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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29년간 지구 20바퀴' 삼성 안내견 발자취 따라가보니
[르포] '29년간 지구 20바퀴' 삼성 안내견 발자취 따라가보니
  • (용인=뉴스1) 노우리 기자
  • 승인 2022.09.20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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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건희 회장 신경영 선언 직후 출범…총 267마리 무상 분양
안내견 한 마리 육성에 1억 지원 필요…"사회 인식 더 개선돼야"
20일 용인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서 훈련사가 안내견 보행 체험을 시연하고 있다. (삼성 제공)

 


(용인=뉴스1) 노우리 기자 = 장애물이 나오자 오른쪽으로 몸을 비켜섰다. 계단이 등장하자 한 발만 첫 층계에 올리고 보행자가 이를 알아채기를 기다렸다. 눈을 가린 보행자가 손을 더듬어 계단임을 인지하자 비로소 느릿한 발걸음을 뗐다. 안내견 ‘지니’가 시각장애인 주인과 소통하는 방식은 빠르지는 않았지만 정확하고 사려깊었다.

20일 찾은 경기 용인시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선 수 마리의 안내견과 예비 안내견이 기자를 반겼다.

이곳에선 매년 평균 250여일(주말·공휴일 제외), 평균 6명의 안내견 훈련사가 하루 4차례 4시간 안내견 보행 훈련을 진행한다. 훈련사가 안내견과 함께 걸어온 길을 수치화하면 무려 78만㎞. 지구 둘레(4만㎞)의 약 20배에 달한다.

과거 자연농원의 돼지 축사를 리모델링해 만든 이곳엔 안내견들이 자유롭게 뛰놀 수 있는 드넓은 초원과 수영장, 세상을 떠난 안내견들을 위한 추모비 등 다양한 시설이 마련돼 있다.

훈련사들은 ‘앞으로’, ‘가만히 있어’ 등 지시를 하며 교육장을 활발히 돌아다녔다. 안내견들은 시각장애인과 행인들의 안전을 위해 훈련사들의 옆에 착 달라붙어 보행자와 한몸인 것처럼 움직였다.

 

 

 

 

 



일부 구간에선 안내견이 알아서 가장 안전한 루트를 향해 발을 내디디기도 했다. 훈련이 효과적으로 반복되며 안내견들이 지도를 통째로 외워버린 결과다.

유석종 훈련사는 “시각장애인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놓인 장애물을 피하는 것”이라며 “안내견이 이 장애물을 인지하고 주인에게 이를 빠르게 알리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한다”고 설명했다.

 

 

 

 

사회화를 위한 가정분양 절차인 '퍼피워킹'을 앞두고 있는 예비 안내견들. ⓒ뉴스1 노우리 기자

 



한 마리의 안내견이 탄생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2년에 걸쳐 △퍼피워킹(사회화를 위한 가정분양) △훈련 △파트너 매칭 △파트너 동반 교육을 통과한 개들만이 안내견이 될 수 있다.

가장 적합한 성품과 건강상태를 지닌 아빠·엄마견 사이에서 태어난 새끼 강아지들은 8~9주차에 '퍼피워킹' 가정에 맡겨져 1년간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 15개월차부터 복종훈련, 위험대비 훈련 등이 진행된다. 훈련 통과율은 35%다. 안내견이 되지 못한 개들은 일반 가정으로 분양된다.

이 과정을 거쳐 1994년부터 총 267마리의 안내견이 시각장애인 파트너와 만났다. 훈련기간 2년에 안내견 활동 7~8년까지 합쳐 약 10년 동안 1억원에 달하는 지원이 필요하다. 분양된 안내견 수를 고려하면, 최소 300억원에 가까운 비용이 안내견 시스템 양성에 투입된 셈이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3년 미국 종합경제지 '포천(Fortune)'과 인터뷰하면서 반려견 '벤지'를 안고 있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안내견학교 관계자들은 안내견 분양 역사가 30년에 가깝지만, 아직도 사회의 인식 개선이 더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진용 훈련사는 "개가 싫다는 이유만으로 대중교통이나 공공장소에서 안내견 출입을 막는 경우가 있는데, 시각장애인에게 안내견은 '눈'이나 다름없다는 점이 더 알려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안내견 훈련이나 활동이 개들에게 스트레스를 줄 것이라는 통념도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안내견에게 시각장애인 주인과 걷는 일은 '일'이 아니라 비장애인 주인과 함께하는 '산책'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안내견 평균 수명이 13.9세로 일반 반려견보다 1년가량 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고(故) 이건희 회장의 뜻에 따라 신경영 선언 직후인 1993년 문을 연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는 내년 30주년을 맞는다. 삼성 관계자는 "앞으로도 시각장애인의 가족이자 파트너, 그리고 '눈' 역할을 해줄 안내견 양성 사업을 꾸준히 지속하고, 관련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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