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6:38 (금)
쓰레기인 줄 알았더니 길고양이 집…"없던 혐오 생길 판" 주민들 고통
쓰레기인 줄 알았더니 길고양이 집…"없던 혐오 생길 판" 주민들 고통
  •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승인 2021.03.25 10: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파트내 40개 넘게 설치…고양이도 위험
"캣맘이 남겨진 먹이, 배설물도 청소해야"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 설치돼 있는 길고양이집. 얼핏 보면 쓰레기로 오해할 만큼 지저분하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 캣맘(길고양이 밥 주는 사람)이 설치한 고양이 겨울집과 급식소로 인해 주민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집 주변이 지저분한데다가 심지어 악취까지 나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캣맘과 길고양이에 대한 없던 혐오가 생길 판"이라며 고통을 호소했다.

25일 A아파트 관리사무소 등에 따르면 2~3년 전부터 누군가 단지 내에 길고양이의 집과 급식소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1~2개였다. 하지만 겨울이 지나면서 4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문제는 설치 장소와 관리 상태. 설치 공간이 한정돼 있다 보니 사람들이 다니는 길목이나 어린이 놀이터 인근에 고양이집을 설치하면서 피해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서울 한 아파트 단지 내에 설치된 길고양이집. 인근에 어린이 모래 놀이터가 있어서 위생 문제가 제기됐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고양이는 아기 울음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낸다. 중성화수술을 하지 않은 고양이들은 특히 발정기 또는 영역 다툼을 할 때 소리가 더욱 커진다. 이 때문에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잠을 못자거나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뿐 아니라 동물 털 알레르기가 있거나 갑자기 튀어나오는 고양이로 인해 놀라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모래에 대소변을 보는 습성이 있는 고양이들은 놀이터에서 배설을 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어린 아이들이 예방접종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길고양이들로 인해 비위생적인 환경에 노출될까 우려하는 부모들도 있다.

서울 한 아파트 단지 내 설치돼 있는 길고양이집. 관리사무소에서 길고양이집을 설치하지 말라는 안내문을 부착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곳곳에 설치된 고양이집은 지저분한 상태였다. 오염된 스티로폼에는 검은 색 봉지와 노란 색 테이프가 칭칭 감겨 있었다. 구석에는 먹다 남은 사료통이 나뒹굴었다. 빨지 않은 이불은 고양이들의 건강에도 좋지 않아 보였다. 벽에는 '고양이집 발견시 폐기합니다'라는 아파트 관리사무소 안내문도 붙어 있었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주민 민원이 많이 들어오니까 설치자가 일부만 치운 상태"라면서 "집을 아무데나 지저분하게 설치해놓아서 치워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고양이를 혐오하거나 차별하는 몰인정한 사람으로 몰아붙이니 답답한 노릇"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 한 아파트 단지 내에 설치된 길고양이 집과 급식소. 지저분하고 사람들이 다니는 통로 옆에 설치해서 민원이 제기됐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서울 한 아파트 단지 내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 아파트 복도 아래 길고양이 집이 설치돼 있다. 옆에는 자동차들이 다니기 때문에 사람도 동물도 모두 위험한 장소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A아파트 인근 경의선 숲길 산책로에서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버려진 길고양이집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캣맘 B씨는 "좋은 마음에서 고양이 밥을 챙겨주고 먹고 난 자리도 치우고 있다"며 "그런데 일부 캣맘들이 밥만 주고 치우는 건 나 몰라라 하니 잘 치우는 캣맘들까지 피해를 본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카페에 올라온 글만 보고 '착한 일 했다'고 칭찬한다"고 답답해했다.

서울 경의선 숲길 한쪽에 길고양이 집과 이동장 등이 쌓여 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아무 곳에나 설치한 길고양이 집과 급식소는 불법 적치물이다. 고양이들이 사료를 먹기 위해 급식소 부근을 돌아다니거나 영역 다툼을 하다 자동차나 오토바이에 치어 죽는 '로드킬' 사고도 빈번하다.

그렇다고 집을 함부로 치우기도 곤란하다. 집을 설치한 사람이 '사유 재산'이라며 못 치우게 하고 서울시 등 지자체에 계속 민원을 넣는 경우도 있어서다.

서울 경의선 숲길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들.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경고문이 부착돼 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법무법인 청음 반려동물그룹 문강석 변호사는 "길고양이집을 어디에 설치했느냐에 따라 도로법, 자연공원법, 하천법 등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며 "불법으로 설치했을 경우 지자체에서 계고장을 부착한 뒤 철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반대로 타인의 주거지에 불법으로 설치했다고 해서 맘대로 치우면 재물손괴죄 적용을 받을 수도 있다"며 "법과 원칙도 중요하지만 생명과 관련된 일이니만큼 이웃 간의 이해와 배려로 갈등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경의선 숲길에 설치된 길고양이급식소. 서울시가 급식소를 제공하면 관리는 지정된 캣맘이 한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길고양이와 공존을 위한 서울시 포스터 © 뉴스1

[해피펫] 사람과 동물의 행복한 동행 '뉴스1 해피펫'에서 동물 건강, 교육 등 더 많은 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제보도 기다립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