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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는 왜 동물학대를 관리하기 시작했나
FBI는 왜 동물학대를 관리하기 시작했나
  •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승인 2015.12.0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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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서울 동대문구에서 발견된 유기견 한 마리의 귀가 전 주인의 학대로 구멍이 나 있는 모습. (자료사진) © News1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여자친구를 감금 및 폭행하고도 벌금형을 선고받은 데 그친 조선대 의학전문대학원생 박모(34)씨. 박씨는 전화 응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난 3월 28일 여자친구 이모(31)씨의 집에 찾아가 이씨를 4시간 넘게 감금하고 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한 방송이 공개한 녹취록을 들으면 박씨는 폭행 과정에서 여성의 반려견이 자기 발을 물자 반려견의 목을 조르기도 했다. 이를 이씨가 제지하자 박씨는 “제 정신이냐? 개를 살리려고 해? 너 죽을 건데? 안 죽을 거 같아?” 등의 폭언을 퍼부으며 폭행을 가했다.

왜 박씨는 여자친구도 모자라 그의 반려견에게까지 폭력을 휘두른 걸까.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폭력성이 심한 사람들은 동물을 비롯해 약한 상대에게 폭력을 휘두른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사이코패스 성향이 있는 사람은 아동기 때 동물을 괴롭히다가 나중엔 사람에게 범죄를 이어가기도 한다”면서 동물학대가 결국 사람에 대한 범죄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동물학대와 사람을 향한 범죄에 깊은 연관성이 있다고 보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홍성열 강원대 심리학 교수는 ‘범죄자 프로파일링’이란 저서에서 “동물 학대가 심한 사람은 계속되는 학대를 사람에게까지 전이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개나 고양이 등을 학대하며 쾌감을 느끼고 쾌감의 대상을 사람으로 옮기면 사람에 대한 범죄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 박충민씨는 2005년 경찰법무대학원 석사 논문에서 ‘연쇄살인범 387명을 분석한 결과 상당수 연쇄살인마는 힘없는 작은 동물들을 상대로 연습 기간을 거쳤다’는 미국연방수사국(FBI)의 분석 결과를 소개하기도 했다.

보스턴에 위치한 노스이스턴대학의 연구진은 남성 범죄자의 30%, 아동성추행범의 30%, 가정폭력범의 36%, 살인범의 46%가 동물학대 경험이 있다는 내용의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동물학대와 사람 대상 범죄의 연관성이 깊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내년부터 미국 전역의 동물 관련 범죄를 통계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국 볼티모어선(Baltimore Sun)지에 따르면 FBI는 동물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반사회범죄’로 분류하고 관리함으로써 사람에 대한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을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FBI는 동물학대를 ‘방치’ ‘학대’ ‘집단 학대’ ‘성적 학대’ 4가지로 나눠 통계화할 방침이다. 통계 작업이 끝나면 동물학대와 다른 범죄의 관련성 등을 보다 자세하게 밝힐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의 단속현장에서 발견된 투견들.(자료사진)© News1

미국은 동물학대를 중범죄로 다룬다. 실제로 지난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순회법원은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를 트럭에 매달고 1.5㎞를 주행한 남성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미국은 투견을 적발하면 관련자는 물론 구경한 사람까지 무겁게 처벌한다. 2013년 미국에선 투견 관련자들이 8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동물학대를 대하는 한국사회의 인식은 어떤 수준에 와 있을까. 안타깝게도 동물학대를 반사회범죄로 대하는 미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식 수준이 낮다.

2010년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던 최모(53)씨는 분양받은 반려견 8마리를 불로 지지고 발톱을 뽑는 등 잔인하게 학대했지만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됐다.

같은 해 채모(29·여)씨는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다른 주민의 반려견을 하이힐로 걷어찬 뒤 자기 집으로 데려가 10층 창밖에서 떨어뜨려 죽였지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데 그쳤다.

당시 동물보호법은 동물학대자에게 ‘500만원 이하 벌금형’을 처하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 2012년 2월5일부터 처벌 수준이 상향됐지만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형이 고작이다.

물론 실형을 받은 사례도 있다. 광주지법은 지난해 키우던 개를 차에 매단 채 끌고 다녀 찰과상을 입힌 김모(47)씨에게 징역 6개월 실형을 선고한 바 있다. 김씨에겐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하지만 재판부가 무면허운전, 음주운전 등으로 인해 집행유예 기간인 점을 양형에 고려했다고 밝힌 걸 감안하면 동물보호법 위반만으로 실형을 선고했다고 보긴 어렵다.

실제로 김씨는 무면허 상태로 범죄를 저질렀다. 일각에선 강아지를 트럭에 매달고 1.5㎞를 운전한 남성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한 미국과 비교하면 처벌 수위가 비교자체가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동물보호단체 카라(대표 임순례)의 전진경 상임이사는 “동물 관련 범죄를 통계화하겠다고 밝힌 걸 보면 미국은 동물학대와 사람을 향한 폭력의 연관성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실제로 미국 일부 지역은 동물학대가 일어나면 그 지역의 아동보호기관에 학대가 일어난 곳을 알려주고 그곳에서 아동학대가 발생했는지 확인하게 한다”고 했다.

전 이사는 “동물학대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강력한 처벌은 결국 이 사회의 약자에 대한 학대를 막기 위한 예방 활동”이라며 “한국도 미국처럼 동물학대에 대한 처벌 수준을 높이고 동물학대를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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