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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복지' 기준 조차 없는 대한민국 대표 동물원
'동물복지' 기준 조차 없는 대한민국 대표 동물원
  • (서울=뉴스1) 이병욱 기자
  • 승인 2015.09.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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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에서 '동물원 동물의 복지를 위한 긴급 시민토론회'가 열렸다. /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이병욱 기자 = 최근 전시동물을 도축농장에 매각해 논란의 중심에 선 서울대공원 동물원.

동물원측은 사육 공간 부족과 적정 개체수 유지를 위해서 '잉여' 동물을 매각했고 법률에 따라 일반공개입찰의 정상적인 절차에 따랐다고 밝혔지만, 도축농장에 식용으로 팔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인도적인 처사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앞서 동물보호단체들은 지난달 19일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전시동물들이 도축농장으로 옮겨지는 현장을 포착했다.

당시 도축농장에서 발견된 전시동물들은 다마사슴 암컷 6마리, 물사슴 암컷 2마리, 잡종 사슴 암컷 7마리, 에조사슴 수컷 2마리, 꽃사슴 암컷 1마리와 수컷 3마리, 붉은 사슴 암컷 3마리 등 사슴 24마리와 새끼 흑염소 19마리 등 총 43마리였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매각한 동물들이 도축용이란 사실을 미리 알 수 없었다고 했지만, 동물보호단체들은 사전 인지한 동물원측이 이를 묵인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동물원측은 지난 14일 동물원 동물의 복지를 위한 긴급 시민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사태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토론회가 이번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내용들로 채워져 동물보호단체 회원들과 시민들이 강하게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대표 동물원에 없는 '동물복지 기준'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국내 동물원을 대표하는 시설로 국제적 멸종위기종(CITES) 141종 1056마리, 천연기념물 19종 267마리를 포함해 약 319종 2400여 마리의 동물들이 사육·전시되고 있다.

규모면에서나 공공성을 고려할 때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한국을 대표하는 공영동물원이다.

문제는 국내 대표 동물원이 동물들의 복지에 대한 기준조차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이다.

현재 동물원은 관련 실정법이 없어 운영은 박물관법을 적용하고 있으며, 동물원의 동물윤리복지에 관한 규정은 전무하다.

서울특별시동물원 관리 규칙의 경우도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규정에 의거, 동물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지만 시설물의 유지관리, 전시 및 이용활성화, 동물의 수집·연구 및 교류사업 등 일반적인 내용만 포함돼 있다.

또한 분류 및 사육수의 조정, 사료의 급여량, 건강점검 및 방역, 비상조치 및 폐사체의 처리 등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 놓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동물복지의 내용은 미흡하다.

구체적으로 제14조 동물 사육수의 조정 등을 보면, 관리자는 사육중인 동물의 생태적 연관 및 동물의 사육환경을 쾌적하게 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매매, 교환, 수증, 증여, 번식근절, 도태, 방면 및 동일 회계기관으로의 관리전환, 타회계기관으로의 양여 또는 임대 등의 방법으로 사육하는 동물의 수를 조정할 수 있다고만 명시돼 있고 개체별 특성을 고려한 처리나 증여 또는 양여 제한 기준 등은 찾아볼 수 없다.

한국동물원수족관협회(KAZA)에 등록된 국내 동물원 및 수족관은 21곳이다. 지자체 동물원의 경우 서울특별시 동물원 관리규칙을 모태로 동물원 자체 실정에 맞게 관리 기준을 조정해 운영하고 있지만, 동물의 복지에 관련한 규정은 대동소이하다.

반면 세계동물원수족관협회(WAZA)는 윤리강령과 동물복지에 관한 규정을 별도로 두고, 12가지 항목 가운데 첫번째로 '동물복지'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WAZA 윤리강령과 동물복지에 관한 규정은 '동물복지와 동물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가장 최고의 수준을 제공한다. 동물복지를 위한 어떠한 법이라도 최소한의 기준이라고 생각해야 하며 동물이 삶의 질이 불량하다면 고통 없이 빠르게 안락사하도록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밖에 ▲동물원에서 동물이용 ▲전시기준 ▲동물획득 ▲동물운송 ▲피임 ▲안락사 ▲절단 ▲동물원 동물을 이용한 연구 ▲야생 방면 프로그램 ▲관리중에 폐사한 동물 ▲외부 야생동물 복지문제 등 사안별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WAZA의 규칙은 동물을 학대하고 나쁘게 관리하는 곳을 거부하고 규탄하고 있으며, 회원들에게 외부 야생동물을 위한 복지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서울대공원은 WAZA에 정식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서울대공원 전시동물 도축장 판매 금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에이제이 가르시아 동물단체 케어 미국법인 대표가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도축농장으로 매각돼 도축당한 새끼흑염소의 머리를 들어보이고 있다./뉴스1 © News1 변지은 인턴기자

◇사라진(?) '동물 권리장전'

서울대공원은 지난 2012년 10월 국내 최초로 동물을 위한 '권리장전'을 만들겠다고 언론을 통해 공표했다.

