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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은 애견미용사 될 수 없다?… "차별 행위" 반발
'장애인'은 애견미용사 될 수 없다?… "차별 행위" 반발
  •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승인 2021.03.20 0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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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기는 합격했는데 실기에서 거부…응시료 환불도 못 받아"
애견협회 "사고 발생할 수 있어…수험자·반려견 보호 위한 것"
애견미용(자료사진) 2014.12.7/뉴스1 © News1 송은석 기자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학원에서 된다고 해서 그것만 믿고 지금까지 배웠던 건데…"

지난달 7일 한국애견협회가 주관하는 '반려견 스타일리스트'(애견미용사) 자격증 실기시험을 치르기 위해 고사장을 찾았던 박민하씨(여·가명)는 '장애인'은 시험을 볼 수 없다는 감독관의 이야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필기시험은 아무런 제재 없이 치러 합격을 했다고 항변했지만 감독관은 단호했고 민하씨는 결국 시험을 치르지 못하고 고사장을 떠나야 했다.

평소에 미용과 관련한 일에 관심이 많았던 민하씨는 청각장애가 있었지만 집안 생계에 도움이 되고 싶어 애견미용사에 도전했다. 지난해 9월부터 학원을 등록해 시험을 준비했지만 학원에서는 누구도 장애인은 시험을 볼 수 없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1차 필기시험 감독관에게도 장애인증을 보여주며 장애가 있다고 말을 했지만 아무런 제재도 없었다.

민하씨의 가족은 시험 공고에도 장애인은 시험을 볼 수 없다는 제한이 없었고 필기시험에서도 아무런 제재 없이 시험을 보게 한 뒤 실기시험을 못 보게 한다는 것은 차별이라고 항변했지만 협회에서 돌아온 답은 '홈페이지에 장애인은 시험을 볼 수 없다고 고지하고 있다. 규정상 어쩔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

시험을 볼 수 없었으니 응시료를 전액 돌려달라는 요구도 협회는 거부했다. 협회는 증서 제작 비용 등 원래 불합격자들에게 환급해 주는 비용만 환불해줬다.

"아내가 1월부터 청각이 더 안 좋아지면서 우울해 했는데 시험이 그렇게 된 이후로 더 심각해져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뉴스1과의 통화에서 민하씨의 남편은 장애를 이유로 몇개월간 공부한 아내의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는 것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더욱이 학원의 경우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고 학원비를 환불해 줬음에도 시험을 주관한 협회가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현재 10여개의 단체 등에서 애견미용사 자격증을 발급하고 있다. 이중 애견협회가 주관하는 반려견스타일리스트 자격증의 경우 국가공인을 받은 유일한 애견미용사 자격증이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민하씨도 이점을 고려해 애견협회의 자격증을 준비했다.

애견협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제2조에서 규정한 장애인은 본 자격에 응시할 수 없음'이라고 공지하고 있다. 이 공지에 따르면 법에서 규정하는 모든 장애인은 자격증 응시 자격을 가질 수 없다. 애견협회 측은 장애인을 시험 응시대상에서 제외한 이유에 대해 "애견미용을 하다 위험한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라며 "수험자와 반려견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어 애견협회 관계자는 자격증을 발급받은 애견미용사가 고객과 마찰을 빚거나 사고를 발생시킬 경우 그 비난의 화살이 협회로 쏟아지게 된다며 실제로 민원이나 소송을 겪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장애인에게 자격증을 발급해 사고가 생기면 협회도 책임을 지게 되는 만큼 시험 자격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애견협회의 주장에 대해 대해 장애인 관련 단체들은 애견미용사로서의 수행능력은 시험을 통해 판단하면 되는 것인데 시험 응시 자체를 금지한다는 것은 정당하지 않은 조치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하는 행위라는 입장이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시험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이 시험이 장애인이 하지 못할만한 정말 곤란한 상황이 있어야 할 텐데 모든 장애인에게 일괄적으로 곤란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라며 애견미용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아예 시험 자격을 제한하는 것은 장애인 차별이라고 꼬집었다.

김철환 장애벽허물기 활동가도 "필기시험의 경우 장애인을 제한하지 않고 있으며 실기시험도 2021년도 1차까지 장애인에 대한 제한 규정이 없었다"라며 "청각장애인 등 장애인들이 일반 미용 자격증을 취득하고 있는데 반려견에만 장애인 응시를 제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애견미용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지난 2017년 사단법인 '휴먼인러브'는 모금활동을 통해 지적장애가 있는 청소년 A양이 애견미용사 자격증 공부와 시험응시를 할 수 있도록 지원했고 A양은 '한국애견연맹'에서 3급 애견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과거 장애인 지원 기관에서도 애견미용사를 장애인들이 가질 수 있는 '유망한 직업'이라고 소개하며 지원했다. 2013년 서울시장애인일자리통합지원센터는 외부단체와 업무협약을 맺고 '장애인 애견미용전문가 양성과정'을 만들기도 했다.

한편, 민하씨의 가족은 '장애를 이유로 시험 응시 자체를 거부한 애견협회의 조치는 차별행위'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진정서에서 민하씨의 가족은 "애견 미용에 대한 심각한 결격사유도 아닌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응시를 제한하는 국가 공인 시험 규정에 대해 폐지 검토를 부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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