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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짜이, 코리아"…생명 다루는 일에 국경은 없었다[최기자의 동행]
"컵짜이, 코리아"…생명 다루는 일에 국경은 없었다[최기자의 동행]
  • (비엔티안=뉴스1) 최서윤 동물문화전문기자
  • 승인 2023.02.25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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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없는 수의사회, 첫 해외 봉사…라오스 현장


(비엔티안=뉴스1) 최서윤 동물문화전문기자 = "컵짜이, 코리아!"

라오스(LAOS) 현지인이 한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한 말이다. 컵짜이는 라오스어로 '감사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감사인사를 받은 사람들은 라오스로 봉사활동을 온 '국경없는 수의사회' 회원들.

현지인이 이같이 말한 이유는 반려묘의 중성화 수술이 무사히 끝나서다.

한국전쟁 때 원조 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가 된 대한민국. 이제는 사람을 넘어 동물도 돕는 나라가 됐다. '국경없는 수의사회'의 민간외교는 라오스에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국경없는 수의사회는 12일 라오스 국립대학교 동물병원에서 동물의료봉사 활동을 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 75마리 개, 고양이 중성화 및 광견병 예방접종

지난 12일(현지시간)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 국경없는 수의사회(대표 김재영) 회원 40여 명은 전날에 이어 라오스 국립대학교 동물병원에서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국경없는 수의사회는 수의사 외 수의대생과 정치인, 연예인, 기업 관계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는 농림축산식품부 사단법인이다.

이들이 라오스를 찾은 이유는 개(강아지), 고양이의 중성화 수술과 광견병 예방접종을 위해서다.

국경없는 수의사회는 12일 라오스 국립대학교 동물병원에서 동물의료봉사 활동을 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라오스 사람들은 개들을 대부분 풀어놓고 지낸다. 주인은 있지만 특별히 관리를 하지 않다보니 자연스럽게 교배를 통해 번식한다.

예방접종을 하지 않아 기생충, 진드기 감염도 많다. 모기가 극성을 부려 심장사상충에 걸릴 우려가 높지만 신경 쓰는 주인은 별로 없다.

개체 수 조절을 위한 중성화 수술의 필요성 또한 거의 느끼지 못한다고. 중성화 수술의 경우 평소 건강관리가 힘든 수컷은 전립선염과 고환암을, 암컷은 자궁축농증 등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안다고 해도 비용 문제나 수술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경없는 수의사회는 12일 라오스 국립대학교 동물병원에서 동물의료봉사 활동을 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광견병과 관련한 현지 사정은 한국에서 라오스로 건너간 박용승 김은옥 부부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수의사이자 선교사인 이들 부부에 따르면 라오스는 매년 도심에서만 10명이 넘는 인구가 광견병에 걸려 사망한다. 이 때문에 광견병 접종이 필수지만 접종비가 비싸서 예방을 제때 못하는 상황이다.

이 같은 소식을 들은 국경없는 수의사회는 중성화와 광견병 접종을 지원하기로 하고 신청을 받았다.

국경없는 수의사회는 12일 라오스 국립대학교 동물병원에서 동물의료봉사 활동을 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수의사들은 개, 고양이 수술과 접종을 위한 기본 신체검사와 채혈 등을 진행했다. 정부광 이민영 봉사자는 심장사상충 검사 등을 맡았다. 수술을 하기 전 기본 검사는 필수다. 몸무게에 따라 마취약을 투약해야 하고 빈혈이 심하면 수술을 할 수 없어서다.

이인형 신경준 신동휘 봉사자는 마취를 했다. 만일을 대비해 심박수 측정 장비를 설치하고 이상증상을 보이는지도 살폈다. 수술부위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애묘인들이 선호한다는 조에티스의 컨베니아 항생제도 사용했다.

국경없는 수의사회는 12일 라오스 국립대학교 동물병원에서 동물의료봉사 활동을 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이승철 김형규 박홍남 봉사자는 수술을 맡았다. 김문석 김정남 박대곤 봉사자는 수술을 위해 초음파열 절제기구인 리가슈어를 사용했다. 리가슈어는 수술 부위를 잘라낸 이후 실이 아닌 열을 가해 상처를 봉합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통증이 적고 지혈이 잘 돼 사후관리에 좋다.

의사인 정혜진 봉사자와 박슬기 이지은 박정우 봉사자는 동물들이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회복이 잘 될 수 있도록 도왔다. 30도가 넘는 한여름 날씨에 동물들은 물론 사람들이 탈진하지 않도록 대형 선풍기를 돌려가며 회복될 때까지 지켜봤다.

국경없는 수의사회는 12일 라오스 국립대학교 동물병원에서 동물의료봉사 활동을 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라오스 사람들은 정이 넘치고 선했다. 르벤덤 식당을 운영한다는 또 다른 현지인은 "먼 곳까지 와서 고양이 건강상태를 봐주니 고맙다"며 의료진들을 위해 피자와 파스타를 선물하기도 했다.

