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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200㎞ 달리는 수의사 "소나 키운다고? 소가 웃을 얘기"
매일 200㎞ 달리는 수의사 "소나 키운다고? 소가 웃을 얘기"
  • (김제=뉴스1) 최서윤 기자
  • 승인 2021.02.15 0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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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피플]28년째 소를 진료하는 이한경 수의사
이한경 수의사가 7일 송아지에게 우유를 먹이고 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김제=뉴스1) 최서윤 기자 = "세상에 귀하지 않은 생명이 어디 있겠어요. 소도 귀하기는 마찬가지죠."

28년째 소를 진료하고 있는 이한경 행복을 찾는 동물병원 원장(대한수의사회 소임상수의사회 총무이사)의 말이다. 신축년 소의 해인 2021년 설 연휴를 앞둔 지난 7일 전북 김제의 한 농가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수의사 면허 소지자 2만여명 중 1000명도 채 되지 않는 소 전문 수의사다. 대동물로 분류되는 소나 말을 진료하는 수의사들은 열악한 환경에 업무도 과중해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한 길을 걷고 있었다.

이 원장의 하루 일과는 아픈 소들을 찾아다니는 출장 진료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하루 방문 농가만 10군데가 넘는다. 차로 김제 지역을 누비면서 매일 200㎞를 달린다. 그는 "물품을 꺼내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번씩 트렁크를 열고 닫는다"며 "그러다보니 차를 구입하고 얼마 되지 않아 고장 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웃었다.

이날은 때마침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송아지의 진료가 있었다. 한 농가에서 송아지가 설사를 심하게 하고 기운이 없다며 왕진을 요청했던 것. 농가에서는 큰 대야에 볏짚을 깔고 송아지를 넣은 상태로 온열기까지 준비해 이 원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이 원장은 송아지의 혈액 검사와 체온 측정을 진행했고 저체온증, 저혈당 등 증상을 보인 것을 확인했다. 이어 송아지에게 우유를 먹이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이런 경우는 안타깝지만 더 이상의 진료가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람 아기나 요즘 강아지,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이라면 인큐베이터라도 사용하겠지만 농장동물은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며 "마지막 가기 전에 우유라도 실컷 먹고 갈 수 있게 도와주는 수밖에…"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사실 건강 상태가 안 좋은 송아지 중에는 마음만 먹으면 살릴 수 있는 경우도 꽤 있다. 하지만 진료비가 적지 않고 병원으로 이동해야 하는 문제도 있어서 포기할 때가 더 많다. 진료를 받으면 소값이 오를 수밖에 없는데 농장동물(산업동물)이라 이를 달가워할 소비자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농가든 수의사든 소를 사랑하는 마음은 같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는 어쩔 수 없게 된다는 것이 이 원장의 설명이다.

이한경 수의사가 7일 소를 진료하고 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그나마 송아지 진료는 상황이 좀 나은 편이다. 500㎏이 넘는 다 자란 소를 진료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소가 다 순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도 성질이 있다. 특히 주사를 맞아야 하는 상황이나 진료를 받게 되는 상황에서는 소의 몸동작이 거칠어지기 일쑤다.

이 원장은 "10여년전에 구제역 접종하다 소한테 가슴을 맞고 1미터 이상 나가떨어진 적이 있다. 그 땐 숨이 멎는 듯 아찔했다"며 "나중에 샤워하려고 거울을 보니까 소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그래도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정말 큰 부상을 입는 수의사들도 있다"며 "지금은 소 진료를 많이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겨서 소가 차기 전에 동선을 파악해서 피해 다닌다"고 말했다.

이 원장이 반드시 바로 잡고 싶은 소에 대한 오해도 있다. 그는 "'나중에 일 없으면 시골 내려가서 소나 키우지 뭐'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며 "소를 놔두면 저절로 크는 줄 아는데 소야말로 세심하게 살펴줘야 할 동물"이라고 강조했다.

이한경 행복을 찾는 동물병원장 © 뉴스1 최서윤 기자

김제에는 수의사 1명이 진료해야 하는 소가 1만5000마리 이상으로 알려졌다. 혼자서 이 많은 소들을 봐줘야 하는 상황이 되다 보니 쉬는 시간도 많지 않다. 1분이 아쉬운 상황에 "소가 난산"이라며 재촉했다가 연락이 없는 농가를 보면 당황스러운 때도 있다. 요즘 흔한 말로 '노쇼'다.

이 원장은 "소가 새끼를 낳으려고 한다고 해서 다른 진료를 못 보고 대기할 때도 있다"며 "그런데 연락이 안 와서 전화해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아까 낳았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고 허탈해 했다.

물론 그런 농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농가에서는 통화만 했는데도 나중에 잘 낳았다며 고맙다고 진료비를 보내겠다고 한 경우도 있다. 송아지가 농가의 큰 재산이다 보니 '난산' 얘기가 나오면 매번 긴장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그의 고충 중 하나다.

이한경 원장이 소 전문 수의사이긴 하지만 하루 1~2시간씩 강아지, 고양이 진료도 본다. 도시와 달리 김제에는 반려동물 수의사가 거의 없다. 동물병원이 없으니 소만 하기에도 벅찬 일정이지만 반려동물도 봐야하는 상황이다. 동물 자체를 다 좋아해서 지난해부터는 유기견 한 마리도 병원에서 키우고 있다. 그래도 힘든 내색없이 밝은 얼굴이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살아있는 동안 건강하고 아프지 않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요즘은 행복을 찾는 동물병원에서 기쁨을 주는 동물병원으로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있어요.(웃음) 동물들이 건강하다는 것만큼 함께 지내는 사람들에게 기쁜 일이 또 있을까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동물들을 위해 계속 진료를 하고 싶네요."

이한경 행복을 찾는 동물병원 원장 © 뉴스1 최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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