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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농장 폐쇄를 설득한 활동가를 아들이라 부르게 된 사연[최기자의 동행]
개농장 폐쇄를 설득한 활동가를 아들이라 부르게 된 사연[최기자의 동행]
  • (아산=뉴스1) 최서윤 기자
  • 승인 2022.12.26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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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I, 노부부가 운영한 개농장 폐쇄하며 전업 지원


(아산=뉴스1) 최서윤 기자 = "아들~ 신발 이걸로 바꿔 신어."

개농장주인 70대 할아버지는 30대 청년 동물활동가를 '아들'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신발을 갈아 신으라고 손짓했다.

충남 아산의 개농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청년은 개들의 배설물 냄새가 스며든 진흙투성이의 운동화를 벗고 장화로 바꿔 신었다.

이 청년은 동물보호단체인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 한국지부(HSI)의 이상경 팀장이다. 개농장 철폐를 목표로 활동하는 이 팀장은 지난 8일 채정아 대표, 서보라미 정책국장 등과 함께 개농장 옆 주택에 사는 농장주 양모씨(73세) 부부를 만났다. 이곳에 있는 150여 마리 개들의 향후 관리방법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이상경 HSI 팀장은 8일 아산의 한 개농장에서 농장주를 설득해 농장을 폐쇄하고 개들을 구조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서보라미 HSI 국장은 8일 아산의 한 개농장에서 농장주를 설득해 농장을 폐쇄하고 개들을 구조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 농장주 "열심히 살았고 시대 바뀐 것 실감"

HSI가 농장주인 양씨를 만나 설득하는 과정에서 그가 개농장 사업을 시작하게 된 30년 전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양씨는 과거 대형 화물차 운전을 했다고 한다. 화물 운송을 운행하며 고속도로를 밤낮으로 쉬지도 못하고 달리다 졸음운전을 하게 됐고 '이러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다른 일을 찾게 됐다고.

그는 1990년도에 사둔 땅이 있어서 처음엔 한우를 키웠다. 그러다 한우파동이 오는 바람에 소 한 마리 값이 개 한 마리 값도 안 되는 상황에 놓였다.

결국 소 키우는 일은 접고 개들의 숫자를 늘리며 30년간 개농장을 운영했다고 한다. 당시 상황에서는 그저 이 시대를 열심히 산 어른일 뿐이다.

그는 "1950년 6.25 한국전쟁 때 태어나 지금까지 살면서 남한테 피해준 적 없다고 자신한다"며 "30년 동안 내 땅에서 개농장을 하면서 가축분뇨 등 문제로 신고도 여러 번 당했다. 그 때마다 잔반 처리 허가증을 받고 시설을 보완해 농장을 운영해왔고 자식들도 다 공부시켰다"고 밝혔다.

물론 다른 개농장주들이 다 양씨와 같지는 않다. 동물단체나 활동가들이 농장 포기를 설득해 전업을 도우려 하면 보상을 지나치게 많이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동물활동가들에 따르면 개농장 운영을 포기했다가 다시 운영하는 사례도 있다.

양씨는 "주변에서 동물단체한테 속은 것 아니냐, 개들만 빼돌리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며 "그런데 이 사람들은 날 속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나이가 먹어 힘든 것도 있고 시대가 점점 바뀌고 있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 마침 단체에서 농장 접는 것을 도와준다고 하니 나도 그만 하게 된 것"이라면서 "개들을 잘 부탁한다. 나도 이젠 좀 쉬겠다"며 먼산을 바라봤다.

HSI는 양씨의 행동이 "큰 결단"이라며 이 같은 영향력과 인식 개선이 다른 농장주들에게도 전파되길 기대했다.

HSI 관계자는 "어르신이 평생 해온 개농장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큰 결단을 내리셨다"며 "대부분은 개농장 폐쇄를 설득하기가 쉽진 않다. 오늘부터 우리가 개들을 잘 보살피고 좋은 곳으로 입양 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HSI는 8일 충남 아산의 한 개농장에서 농장주(사진)를 설득해 농장을 폐쇄하고 개들을 구조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 HSI, 농장주 비난 보다는 설득 나서

HSI 관계자들의 방문은 이날이 처음은 아니었다. 여러 차례 방문해 농장주를 만난 상황. 이들은 농장주에게 개 사육 포기를 설득했고, 농장주도 고심 끝에 농장을 접기로 결단을 내렸다.

농장주가 포기한 개들은 HSI 본부가 있는 미국으로 보내 보호하다 새 가족을 찾아줄 예정이다. 다만 150여 마리 개들을 한꺼번에 해외로 보낼 수 없기 때문에 출국 전까지 개들중 일부는 이곳 농장에서 겨울을 보내야 한다.

이에 HSI 관계자들은 이날 늦게까지 뜬장의 바닥을 막고 바람막이를 치는 등 개들이 추운 겨울을 버틸 수 있도록 환경을 정비했다.

HSI는 농장의 개들을 구조해 입양 보내는 활동을 많이 한다. '개식용 철폐'를 외치지만 그렇다고 농장주를 맹목적으로 매도하진 않는다. 사유 재산인 개들을 '강탈'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이들은 농장주를 직접 만나 과거와 달라진 사회 분위기를 알리고 설득하는 노력을 한다. 특히 농장주들이 개농장이 아닌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전업을 돕고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은 인간의 생존권을 보장했다는 측면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뿐 아니라 폐쇄하기로 결정한 개농장의 개들은 숫자와 상관없이 모두 구조한다. 아산 개농장에는 도사견과 진돗개, 풍산개 혼종 등 중대형견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개들 중 일부는 새끼를 낳아 젖을 물리고 있었다. 이 개들은 모두 HSI에서 데려가기로 결정했다.

개농장의 대형견들은 공동주택이 많은 국내 도시에서는 키우기 힘든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개농장의 개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실제 입양하는 경우는 적을 수밖에 없다.

개농장 철폐를 외치며 농장주와 대립하는 모습을 보인 동물단체도 HSI처럼 구조한 개들을 모두 책임지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

HSI는 아직 국내 모금을 하지 않는다. 농장주를 설득해 개들을 구조하고 해외 입양을 보내는 비용은 미국 본부에서 지원받고 있다. 이들은 개, 고양이 식용 금지 뿐 아니라 쥐, 기니피그 등 실험동물 대신 대체시험 도입도 주장한다.

더욱이 구성원 대다수가 채식주의자들이다. 동물보호에 있어 진정성을 인정받는 이유다. 이들은 이날 개들과 교감하며 조용히 구조활동을 이어나갔다.

HSI 관계자는 "앞으로도 다양한 동물보호 캠페인을 통해 꾸준히 인식 개선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한국HSI는 8일 충남 아산의 한 개농장에서 농장주를 설득해 농장을 폐쇄하고 개들을 구조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한국HSI는 8일 충남 아산의 한 개농장에서 농장주를 설득해 농장을 폐쇄하고 개들을 구조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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