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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자의 동행]①고양이 사랑했지만…방치가 빚은 개체수 참사
[최기자의 동행]①고양이 사랑했지만…방치가 빚은 개체수 참사
  •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정수영 기자,최서영 기자
  • 승인 2022.01.1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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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오피스텔에 방치돼 있던 고양이 30마리 이동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정수영 기자,최서영 기자 = "나쁜 사람은 아니고… 고양이에 대한 무지함이 빚은 참사네."

최근 서울의 한 오피스텔에서 발견된 30여마리 고양이들을 본 사람들의 말이다.

A씨는 고양이를 사랑했다. 하지만 키우는 방법을 잘 몰랐던 모양이다. 2~3마리의 고양이들은 금방 수십마리로 불어났다.

고양이들은 방치되기 시작했다. A씨는 1년 가까이 월세를 밀렸다. 결국 퇴거당했다.

주인 잃은 고양이들은 '나비야사랑해'에서 새 가족을 찾아주기로 했다. 고양이들이 엉망이 된 오피스텔을 벗어나 다른 임시보호처로 이동하던 날 현장을 방문했다.

7일 서울의 한 오피스텔 창가에 고양이들이 앉아 있다. 좁은 공간에서 수십마리를 키우다보니 벽지가 너덜너덜해져 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 오피스텔 곳곳에 스며든 고양이 배설물 냄새

지난 7일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로 식당 문을 모두 닫은 오후 9시. 유주연 나비야 사랑해 대표, 이영원 신교무역 대표, 심용희 한국마즈 수의사, 김동완 대한수의사회 수의사와 함께 고양이들이 방치돼 있던 오피스텔을 찾았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 복도를 지나는 순간 고양이들의 배설물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해당 호수의 문을 여니 마스크 사이로 냄새가 올라왔다. 숨이 막혔다.

고양이들의 소변 자국으로 인해 벽지 곳곳은 누렇게 변해 있었다. 순간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이 건물에 사는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사람보다 후각이 예민한 고양이들도 스트레스 받았겠지.'

애묘인 중에는 "고양이는 혀로 그루밍(털 고르기)을 하기 때문에 냄새가 별로 안 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고양이에게 질병이 있거나 배설물 청소를 제때 하지 않으면 악취가 풍긴다.

수컷 고양이들은 암컷을 유인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영역 표시 등 다양한 이유로 일명 '스프레이'를 뿌린다. 또 본능적으로 발톱을 가는 '스크래칭'도 한다.

고양이들이 벽지에 구멍을 내고 소변까지 보니 냄새가 심할 수밖에 없었다. 모래 화장실에 남아 있는 대변 냄새까지 더해지니 머리가 아파왔다.

냄새가 코를 찌르는 와중에 서랍과 창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고양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심장이 아플 정도로 귀여웠다. 페르시안과 터키시앙고라 혼종들로 추정됐다.

고양이들은 낯선 사람들의 방문을 경계하는 눈치였다. 이동장까지 들고 왔으니 경계하는 것이 당연했다.

고양이들을 많이 잡아본(?) 유주연 대표와 19년차 수의사 심용희 팀장이 앞장섰다. 다행히 고양이들은 대체로 순했다. 이들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고양이들을 이동장 안에 넣었다.

임신묘도 있었다. 새끼를 품고 있다 보니 예민해져 공격할 태세로 하악질도 했다. 이리저리 숨바꼭질도 했다.

"너희를 잡으려는 게 아니야. 더 좋은 곳으로 가려는 거야."

이렇게 말하는 유 대표의 진심이 통한 걸까. 결국 30마리 모두 이동장 안으로 들어갔다.

고양이들은 자동차 여러 대에 나눠 태웠다. 드디어 오피스텔은 빈공간이 됐다.

7일 서울의 한 오피스텔에서 이영원 신교무역 대표(왼쪽)과 유주연 나비야사랑해 대표가 고양이들을 옮기고 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 함부로 할 수 없는 생명…집주인은 수리비 떠안아

고양이들이 떠난 자리는 더욱 처참했다. 너덜너덜해진 벽지는 원래 색을 알 수 없었다.

