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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견들의 풀죽은 마음까지 치료해줄 거예요"
"장애견들의 풀죽은 마음까지 치료해줄 거예요"
  •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승인 2015.11.2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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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펫츠오앤피 대표는 지난 2012년 국내 최초 동물 전문 의지·보조기 클리닉을 열었다. © News1

"사람은 팔다리가 없으면 의수나 의족을 맞추잖아요. 근데 동물은요? 한국엔 장애동물 보조기구를 만드는 곳이 없어서 제가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장애동물들의 90%가 안락사를 당하잖아요. 맘이 아팠어요."

김정현(32) 펫츠오앤피 대표는 장애인의 의수나 의족을 만드는 일을 하던 '의지(義肢)보조기기사'였다.

몇 해 전 우연히 장애동물이 대부분 안락사당하거나 버려진다는 얘기를 듣고 동물들을 위한 보조기구를 만들기로 맘을 먹었다. 막연한 꿈을 이루려고 그는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한국엔 장애동물 보조기구를 만드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려동물 시장이 커진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아무도 장애견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다친 강아지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궁금증이 생겼어요. 의지보조기기사라는 제 직업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동물 보조기구를 만들려면 지식과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에 미국으로 건너간 거죠. 미국은 20여년 전부터 의족, 휠체어와 같은 장애동물 보조기가 활성화됐어요. 반려동물 의족 등을 만드는 클리닉에서 제작 기술을 전수받았습니다."

그가 동물의 장애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아픈 기억 때문이다.

"어렸을 때 강아지와 고양이를 키웠어요. 그런데 어느 날 고양이 다리가 문틈에 끼었는데 하반신이 마비된 거예요. 그땐 마땅한 치료법이 없으니 그냥 방치하다시피 했죠. 의수와 의족을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 그때 기억이 계속 떠올랐고, 장애동물을 위해 일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겁니다."

미국에서 돌아온 그는 3년 전 국내 최초 동물 전문 의지·보조기 클리닉을 만들었다. 국내 최초로 시작했지만 아직도 장애동물 보조기구를 만드는 곳은 전국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한국에선 장애견 휠체어나 보조기의 90%가량을 제가 만들었어요. 나머지 10%는 3D프린터로 만들거나 병원에서 무상으로 만들어 주는 보조기예요. 3D프린터로 제작한 보조기를 착용하면 위험해요.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해부학적으로, 또 생체역학적으로 만들어야 하거든요. 신체를 대신하는 기구잖아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합니다."

김정현 펫츠오앤피 대표가 직접 장애견 보조기를 만드는 모습. © News1

김 대표가 만드는 보조기구는 모두 그의 손을 거친다. 100% 수작업으로 만들기 때문에 장애견에게 꼭 맞는 보조기구를 만들려면 대략 3~7일이 걸린다.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 힘들 때가 많지만 보조기구를 착용하고 새 삶을 찾은 장애견을 볼 때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뿌듯하다고 했다.

"봄이라는 여덟 살짜리 푸들이 이곳을 찾은 적이 있어요. 탈구 때문에 뒷다리를 모두 쓸 수 없어서 엉덩이를 질질 끌고 걸어야 했습니다. 잘 걷지 못하니 항상 풀이 죽어서 고개도 들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을 정도로 소심한 개였어요. 맘이 아팠죠. 휠체어를 맞추려고 뼈를 잡고 맞추다 보니 우연찮게 뼈가 맞춰졌어요. 놀랍게도 설 수 있게 된 거예요. 기적적으로 뼈를 맞추고 보조기를 채우니 언제 아팠냐는 듯 뛰어다니더라고요.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습니다."

보조기를 착용하고 성격까지 활발해진 장애견들을 볼 때면 특히 보람을 느낀다는 김 대표는 최근 큰 목표가 하나 생겼다.

"장애견들을 위해 보조기구를 맞춰주고 싶지만 문의만 하고 선뜻 구매하지 못하는 보호자들을 볼 때마다 맘이 아팠어요. 그래서 완벽한 맞춤은 아니지만 값은 보다 저렴한 제품을 만들어 쉽게 보조기구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맘먹었습니다. 3년 동안 제가 받은 사랑을 보답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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