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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손기번 원숭이가 왜 한국도로서 발견됐나
검은손기번 원숭이가 왜 한국도로서 발견됐나
  •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승인 2015.11.30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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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도심 주택가에서 지난 2일 발견된 국제적 멸종 위기 1종 '슬로로리스(SlowLoris)'. (사진 낙동강관리본부 제공) © News1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지난 8월 23일 충남 공주의 한 도로에서 검은손기번 원숭이가 달리는 자동차에 뛰어들었다. 영장류 중에서 가장 식성이 까다로워 완전히 익은 과일이나 새로운 잎과 싹만 먹는다는 이 밀림 동물은 왜 한국에서 발견됐을까. 팔다리가 몸통보다 긴 생김새만큼이나 검은손기번이 한국의 도로에서 발견된 건 그 자체로 희한하기까지 하다.

검은손기번뿐만이 아니다. 최근 11년간 한 가족과 살다 경남 부경 동물원으로 보내지는 과정이 방송돼 유명해진 게잡이 원숭이 ‘삼순이’에서 도심의 한 전통시장에서 한 달 새 세 마리나 모습을 드러내 전국을 들썩이게 만든 슬로로리스 원숭이까지 희귀 동물이 종종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발견된다. 이들 동물에겐 공통점이 있다. ‘멸종위기종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따라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 동물이라는 점이다. 검은손기번 원숭이는 CITES 1급, 게잡이원숭이인 ‘삼순이’는 CITES 2급, 슬로로리스 원숭이는 CITES 1급이다.

이름도 생소하고 국제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된 이들이 어쩌다 한국까지 들어오게 된 걸까. 왜 이들은 전통시장에, 도로에 불쑥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걸까.


◇ CITES종 자진신고로만 4160여 마리

환경부가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제적 멸종위기종을 사육·양식·소유 등을 하고 있는 자에 대해 자진신고를 받은 결과 전국 각지에서 4000마리가 훌쩍 넘는 희귀동물을 신고했다.

국회환경노동위원회 장하나 의원이 환경부 산하 유역ㆍ지방환경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불법 소유 사실을 알고 자진신고한 동물 수는 4160여 마리. 한강유역청이 2246마리로 가장 많았고, 대구지방환경청이 319개체로 뒤를 이었다. 조류가 가장 많이 신고됐는데, 한강유역환경청에선 CITES 2급인 조류만 무려 1691마리나 접수됐다. 앵무새와 같은 새를 CITES종인 줄 모르고 구입했다가 뒤늦게 사실을 확인하고 자진신고한 사례가 많은 때문으로 보인다.

조류 외에도 파충류, 양서류, 포유류 등 다양한 종이 국내에 반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 지방환경청의 자진신고 현황 자료에 따르면 아마존강에서 서식하는 세계 최대의 담수어 피라루쿠부터 아마존 분지나 중앙아메리카에 서식하는 안경카이만악어 등 희귀 동물도 눈에 띈다.

1~3마리 정도를 구입해 키우다 자진신고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사설 동물전시시설이나 환경부 산하기관에서도 불법으로 멸종위기종 동물들을 보유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전문가들은 국내에 머물고 있는 멸종위기종 동물들은 더욱 많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한 지방환경청 관계자는 “자진신고하지 않고 불법으로 소유하고 있는 개체들이 있다는 걸 감안하면 더 많은 희귀동물이 한국에 들어왔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제적 멸종위기종 1종인 푸른바다거북. (자료사진) © News1


◇ 입수경로 조사 안해… "면죄부 준 것" 비판도

멸종위기종을 국내에 반입하기 위해선 적법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멸종위기종을 들이겠다는 허가를 받아야 한다. 만약 허가를 받아 국내로 들어와 알이나 새끼를 낳으면 증식신고를 해야 한다. 또 양도ㆍ양수나 폐사할 때, 용도변경을 할 때도 신고해야 한다. 이 중 한 단계라도 어긴다면 당국에서도 누가 어떤 동물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한강유역환경청 자연환경과 관계자는 “양도ㆍ양수, 증식 등 어떤 과정에서든지 한 단계라도 누락하면 멸종위기종 관리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면서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고 멸종위기종을 보유하고 있는 이들의 현황을 확실히 알아보기 위해 자진신고 접수를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동물보호단체와 일부 전문가는 자진신고 접수가 국제적 멸종위기종을 불법적으로 기르는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입수경로 등은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며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환경부가 내린 CITES 자진신고 공고(제2015-551호)에 따르면 자진신고는 정해진 자진신고서 서식에 따라 보유자에 관한 정보(성명, 생년월일, 주소, 전화번호)와 사육정보(사육장소, 종류, 수량)만 알리면 접수가 가능하다. 일부 유역ㆍ지방환경청은 취득 경로도 함께 파악했지만 대부분 '양도인 미상'으로 조사됐다.

한 유역ㆍ지방환경청 관계자는 “양성화하려고 자진신고를 받았는데 어떻게 양도인까지 알아낼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또 다른 유역ㆍ지방환경청 관계자는 “멸종위기종 자진신고는 불법적으로 CITES종을 키우고 있는 이들을 양성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취득 경위까지 알아내 밀거래 과정도 알 수 있으면 좋겠지만 환경부 지침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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