해주셨습니다.

◇공식 50분·3시간…현실은?


크고 두꺼운 박스와 노동의 흔적(스스로 제공)2020.06.29/뉴스1 © 뉴스1

만들기가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고양이터널과 고양이집을 총 3개 제작했습니다. 고양이 용품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만들 거라고 생각됐기 때문이죠. 다른 제품도 만들어볼까 생각해봤지만 주변 지인 중 한 명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삼성 TV 사는 사람이 포장박스로 가구 만들어 쓸까?"

맞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고양이용 제품은 다르죠. 고양이가 박스를 좋아한단 사실은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저같은 사람도 알고 있으니까요.

제가 사용한 박스는 가구 디자이너 부훌렉 형제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더 세리프 55인치 제품을 위한 포장재입니다. 가로 1.7m 세로 1.1m의 꽤 큰 사이즈입니다. TV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두꺼운 골판지 재질입니다. 상단 QR코드를 핸드폰으로 인식하면 에코패키지 전용 페이지로 구매한 제품과 크기에 따라 만들 수 있는 소형 가구들이 나열됩니다. 그중 하나를 선택하면 자세한 도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은 꼭 도면 그대로 가구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도면대로 하면 낭비되는 박스와 더 많은 노동이 투입됩니다.

삼성전자의 도면은 생각보다 여백을 많이 남기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최소화한다면 하나의 박스로 더 여러 개의 제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하나의 박스로 고양이 터널2개와 고양이 집 1개용 블록 대부분을 만들었습니다.

여백을 최대한 남기지 않고 제작하면 잘라야 하는 면이 적어지고, 더 많이 재활용 한다는 두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완성한 고양이터널과 고양이 집 © 뉴스1

제작과정으로 돌아가 도면을 휴대전화에 띄워놓고 포장재에 그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점 개수만 잘 세어주면 됩니다. 단, 많은 지인들이 도면이 이미 인쇄돼 있을 거라 생각하더군요. 그건 아닙니다.

재단과정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저는 가정에서 가장 많이 갖고 있을 일반적인 커터칼을 사용했습니다. 이 칼을 사용하면 두께가 1㎝가 넘어가는 골판지를 쉽게 자를 수 없습니다. 30대 남성인 저는 6번 정도 같은 곳을 그어주어야 절단이 되더라고요.

특히 1칸짜리 세밀한 디자인을 한 경우는 더더욱 자르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공식 제작 시간 50분이 걸리는 고양이터널은 재단까지하는데 1시간30분, 3시간짜리 고양이집은 5시간에서 6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소형가구를 만드실 분은 공업용 커터칼을 사용하시는걸 추천드립니다.

가장 어두운 새벽 다음에 동이 튼다고 했던가요. 다 잘라낸 박스들을 하나로 조립하는 것은 매우 쉽고(도면대로 잘 잘랐다면) 일종의 쾌감도 있습니다. 어릴적 블럭을 하나하나 조립해 상상하기 힘들었던 모양을 만들어냈던 그런 느낌이 듭니다.

◇인간 기준에선 높은 완성도…고양이 입장에서의 고민은 더 필요


이 새로운 것은 무엇이냥.(샘슨 뭉치 순심이 순돌이 제공)2020.06.29/뉴스1 © 뉴스1

이렇게 만든 2개의 고양이 터널은 뭉치, 순심이, 샘슨, 순돌이의 집사분에게 드렸고, 1개의 고양이 집은 구모와 수능이의 집사분에게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1주일 정도 사용하신 후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다음은 두 분과의 일문일답입니다.

-완성품을 받으셨을 때의 느낌이 기대 이상 혹은 기대 이하 였는지.
▶(4냥이 아버지, 익명) 생각보다 외관상의 심미적 완성도는 높아보였으나 실용성에서의 한계는 명확해 보였다. 캣터널이라는 상품으로 평가한다면 좁은 내부공간과 작은 사이즈라는 한계로 상품성 없어보인다. 하지만 제품 포장재로서 접근한다면 매우 뛰어난 재활용 수단으로 보인다.
▶(2냥이 이모, 김신현) 기대 이상. 생각보다 예뻤다.

-본인의 반려묘에게 바로 제공하기에 이상한 부분은 없었는지.
▶(4냥이 아버지, 익명) 모서리나 마감재질은 큰 불편함이 없었다. 오히려 하드한 느낌으로 튼튼해 보여 사용감이 좋았다.
▶(2냥이 이모, 김신현) 이상한 부분은 없었다. 하지만 고양이가 지붕에 올라가고 싶어했는데 올라갈 수 없었다.