라오스 학생들은 처음 보는 수술 현장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학생들은 수술 장면을 지켜보며 메모했다. 영상 기록도 남겼다. 한 한국 수의대생은 라오스 학생에게 진료 내용을 영어로 공유해 눈길을 끌었다.

국경없는 수의사회는 12일 라오스 국립대학교 동물병원에서 동물의료봉사 활동을 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대동물을 진료하는 정한영 원장은 소 농가를 찾아 채혈 후 브루셀라 질병 검사를 했다. 라오스의 최근 날씨는 건기라 소들이 밖에 나가 먹을 풀을 찾는다.

정 원장은 "소들이 굉장히 똑똑해서 풀어두면 나갔다가 먹이를 먹고 때 되면 다시 집에 들어온다"며 "소들이 병에 걸리지 않게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경없는 수의사회는 12일 라오스 국립대학교 동물병원에서 동물의료봉사 활동을 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 라오스 국경 넘어 선물 남기고 떠난 작은 생명

봉사 현장 분위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8시간 동안 거의 쉬지 못했지만 힘든 내색을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렇게 75마리 동물들의 중성화 봉사가 끝나가던 중 응급상황이 발생했다. 중성화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던 개 '잘라'가 갑자기 심정지가 온 것. 수술은 무사히 끝난 터라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때마침 현장에는 동물응급의학을 전문으로 한 수의사들이 있어서 곧바로 응급처치에 들어갔다. 해마루동물병원의 남예림 수의사와 함께 백지선 서지민 수의사 등이 심폐소생술을 한 결과 잘라의 심장은 기적적으로 다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사이 계획된 봉사활동 시간도 지났다. 40여 명의 발이 묶였지만 불편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한마음으로 잘라가 다시 눈 뜨기를 기도했다.

잘라의 보호자는 잘라를 정말 가족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잘라가 응급처치를 받는 모습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라오스에는 한국처럼 최첨단 의료장비를 갖춘 동물병원을 찾기 힘들다. 이 때문에 국경을 넘어 태국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선택의 기로에 선 보호자는 한국에서 온 수의사들에게 잘라의 응급처치를 부탁했다. 그는 수의사들이 심정지가 온 잘라를 살리려는 모습을 보고 무한 신뢰를 했다.

그렇게 응급센터 경험이 많은 한국의 수의사 5명과 라오스의 수의사, 수의대생들은 밤늦게까지 남았다. 빵 하나로 끼니를 때우며 잘라에게 수액을 놓고 필요한 치료를 이어갔다.

잘라는 안타깝게도 한국 수의사들이 철수한 다음날 새벽 숨을 거뒀다. 하지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아닌 조용히 눈을 감은 상태로 머나먼 산책길을 떠났다.

보호자는 잘라가 기저질환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봉사하러 온 수의사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라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한국 수의사들의 모습은 라오스 수의사와 수의대생들의 뇌리에도 오래 남았다.

라오스 국립대 측은 감사인사와 함께 계속 인연을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작은 생명을 끝까지 살리려는 모습에 "감동 받았다"고도 말했다.

불교국가인 라오스는 윤회를 믿는다. 모든 생명은 언젠가 생을 마감하고 또 다른 모습으로 다시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잘라도 그렇게 다시 곁에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국경없는 수의사회 회원들은 라오스를 떠나기 전 잘라를 위해 묵념을 했다. 그리고 말했다.

"잘라야, 우리 곧 만나자. 꼭 다시 와 줘."

국경없는 수의사회는 12일 라오스 국립대학교 동물병원에서 동물의료봉사 활동을 했다. 사진은 수술이 끝나고 회복 도중 심정지가 온 개를 응급처치 하는 모습. ⓒ 뉴스1 최서윤 기자


한편 국경없는 수의사회의 첫 해외 봉사에는 사료업체인 우리와를 비롯해 대한수의사회, 서울시수의사회 서울수의약품과 한국조에티스(Zoetis), 한정애 국회의원 등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후원을 했다.

우리와는 라오스 수의대 교직원과 학생들이 광견병 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도록 후원금을 전달했다.

국경없는 수의사회는 업체들의 지원을 받아 라오스 국립대에 환자감시장치(페이션트 모니터)와 수술도구 등을 기부했다.

국경없는 수의사회 회원들이 10일 라오스 국립대학교 수의학과 교수, 학생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해피펫] 사람과 동물의 행복한 동행 '뉴스1 해피펫'에서는 짧은 목줄에 묶여 관리를 잘 받지 못하거나 방치돼 주인 없이 돌아다니는 일명 '마당개'들의 인도적 개체 수 조절을 위한 '시골개, 떠돌이개 중성화 및 환경개선 캠페인'을 진행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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