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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개가 더불어 행복한 집 지을 거예요"
"사람과 개가 더불어 행복한 집 지을 거예요"
  •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승인 2016.02.29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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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주택 연구소'의 박준영 소장. © News1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경력 20년이 넘는 건설 전문가가 돌연 '개집'을 짓겠다고 나섰다. IMF 사태로 처음 다니던 건설회사가 부도난 뒤 교회 건축에 뛰어들어 남부럽지 않게 자리를 잡았던 그다.

팽창하는 반려동물 시장 이면에 존재하는 그늘에 빛을 밝혀주고 싶었단다. 23년간 건설현장에 몸을 담다 지난해 '반려견주택연구소'를 설립한 박준영 소장(48)을 만났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반려동물 인구가 지난해 1000만명을 돌파했다. 통계청은 반려동물 관련 시장 규모가 2조원을 넘어섰을 것이라고 예상했고, 농협경제연구소는 2020년엔 6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커지는 반려동물 시장의 이면엔 유기동물, 동물학대를 비롯한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 2014년 기준으로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등록된 유기동물은 8만283마리고 최근 5년간(2010~2014년) 등록된 유기된 동물만도 약 37만 마리에 달한다.

박준영 소장이 반려동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유기동물 때문이다. 그는 유기동물 관련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사람과 동물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집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 전 한 방송에서 유기견 관련 특집 프로그램을 봤어요. 예전에 개를 키웠던 터라 방송을 보니 맘이 정말 불편하더라고요. 이건 아니다 싶었죠. 일본이나 미국 같은 곳은 반려동물 문화가 많이 발전돼 있는데 한국은 개를 재미삼아 키우다 보니 유기견 문제가 심각합니다. 개를 애틋하게 키우는 분들도 개의 주거환경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잘 모르더라고요. '왜 한국은 없지? 왜 안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 소장은 업무차 자주 들락날락하며 보았던 일본의 반려동물 주택을 떠올렸다. 박 소장에 따르면 일본은 '펫또만숀(ペット·マンション:Pet과 mansion의 합성어)'으로 불리는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을 위해 방음·방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재를 사용해 짓는 아파트가 많다.

개가 쉽게 지나다닐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든 문. (사진 반려견주택연구소 제공) © News1

"문제의식을 갖고 그때부터 조사에 들어갔어요. 당장 일본으로 달려갔죠. 소음을 방지하기 위한 벽체와 바닥재, 반려견의 시력 보호를 위한 조명 등 한국에선 볼 수 없는 건축 자재들이 많더라고요. 근데 일본도 그 자재들을 모아 파는 곳이 없어서 이곳저곳 다니며 알아보느라 고생을 좀 했습니다."

약 2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박 소장은 지난해 8월 '반려견주택연구소'를 열었다. 반려견을 위한 집을 짓는 일은 국내에서 처음인 터라 사업자등록을 할 때 업종 분류 때문에 세무서 직원이 난감해 했다고. 그렇게 사업자 등록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건 지난달 말. 반응은 바로 나타났다. 한 달 만에 10여 건의 의뢰가 들어왔다. 박 소장은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집이 있다고 했다.

"네 명이 사는 일반적인 가정이었어요. 아파트에서 치와와 한 마리를 키웠어요. 개가 여섯 살밖에 안 됐는데 슬개골 탈구 때문에 수술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개가 미끄러운 바닥에서 계속 뛰어다니는 게 슬개골 탈구에 영향을 준 것 같다고 했어요. 그래서 개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바닥을 코팅했죠. '개가 미끄러지지 않고 아주 안정적으로 잘 다닌다. 진작 할 걸 그랬다'는 의뢰인의 전화를 받고 나서 정말 뿌듯했어요."

박 소장은 현재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가구들이 모여 살 수 있는 타운하우스와 빌라, 오피스텔 건축을 추진 중이다. 동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이 한 데 모여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목표다. 사람과 반려동물이 어우러져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갖춘 건 물론이다. 오피스텔과 빌라 옥상엔 개가 뛰어놀 수 있는 공간도 만들 생각이다.

"반려동물과 행복하게 살려면 집 구조부터 달라야 해요. 반려동물을 키우는 존재가 아니라 가족처럼 공존, 공생하는 개념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거예요. 그래야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어요. 올바른 반려동물 문화를 정착하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동물도 사람처럼 지구에 살아가는 생명체라면서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박 소장. '함께'나 '더불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그가 짓는 주택이 반려동물 시장에 기분 좋은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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