당시 대공원측은 "국내 최초로 '동물원 야생동물 권리장전'을 만든다. 이는 국내 동물원에 살고 있는 모든 야생동물에 관한 보호·관리기준이자 윤리복지기준"이라며 "내년까지 동물원 복지에 관한 기준안을 마련해 서울동물원에 우선 적용하고, KAZA에 전달해 '동물원 야생동물 권리장전'을 발효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시 서울시는 서울동물원장을 팀장으로 수의사 등 동물원 직원 등 26명이 참여하는 '동물원 윤리복지 TF'를 출범시키고 동물복지 분야 전문가 등 150여명을 초청해 워크숍을 개최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권리장전에는 ▲동물윤리와 동물행동 풍부화 ▲동물원 야생동물 사육에 관한 일반적인 사항 ▲질병·안락사·방역과 관련한 동물질병관리 ▲동물실험 및 연구에 관한 사항 등이 담길 예정이었다.

서울대공원은 동물 종별 복지평가 기준을 마련해 실제 서울동물원 동물들을 대상으로 연 2회 평가를 거쳐, 2013년 5월에 국내 최초로 동물원내 동물윤리복지 기준을 만들고, 이와 별도로 서울동물원 동물들의 복지를 점검할 '시민 동물윤리복지위원회'도 구성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서울대공원의 야심찬 계획과 달리 실제로는 '동물 권리장전' 마련 약속이 지켜지지 못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공원 관계자는 "당시에 불법포획된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의 자연 방사, 서울대공원 호랑이 '로스토프'가 사육사를 물어 죽인 사건 등 각종 사안들이 벌어지면서 계획과 달리 기준안이 마무리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동물원 윤리복지 TF' 구성 후 해외동물원 윤리복지 규정 자료 수집 번역, 시민토론회와 직원 워크숍, 동물원 패팅(먹이주기) 가이드라인 마련, 동물사별 사육매뉴얼 및 안전관리 매뉴얼 작성, 행동풍부화 매뉴얼 작성 등을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이와 함께 현재 '전시동물 가이드라인' 초안을 작성중이며, 전국동물원 전문가 초청 워크숍 및 시민토론회 등을 거쳐 연말쯤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향후 동물매각과 관련해 입찰 당사자의 비윤리적인 동물 이용을 금지하기 위해 입찰조건에 동물복지에 관한 내용을 권고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2년째 잠자는 '동물원법'

국내에는 동물원과 관련한 별도의 법률이 없다. 현행법상 동물원 내 사육동물에 대한 적정한 사육환경 제공 등 동물의 복지에 관한 규정이 전무한 것이다.

국내 동물원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공원시설중 교양시설로 분류돼 있다. 또 '자연공원법'으로는 공원시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상 박물관의 한 종류다.

동물과 관련된 현행법은 야생동물을 다루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 가축 및 반려동물을 다루는 '동물보호법', 해양동물을 다루는 '해양생태계의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 등이 있다.

이에 동물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사항과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동물의 적정한 사육환경 조성 등 사육동물의 복지 사항을 법률로 정해야한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이같은 필요성에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2013년 9월에 '동물원법'을 대표발의 했지만 2년 넘게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발의안에 따르면 동물원 등 설립은 허가를 받도록 하고, 동물쇼 금지, 동물원에 적응할 수 없는 동물은 사육·전시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동물원과 관련해 발의된 법안으로는 '동물원법'외에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대표발의), '동물원 관리·육성에 관한 법률안'(양창영 새누리당 의원 대표발의) 등이 있다.

장하나 의원은 "현재 동물원 관련법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동물원법이 2년 넘게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동물원이 자체적인 규정을 만드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규정에 동물의 사육환경 등 복지와 관련된 사항이 제대로 반영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동물원법이 시급히 통과되어 국내 모든 동물원 동물들의 최소사육기준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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