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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진도 사람들 미개…송가인 뭐하나" 논란 속 진돗개 본고장 다녀오다
SNS "진도 사람들 미개…송가인 뭐하나" 논란 속 진돗개 본고장 다녀오다
  • (진도=뉴스1) 최서윤 기자
  • 승인 2021.03.10 1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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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 안 하는데 5년전 제주 영상으로 마녀사냥"
"양육방식에 옳고 그름 없어…지역 혐오 멈춰야"
전남 진도군 진도개테마파크에서 살고 있는 강아지 © 뉴스1 최서윤 기자

(진도=뉴스1) 최서윤 기자 = "진도 사람들 미개하네."

최근 전남 진도군(군수 이동진)이 관리하는 인스타그램에 달린 댓글이다.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이 같은 '혐오' 댓글은 이 글 외에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 때 팽목항에서 싸늘히 죽어간 어린 영혼들의 넋을 지금까지도 위로해주며 눈물을 닦아준 진도 사람들이 어쩌다 '미개하다'는 막말을 듣게 됐을까. 이유는 다름 아닌 진돗개(진도에서는 진도개라고 한다) 때문이다.

진돗개의 본고장인 진도에서는 천연기념물 제53호 진도개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진도개테마파크'를 운영하고 있다. 진도읍 동외리 일원 5만6474㎡(17만평)에 조성·설립된 이 테마파크는 2013년에 완공됐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있는 전남 진도군 팽목항 © 뉴스1 최서윤 기자

그런데 최근 이 테마파크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경주, 어질리티, 공연 등이 '동물학대'라는 주장이 제기돼서다. 진도개테마파크를 폐지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청원인은 테마파크에서 공연을 하는 진돗개들이 학대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진돗개들이 정말 동물학대를 당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난 6일 진도개테마파크를 방문했다.

전남 진도군 진도개(진돗개)테마파크 전경. © 뉴스1 최서윤 기자

◇ "저주하겠다" 섬뜩한 막말…개 혐오 말라더니 사람 혐오

"요 며칠 너무 힘들고 사람이 이렇게 무서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동안 개들 보면서 즐겁게 일하고 있었는데…. 민원 전화가 정말 많이 와요. 다짜고짜 '저주하겠다, 거기서 일하는 것 자체가 동물학대'라느니 인신공격도 당했고요. 직접 와서 보시라고 설명해주겠다고 했더니 '서울에서 진도가 얼마나 먼데 차비 줄 거냐'고 하더라고요."

테마파크에서 만난 훈련사 A씨에 따르면 공연과 관련해 몇 년 전부터 민원 전화가 들어오긴 했지만 올해는 유독 더 심하다. 자신은 그나마 좀 참는 편이지만 이런 민원 전화를 처음 받는 공무원 중에는 당황해서 운 사람도 있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진짜 멀어서였을까. 시끌벅적한 온라인과 달리 현장은 매우 조용했다. 동물학대하지 말라는 손팻말을 들고 서 있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진도군 인스타그램에는 웬만한 멘탈로 참기 어려운 댓글이 상당히 많았다. 미개하다는 표현은 말할 것도 없고 "머리에 똥만 쳐든 공무원들" "무릎 꿇고 사과하라" "자필 사과문 올려라" 등의 언어폭력과 갑질 발언까지 눈에 띄었다.

가수 송가인까지 소환해 "제발 말려라. 선물 받은 진돗개 마당에 묶어두지 말고"라는 내용도 있었다. 특히 "진돗개에 대한 편견을 버리라"면서 정작 사람에게는 "개를 학대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며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댓글도 보였다.

사진 진도군 인스타그램 댓글 갈무리 © 뉴스1

이에 대해 테마파크 관계자는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진돗개 훈련과정에서 학대 영상은 이곳 영상이 아니다"라며 "5년 전 제주 영상을 왜 진도에 갖다 붙이나. 그것도 그 훈련사 1명이 문제였던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곳에서 공연하는 개들은 주인이 직접 교육한 개들인데 무슨 학대를 한다고 그러는 건지"라며 "말이 공연이지 지역주민들이 한국애견연맹, 한국애견협회 전문가들에게 배워서 자기 개들과 교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시간이다. 도시에 사는 개들 장기자랑하고 훈련소에 보내는 것과 다른 게 뭔가"라고 꼬집었다.

이어 "주변이 시끄러워서 스트레스 받는다고 주장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반려동물 축제, 박람회는 물론 잘 모르는 개들과 한데 섞이는 운동장, 호텔, 카페도 전부 가면 안 된다"며 "전형적인 내로남불이자 마녀사냥"이라고 꼬집었다.