한 캣맘 카페에서는 "고양이가 무슨 죄냐"며 "월세가 밀린지 2개월만 지나면 계약해지할 수 있다. 벽지와 장판만 교체하면 되는데 집주인이 잘못했다"는 원망의 목소리도 나왔다.

집주인에게 직접 물어봤다. 그리고 인근 인테리어 업체에 수리비용을 확인한 결과 수리비는 적지 않았다.

윤희상 로펌고우 변호사에 따르면 임대료가 2개월 이상 체납되면 임대차계약 해지 통보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임대인이 임차인을 함부로 내보낼 수는 없다. 내용증명을 보내고 명도소송을 해야 한다.

명도소송 후 임차인이 몸만 나갈 수도 있다. 남겨둔 물건은 공탁소에 보관하면 된다. 그런데 물건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고양이라면? 분양(여럿에게 나눠 줌)하지도 못하고 임대인은 정말 난감한 상황이 된다.

이 오피스텔 집주인도 결국 세입자를 설득해 '고양이 포기 각서'를 받았다. 월세를 1년 가까이 못 받았던 터라 수리비도 자비로 해결한다고 했다. 예상 수리비는 1300여만원.

단순히 벽지와 장판만 교체하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냄새가 속까지 스며들었기 때문에 대대적인 공사를 해야 했다. 엉망이 된 화장실도 수리해야 하고 창문, 가구, TV, 세탁기 등도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고양이만 생각한 혹자들은 이런 것들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이런 모습 때문에 애묘인들이 비판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외면한 듯했다.

고양이 30여 마리가 보호단체 측으로 인도된 뒤 짐을 비운 서울의 한 오피스텔. 벽지와 장판, 창틀 등 성한 곳이 없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 "예뻐서 키운 고양이, 순식간에 숫자 늘어나"

사람은 보지 않고 '동물만' 생각하는 동물단체나 활동가들도 있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해 사람을 '악마'로 몰아가며 후원금을 모금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 대표는 달랐다. 동물 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예의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집주인과 통화에서 "소중한 생명을 살려주셨다"며 연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세입자에 대해서도 "번식시켜 판매하려는 목적이었다면 철장 등이 있어야 한다. 고양이들을 팔아서 월세를 낼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보니 고양이를 예뻐해서 키우다가 새끼들이 계속 태어나니 감당하기 어려워 방치하게 된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이어 "고양이들을 포기하고 나갔으니 세입자에 대해 계속 나쁘게 말하기보다 이제는 고양이 입양 보내는 일에 집중할 것"이라며 "단순히 동물의 귀여운 모습만 보고 키웠다가는 개체수가 늘어나서 자칫 애니멀 호더(동물을 병적으로 수집하는 사람)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뒷정리를 마친 유 대표와 봉사자들은 다른 오피스텔로 이동했다. 나비야사랑해 봉사자 중 한명이 고맙게도 임시 거처를 제공했다고 한다.

오피스텔 도착 후 고양이들을 이동장에서 꺼냈다. 처음에 어리둥절해하던 고양이들은 시간이 좀 지나자 영역을 만들고 자리를 잡았다. 일부 애묘인들은 '영역동물'의 의미를 잘못 이해해 고양이들이 원래 살던 장소를 떠나면 큰일이 나는 줄 안다.

하지만 영역동물이란 자신만의 영역 안에서 생활한다는 의미다. 그 영역을 벗어나면 문제가 생긴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 수의사들의 설명이다.

고양이들은 이곳에서 임시로 보호받다 새 입양처를 찾으면 또 다른 곳으로 이동 예정이다.

☞ 이어 계속

7일 유주연 나비야사랑해 대표가 임시거처로 옮긴 고양이들과 눈인사를 하고 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해피펫] 사람과 동물의 행복한 동행 '뉴스1 해피펫'에서는 짧은 목줄에 묶여 관리를 잘 받지 못하거나 방치돼 주인 없이 돌아다니는 일명 '마당개'들의 인도적 개체수 조절을 위한 '시골개, 떠돌이개 중성화 캠페인'을 진행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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