살만한 집인가아(구모, 수능이 제공)2020.06.29/뉴스1 © 뉴스1

-실제로 고양이들이 얼마나 관심을 보이고 활용하나
▶(4냥이 아버지, 익명) 첫날 새로운 물건에 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잠시 들락날락 했었고 이후 사용빈도가 줄어들었다. 아무래도 좁은 내부공간으로 박스 내부에 방석 등의 쿠션을 덧댈 수가 없는 구조라 안에서 편안한 자세로 고양이가 눕기는 힘들 수밖에 없어보인다. 다만, 다묘가정에서 둘 이상 고양이가 술래잡기할 때 가끔 사용할 수 있을 듯.
▶(2냥이 이모, 김신현) 관심을 가졌었다. 받은 당일 마킹(얼굴을 비비고 영역표시를 하는 것)을 시작해 매일 하고 있다. 하지만 마킹만 할 뿐 안에 잘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저 매일 지붕에 올라서보려 하지만 매끄러운 텍스처와 기울기 때문에 항상 실패한다.

-제품박스로 만들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기성 제품이라고 가정했을 때의 구매의사는
▶(4냥이 아버지, 익명) 호기심에 한두 건 구매는 가능하겠으나 상품성으로는 한계성이 명확해 보인다. 2000원 정도에 박스장난감로 판매한다면 일정 수요는 발생할 수도 있다.
▶(2냥이 이모, 김신현) 없음. 바닥이 없으니까 고양이들이 그 안에 잘 들어가있지 않는다.
바닥이 있었다면 고양이가 더 좋아했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아쉬울 뿐. 그냥 일반 박스여도 '수능이'는 굉장히 잘 들어가있는다.

-제품의 내구성. 얼마나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을지.
▶(4냥이 아버지, 익명) 튼튼하고 매우 오랜 기간 사용 가능해 보임. 다만, 고양이들이 잦은 사용을 안 해서 그래 보이는지도.
▶(2냥이 이모, 김신현) 굉장히 오래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들어가있지 않을 뿐.

박스에 들어간 뭉치와 쳐다보는 순심이(순돌이 제공)2020.06.29/뉴스1© 뉴스1

-제품을 만드는 데 2시간/6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을 때 만들 의향이 있으신지.
▶(4냥이 아버지, 익명) 정말 감사히 잘 썼지만 직접 2시간 걸려 만들 의향은 없음. 다만, 어차피 삼성제품을 구매해 분리수거해 버릴 예정이라면 첫 한두 번 구매 시에는 반드시 만들어볼 듯하다.
▶(2냥이 이모, 김신현) 만들 의향은 있다. 12시간 걸린다고 해도 스크래처 정도라면 만들어줄 수도 있다.

-디자인적으로 개선했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 혹 다른 고양이용품 디자인 아이디어가 있다면
▶(4냥이 아버지, 익명) 고양이들은 그냥 네모 박스라도 일단 좋아하고 들어가고 보는 동물이기 때문에, 외관상의 집 형태나 디자인적인 요소보다는 공간확보에 더 고민하는 것이 좋을 듯 보인다. 고양이들은 사방에 구멍 뚫린 박스형태를 좋아한다.
▶(2냥이 이모, 김신현) 바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2층이 조금 더 평평해야한다. 폭이 10㎝만 되는 평평한 지붕이라도 있었다면 아마 캣타워의 느낌으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마치며.

TV 포장재는 제품을 보호해야 하는 특성상 두꺼운 골판지가 주로 사용됩니다. 2017년 환경부 발표를 기준으로 하면 골판지를 포함한 국내 종이 폐기물은 매일 약 5000톤, 연간으로는 약 200만 톤으로 추산됩니다.

어떻게 보면 기업이 크게 신경 쓰지 못할 수 있는 부분까지 고민한다는 점은 호평을 받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따로 페이지를 만들고 박스에 점을 찍는 공정도 추가하고, 도면도 제공했다는 점에서 그냥 체면치레용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만든 저나 실제로 사용하신 분들도 ;기대이상'이라는 평가를 했으니까요.

다만, 실제 사용자(여기서는 고양이)의 '사용성'과 '효용성'에 맞춘 디자인에는 약간만 더 신경을 쓰면 더 나은 제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붕에 오르려다 포기한 구모(수능이 제공)2020.06.29/뉴스1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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