전남 진도군 진도개테마파크 어질리티 공연장 전경 © 뉴스1 최서윤 기자


사진 영국 크러프츠 도그쇼 유튜브 화면 갈무리 © 뉴스1

◇ "국제사회 망신? 외국에서 먼저 시작한 독스포츠 공연"

진돗개(법률 용어로 잡종 포함)를 키우는 사람들을 비롯해 일부 애견(愛犬, 개를 사랑함)인들은 진도개테마파크의 공연이 학대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로 공연을 본 결과 학대가 아닌 동네 어르신들의 반려견 자랑대회였다. MBC에브리원의 '달려라 댕댕이' 아이돌판을 보는듯 했다.

가장 먼저 진돗개들의 점프력을 확인할 수 있는 어질리티(장애물 넘기)가 진행됐다. 어질리티는 1922년 미국에서 시작한 독스포츠다. 5년 전 일본 국제대회 때 진돗개들이 출전해 1000마리 중 18등과 38등을 차지하며 "진돗개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한다.

테마파크의 어질리티는 다소 어설펐다. 개체마다 성격도 달라서 장애물을 잘 뛰어넘는 개들도 있었지만 시작도 전에 다리를 들고 영역표시를 하는 바람에 실격 처리된 귀여운 개들도 있었다. 영역표시 후 시원하다는 듯 폴짝 뛰며 꼬리 치는 개를 잘했다며 안아준 사람도 있었다. 이 모습을 본 관중석에서는 박수가 터지기도 했다.

붓을 입을 물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어떤 시각을 갖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이 가능했다. 진돗개들이 앉아 있는 모습은 장소만 다를 뿐 도시의 가정견들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붓을 입에 물고 흔드는 모습은 인스타그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뼈 간식이나 장난감 인형을 물고 흔드는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전남 진도군 진도개테마파크에서 진돗개들이 붓을 입에 물고 흔들고 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입마개를 씌우고 경주하는 모습 때문이다. 일부 애견인들, 특히 진돗개 견주들은 개들에게 입마개를 씌우는 것을 싫어한다. 진돗개는 동물보호법상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한 맹견이 아니라서 입마개할 의무가 없고 사납다는 인식을 심어준다는 이유에서다. 입마개를 쓰고 달리면 개들이 호흡 곤란이 온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들의 경주는 우리나라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 등 해외에서도 달리는 것에 특화된 그레이하운드 종의 개들이 입마개를 쓴 채 달린다. 경주를 실제 보면 개들이 워낙 빨라서 입마개보다는 '진돗개가 참 빠르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다만 최근 추세는 경주 개들이 줄어들고 있기는 하다.

이와 관련해 테마파크 관계자는 "개들이 입마개를 쓰고 뛰는 시간은 25초에 불과하다. 입마개가 막혀 있는 것도 아니고 물도 다 마실 수 있다. 개들이 서로 물까봐 안전장치로만 씌운 것"이라며 "또한 건강에 이상이 없는 개들만 달린다. 사람도 올림픽 마라톤을 하지 않나. 질주본능이 있는 개들은 달리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달리기 싫으면 안 달리면 되고 돈 내고 보는 경기도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진돗개가 슬개골(무릎뼈)이 약한 견종이라서 이런 공연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에 슬개골 수술만 전문으로 해온 한 수의사는 "개들마다 차이는 있지만 슬개골은 인위적으로 교배한 소형견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유전성 질환이다. 진돗개는 특성상 슬개골이 약한 종은 아니다"라며 "잠시 앞발을 들고 서 있거나 뛰는 정도로 다리나 허리에 무리가 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공연장에는 집안에서 강아지가 뛰다 슬개골에 무리가 갈 수 있는 미끄러운 장판이나 대리석이 아닌 푹신한 재질의 천이 깔려 있었다.

이날 공연은 길지 않았다. 사회자는 "요즘 동물학대라는 말도 나오고 해서 진돗개와 춤추기 등 일부 공연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연에 동참한 관람객에는 진도개가 아니라 미역 등 지역 특산물을 선물로 줬다.

진도개공연단은 진돗개도 교육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시작된 모임이다. 개와 교감하며 위안을 얻고 지역을 알리기 위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들었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나이가 들고 양육방식도 달라지면서 공연 프로그램도 점점 바뀌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어느 날 갑자기 '동물학대범' 비난을 받아서였을까. 공연 동안 일부 위축된 분위기도 엿보였다.

