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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참사 딛고 태어난 '쌍둥이' 송아지…희망의 빛으로
호우참사 딛고 태어난 '쌍둥이' 송아지…희망의 빛으로
  • (구례=뉴스1) 황희규 기자
  • 승인 2021.01.01 0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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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 봉성농장 270마리 중 100마리 수해로 잃어
농장 주인 백남례씨 "쌍둥이 송아지, 한 줄기의 빛"
소띠 해인 신축년 새해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31일 전남 구례군 양정마을 봉성농장에서 쌍둥이 송아지가 체온을 나누고 있다. 2020.12.31 /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구례=뉴스1) 황희규 기자 = "참혹한 현실 속에서 힘들게 태어난 쌍둥이 송아지처럼 모든 국민이 희망 잃지 않는 새해를 맞이하길 바랍니다."

전남 구례군 양정마을 봉성농장에서 소를 키우는 백남례씨(61·여)는 2021년 신축년 소띠 해를 맞아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지난해 8월 초 전남지역에는 누적 강수량 600㎜를 기록하는 사상 초유의 집중호우가 내렸다.

당시 백씨는 소 270마리 가까이 키우고 있다가 온 동네가 물에 잠기면서 100마리가 죽거나 물에 떠내려갔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살찐 소들은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물에 다 떠내려갔고, 비교적 마른 소들만이 살아남을 정도였다.

마을에 물난리가 난 뒤 잃어버린 소 가운데 한 마리가 인근 주택 지붕 위에서 발견됐다.

당시 소는 사흘째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지붕 위에 고립돼 체력이 밑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이었으나, 배 속에 있는 새끼를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

물폭탄이 쏟아진 3일째 되던 날 이 소를 구조하기 위해 크레인까지 동원됐다.

소방대원 등은 임신 사실을 알고 안전을 위해 마취를 시킨 뒤 크레인을 이용해 겨우 땅바닥에 내려놓을 수 있었다.

구조된 소는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컨디션이었다. 상처에 탈수까지 심했다. 백씨는 건강을 되찾기는 어렵다는 수의사의 소견을 들었다.

지난해 8월10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의 한 마을에서 소방대원들이 축사 지붕에 올라갔던 소를 크레인을 이용해 구조하고 있다. 2020.8.10 /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아침 일찍 농장으로 나선 백씨는 지붕 위에서 구조된 소가 쌍둥이 새끼를 낳은 것을 발견했다.

소는 송아지를 낳은 뒤 혀로 핥아주고 젖을 주는 등 본능적으로 육아를 잘하는 동물이지만, 어미소는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서 쌍둥이 송아지를 돌보지 못하고 있었다.

백씨는 "당시 어미소는 안타깝게 죽더라도 새끼들이라도 꼭 살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며 "지극 정성으로 새끼들을 돌봤다"고 말했다.

어미소는 컨디션이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고, 젖도 나오지 않자 백씨는 분유가루를 사온 뒤 따뜻하게 우유를 만들어 아침, 점심, 저녁으로 쌍둥이 송아지의 배를 불렸다.

3개월간 자식처럼 키운 송아지들은 다행히 한 달 먼저 태어난 다른 소보다 몸집이 더 커지면서 사랑을 듬뿍 받은 모습을 보였다.

백씨 가족은 어미소에게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여물과 사료를 전혀 먹지 못하는 어미소에게 오전에 수액 10번, 오후에 10번 등 하루에 스무 차례 영양제 주사를 맞춰줬다.

가망이 없다는 수의사의 소견을 무시라도 한 듯 수액 50차례 이상을 맞은 어미소는 기운을 되찾았다.

백씨는 "빚 없이 농장을 잘 운영하다 물난리로 인해 빚더미에 앉게 됐다"며 "허망하고 화가 난 상황에서 구조된 소가 쌍둥이까지 낳아줘 정말 고마운 마음뿐이다"고 전했다.

쌍둥이를 낳은 어미소는 건강해졌고, 최근 또 쌍둥이의 동생을 임신해 배가 불러있었다.

"말도 못 하게 고마워 죽을 때까지 안 팔고 끝까지 키울거에요."

죽을 때까지 함께할 것을 약속한 백씨는 어미소가 죽으면 땅에 묻어줄 계획이다.

백씨 가족은 빚을 내 사료를 구입하고 있는 상황으로 아직까지도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 있다.

집중호우가 지난 뒤 백씨의 농장에는 20여마리의 송아지가 태어나면서 희망의 불씨를 볼 수 있었다.

백씨는 "정말 힘들고 암담한 상황 속에서 쌍둥이 송아지는 우리 가족의 한 줄기의 빛이었다"며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을 겪는 모든 국민도 희망을 잃지 않는 새해를 맞이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소띠 해인 신축년 새해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31일 전남 구례군 양정마을 봉성농장에서 쌍둥이 송아지가 신기한듯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2020.12.31/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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