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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자의 동행]②귀엽고 불쌍해서 키운다?…"구조도 책임감 필요"
[최기자의 동행]②귀엽고 불쌍해서 키운다?…"구조도 책임감 필요"
  •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정수영 기자,최서영 기자
  • 승인 2022.01.1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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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텔에 방치된 고양이, 검진 받고 입양 준비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정수영 기자,최서영 기자 = ☞ 이어 계속

고양이들이 새 오피스텔에 자리를 잡고 이틀 뒤인 9일. 현장을 다시 방문했다.

이날은 수의사들이 와 있었다. 중성화 수술 및 각종 예방접종과 건강검진을 하기 위해서다.

고양이들은 특성상 동물병원 데려가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아파도 숨긴다. 이 때문에 낯선 공간이 아닌 살고 있는 공간에서 검진을 받는 것이 고양이들에게 더 나을 수도 있다.

9일 오피스텔에 방치돼 있던 고양이들이 임시 보금자리 수납장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 중성화 수술, 개체수 조절 및 질환 예방에 도움

수의사들은 의료장갑을 끼고 본격 진료에 들어갔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고양이들은 도망다녔다. 이전 오피스텔에서처럼 빈 공간에 모여 있기도 했다.

로얄캐닌 사료통 주변에 앉은 고양이들은 '모델냥이'를 자처한 모습이었다. 쓰레받기 안에 머리만 넣고 숨었다고 생각한 고양이의 꼬리를 본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유주연 나비야사랑해 대표와 봉사자들이 합심해 고양이들을 붙잡았다. 잡는 과정에서 놀란 고양이가 한 봉사자를 물기도 했다.

봉사자는 고양이에게 물리고도 화를 내지 않았다. 그는 "무는 건 동물의 의사 표현 중 하나"라며 "말이 통하면 검진하는 이유를 설명해주고 싶다"면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봉사자들은 고양이의 몸무게와 특징을 적었다. 입양을 보내기 위해서다. 수의사들은 고양이 몸무게에 맞춰 마취주사를 놨다.

사람 병원에서 사용하는 고가의 최신 전기수술기도 동원됐다. 이 기기는 수술 부위를 절제함과 동시에 지혈을 하니 통증과 출혈을 최소화하고 수술시간을 단축해준다. 고양이들이 수술 부작용을 겪지 않도록 안전하게 수술한 것이다.

9일 고양이 한 마리가 건강검진을 피해 쓰레받기에 몸을 숨기고 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서울시수의사회 등에 따르면 고양이를 중성화하는 이유는 발정기 울음소리와 스트레스를 줄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립선 질환과 유선종양, 자궁축농증 등 생식기 질환도 예방된다. 다만 일부 살이 찌는 등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특히 암컷의 경우 발정기 때마다 교미를 하지 못하거나 새끼를 낳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쌓여 오히려 질병에 노출될 수 있다. 발정 소리를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이웃들도 있으니 중성화를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 이날 한 고양이는 자궁축농증에 걸려 있었다. 고양이들은 아파도 잘 표현하지 않는 편이다. 중성화를 한 덕분에 일찍 발견해서 고양이의 통증 원인을 제거할 수 있었다.

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진행한 수의사는 "조명이 많은 도시, 특히 집에서 사는 고양이의 경우 새끼를 낳을 확률이 더 높아질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 수의사는 "암컷 고양이는 계절번식 동물이라 보통 1~8월이 번식철"이라며 "하지만 도시와 가정에서는 야간조명의 조도가 호르몬 생성에 영향을 미쳐 연중 번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암컷 고양이는 교미배란 동물이다. 교미 후 24~30시간이 지나면 배란이 된다. 수컷과 교미를 하면 새끼를 낳는다는 얘기다. 좁은 공간에서 교미하고 새끼를 낳는 일이 반복되면 개체 수는 급증할 수밖에 없다.

이 오피스텔의 고양이들도 2년이 안 된 시기에 개체 수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됐다. 30마리 중에 2마리는 임신 상태였다. 한번에 5~6마리씩 낳으니 조만간 새끼를 출산하면 또 여러 마리를 수술해야 하는 상황이다.

9일 수의사들이 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 "근친교배, 건강 우려돼…동물 습성 공부해야"

수의사들은 고양이들이 마취에서 깨기 전 채혈을 했다. 심장 건강 검사도 이어갔다. 고양이들이 근친교배를 한 탓에 건강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검사 결과 다행히 대다수 고양이들은 큰 문제를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근친교배는 유전병 유발 확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근친교배가 문제가 아니라 선대에 질환을 갖고 있어서 유전병이 발병한 것이라는 반론도 있긴 하다.

일각에서는 품종묘라서 유전병에 취약하다는 주장도 한다. 하지만 품종은 사람이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기존에 잡종 취급 받다가 새로운 품종으로 지정받을 수도 있으니 품종, 비품종을 가르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말도 있다.

이에 따라 길고양이도 근친교배를 하면 유전병 발병 확률이 높아지는 건 마찬가지라는 주장도 나온다. 애니멀 호더 중에는 길고양이가 불쌍하다는 이유로 한 마리, 두 마리씩 데려왔다가 늘어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오히려 종의 특성을 모르니 어떤 병이 생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질환에 대해 알아보려면 동물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개체 수가 많다 보니 병원도 제대로 못가고 방치하다 병을 키우게 된다는 얘기도 설득력이 있다.

관리가 안 되는 번식장 뿐 아니라 사설 보호소에서도 강아지, 고양이들이 무분별하게 태어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종의 특성과 동물의 습성을 제대로 공부한 전문가가 윤리적 교배를 진행하는 것이 유전병의 원인을 제거하고 개체 수 조절에 도움이 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도 전문 '브리더(breeder)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사람들과 동물의 습성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사이 고양이들이 마취에서 깨어났다. 수액도 맞고 예방접종도 한 고양이들은 금방 기력을 회복했다. 후코아이 영양보조제(영양제)까지 먹으니 고양이들은 이날 호강한 셈이다.

9일 고양이들이 임시 보금자리에서 건강 관리를 받고 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반려동물을 키우는데 있어 책임감이 강조되는 시대다. 하지만 구조 역시 책임감이 필요하다. 단순히 귀엽다는 이유로, 불쌍하다는 이유로 동물들을 데려왔다가는 자칫 애니멀 호더가 될 수 있다. 사랑이나 동정심이 집착으로 이어지면 사람과 동물을 모두 불행에 빠뜨릴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 2018년 반려동물에게 사육 공간 제공, 위생·건강관리 의무 등을 다하지 않으면 이를 학대로 보고 처벌할 수 있도록 동물보호법이 개정됐다. 하지만 '애니멀 호더의 경계가 모호하고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만큼, 농림축산식품부와 국회의 법 개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나비야사랑해'는 구조한 고양이들의 관리를 잘하는 단체 중 하나다. 유주연 대표는 "동물을 키울 때도 구조할 때도 책임감이 필요하다"며 "고양이들 입양 준비를 어느 정도 마쳤으니 새 가족을 찾아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양이 입양 문의는 '나비야 사랑해'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을 확인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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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서울의 한 오피스텔에 방치돼 있던 고양이가 건강검진을 받고 영양제 옆에 앉아 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해피펫] 사람과 동물의 행복한 동행 '뉴스1 해피펫'에서는 짧은 목줄에 묶여 관리를 잘 받지 못하거나 방치돼 주인 없이 돌아다니는 일명 '마당개'들의 인도적 개체수 조절을 위한 '시골개, 떠돌이개 중성화 캠페인'을 진행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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