진도개테마파크에서 경주를 하고 있는 진도개들. 경견이 아니기 때문에 뛰기 싫으면 안 뛰어도 된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해외에서 경주를 하는 그레이 하운드. 사진 AFP © 뉴스1

◇ "생명 경시도, 지나친 의인화도 안 돼…과도기 속 개선 필요"

진도개테마파크는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지역명소로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관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입장료 등을 받는 곳이 아니다. 지역민들과 관광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공원과 같은 곳이다. 또 개인 사정으로 개를 키울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홍보관 해설사를 하고 있는 한 주민은 "진도에 노령인구가 늘어나고 과거와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서 집집마다 진돗개를 키우는 모습을 보기 힘들어졌다"며 "농작물이나 다른 동물에 피해를 주면 안 되니까 개를 마당에 묶어놓고 키우는 사람도 있지만 안 그런 사람들도 많다. 진도개가 아닌 다른 종의 개들도 중성화 수술 후 키우는 것도 가능하다"고 달라진 진도 풍경을 설명했다.

어린 딸과 함께 테마파크를 찾은 한 주민은 집에서 개를 키울 수가 없어서 공원에 종종 온다고 했다. 그는 "아이한테도 동물을 키울 때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생명의 소중함을 알려주기 위해 방문한다"며 "이곳에서 동물학대를 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테마파크 내에는 애견인들의 소원인 운동장, 놀이터와 같은 방사장이 여러 군데 있었다. 새끼 강아지와 성견이 분리돼 있었고 꽤 넓었다. 성견들은 견사에 들어가 있기도 했는데 직원들이 산책도 시켜준다고 했다. 이뿐 아니라 테마파크 바로 옆에 있는 진도개메디컬센터(동물병원)도 있어서 수시로 건강검진도 받는다.

강아지의 사회화를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과 교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도시에서는 강아지 사회화 교육을 많이 강조한다. 이곳의 진돗개들도 마찬가지. 호기심이 왕성한 강아지들은 사람들이 내미는 손에 얼굴을 비볐다. 강아지만 호기심을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한 어린 아이는 흙바닥에서 자는 새끼 강아지들이 신기한 듯 한참을 쳐다봤다. 그러다 추워보였는지 고사리 손으로 낙엽을 주워서 덮어주는 모습으로 보는 사람들을 미소 짓게 했다.

진돗개가 썰매를 끈다고 오해를 샀던 '진돌이 썰매장'에서는 아이들이 신나게 고무튜브로 만든 썰매를 타고 있었다. 테마파크 관계자는 "진돗개 이름 중에 가장 많은 이름이 진돌이, 진순이라 진돌이 썰매장이라고 한 것"이라며 "와보지도 않고 개가 썰매를 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해서 이름을 바꿔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6일 전남 진도군 진도개테마파크를 방문한 어린 아이가 강아지에게 낙엽 이불을 덮어주고 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또 다른 관계자는 동물학대 얘기가 나오는데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시골에서 나이 드신 분들이 개들을 사랑하는 방식은 도시와 다르다. 꼭 소와 닭의 생육이 들어간 비싼 사료 먹이고 돈 주고 훈련소 보내서 교육시켜야만 잘 키우는 건 아니다"라며 "시대가 바뀌면서 달라져야 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개한테 뭐가 더 좋냐고 확인한 것도 아니지 않나. 사람의 기준에서 부정적으로만 보면서 이것도 학대, 저것도 학대라고 하면 세상에 학대 아닌 것이 없다. 집안에서 키우는 것도 학대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동물학대 논란이 이어지자 홍선호 진돗개 공연단장은 진도군 게시판에 글을 남겨 더 이상의 소모적인 논쟁을 줄였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본 공연단에서는 결단코 공연견들을 학대하거나 강압에 의한 교육 및 공연을 하지 않는다. 싸우지 말고 서로 오해를 풀고 상대방 입장에서도 한번쯤 생각해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물론 테마파크도 시대의 흐름에 따른 시설 개선 등 변화는 필요해 보였다. 홍보관은 주로 석기시대부터 자연발생한 토종개의 우수성을 알리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짧은 목줄에 묶여사는 환경이나 유기(유실)동물과 관련한 문제점을 알리는 내용은 없어서 아쉬움을 남겼다.

업계 관계자는 "강아지, 고양이를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났지만 표준화된 양육방식이 없다"며 "자신의 방식이 옳다고 생각해 강요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의견충돌이 생기기도 한다. 과도기라서 벌어지는 현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양육방식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동물의 생명을 경시하는 것도, 동물의 특성을 무시한 지나친 의인화도 지양해야 한다"며 "요즘 반려동물테마파크도 증가 추세인데 진도개테마파크를 폐지하기보다 생명을 대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육장 신설, 한국진도개 보호·육성법 개정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전남 진도군 진도개테마파크 내 진돌이썰매장. 아이들을 위한 고무튜브가 준비돼 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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