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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같은 아이들" "피로도 극심"…고양이 추방 앞둔 마라도 '진통'
"가족 같은 아이들" "피로도 극심"…고양이 추방 앞둔 마라도 '진통'
  • (제주=뉴스1) 오현지 기자
  • 승인 2023.02.27 16: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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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뿔쇠오리 보호 위한 고양이 반출 시작
"입양 원하는 고양이는 남겨두고 개체수 관리할 것"
천연기념물 뿔쇠오리 보호를 위한 마라도 고양이 반출 사전작업이 시작된 27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마라도 한 횟집 앞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있다. 2023.2.27/뉴스1 ⓒ News1 오현지 기자


(제주=뉴스1) 오현지 기자 = 27일 국토 최남단 마라도의 한 횟집 앞에 고양이 두 마리가 봄햇살 같은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횟집 주인 정모씨(66)가 사료 봉지를 들고 부스럭 소리를 내자 고양이들은 쪼르르 달려가 배를 채웠다.

정씨는 2~3년 전 들끓는 쥐를 쫓기 위해 지인에게 고양이들을 입양해와 횟집에서 반려동물처럼 돌보고 있다. 횟집 밖 한쪽에는 고양이 집까지 마련돼 있었다.

천연기념물 뿔쇠오리 보호를 위한 마라도 고양이 반출이 불과 이틀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정씨 입장은 '반출 불가'로 확고하다.

정씨는 "사실상 가족처럼 지내고 있기도 하고, 고양이들을 다 데려가면 쥐는 누가 잡겠느냐"며 "고양이들이 뿔쇠오리를 잡아먹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50대 횟집 주인 역시 "마라도 고양이들이 다 기생충이 있다고 하는데 아픈 것만 치료하고 다시 돌려보내주길 바란다"며 "다시 돌아오면 기생충 약이라도 직접 먹이면서 돌보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라고 토로했다.

이날 마라도를 돌아본 결과 일부 주민들은 뿔쇠오리 보호에 동의하면서도 반출될 고양이의 안전과 고양이 퇴출 후 들끓을 쥐나 해충 문제를 크게 우려하고 있었다. 주민들이 제주도 측에 당부한 점 역시 고양이 보호와 국가 차원의 유해생물 방제다.

천연기념물 뿔쇠오리 보호를 위한 마라도 고양이 반출 사전 작업이 시작된 27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마라도 한 횟집에서 고양이들이 사료를 먹고 있다. 2023.2.27/뉴스1 ⓒ News1 오현지 기자


제주도 측은 우선 입양 의지가 있는 주민의 경우 관리 책임 의무를 부여하고 해당 고양이를 남겨둘 계획이다.

도 관계자는 "주민분들이 입양을 희망하거나 야생성이 매우 떨어진 개체는 남겨두고 관리가 되지 않는 고양이들을 섬 밖으로 데리고 나갈 것"이라며 "연구논문을 봐도 전면 반출 보다는 개체수 조절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설명했다.

도는 마라도에 남아있는 고양이들에 대한 중성화 수술을 마치고, 새로운 개체 유입을 예방하는 등 향후에도 개체수 관리에 나설 방침이다.

지난해 기준 서귀포시가 추산한 마라도 고양이는 110여 마리, 최근 오홍식 제주대학교 교수팀이 모니터링한 개체수는 60~70마리로 집계됐다.

고양이 반출 논란이 수개월째 이어지면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주민도 있었다. 한 주민은 "벌써 몇번째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좋은 일도 아닌데 언제면 끝날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천연기념물 뿔쇠오리 보호를 위한 마라도 고양이 사전 반출 작업이 시작된 27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마라도에서 제주도와 제주대 관계자들이 뿔쇠오리 예찰 작업을 벌이고 있다. 2023.2.27/뉴스1 ⓒ News1 오현지 기자


앞서 문화재청과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동물보호단체, 학계 등으로 구성된 협의체는 뿔쇠오리가 고양이 먹잇감으로 위협받자 마라도 길고양이를 섬 밖으로 반출하기로 지난 17일 합의했다.

뿔쇠오리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전 세계적으로 개체수가 5000~6000마리에 불과할 만큼 희귀한 철새다. 뿔쇠오리는 번식기간인 2월 하순부터 5월 초까지 마라도에 서식한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이날부터 길고양이 반출 사전 작업에 돌입했다. 우선 도는 고양이 개체수와 출몰 지역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뿔쇠오리 서식지를 예찰한다. 사전 작업에는 뿔쇠오리가 주로 활동하는 야간 시간대 고양이들이 둥지 등에 다가가거나 실제 뿔쇠오리를 공격하는지 확인하는 일도 포함된다.

이후 3월 1일부터 본격적인 고양이 포획에 나서고, 기상 상황을 보며 이르면 2~3일쯤 포획한 고양이들을 제주본섬으로 이송할 방침이다.

반출한 고양이들은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건강검진을 진행한 후 건강상태가 양호한 고양이는 세계유산본부가 제주시 조천읍에 마련한 시설에서 보호 관리할 계획이다. 건강에 이상이 있는 고양이는 계속 치료를 받는다.

이날 예찰 결과 나무가 우거진 지역에서는 뿔쇠오리 것으로 추정되는 깃털 여러개가 발견됐다. 도 측은 공격 주체를 확정할 수는 없지만 명확한 포식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4일에는 마라도 동쪽 절벽 주변 잔디밭에서 뿔쇠오리 4마리 사체가 발견되기도 했다. 사체를 발견한 제주야생동물연구센터 측은 사냥 습성 등을 고려할 때 고양이가 뿔쇠오리를 잡아먹은 것으로 추정했다.

다만 동물보호단체에서 고양이 퇴출 결정에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어 향후 진통은 이어질 전망이다. 보호단체 측은 뿔쇠오리 개체수 감소에 고양이가 영향을 미친다는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데다 반출하는 고양이의 안전한 보호방안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반대 이유로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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