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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밥·팔찌 팔아 유기동물 도와요" 대견한 초등생들
"주먹밥·팔찌 팔아 유기동물 도와요" 대견한 초등생들
  •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승인 2016.06.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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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2일 열린 성북문화다양성축제 '누리마실'에서 벌어들인수익금 전액을 유기동물을 위해 쓰겠다고 밝힌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 © News1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길고양이와 가족을 잃은 개를 위해서 쓸 거예요!"

아이들의 표정은 모두 환했다. 자신들의 행동이 이렇게까지 알려지는 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재잘거리는 입에서 자기들끼리 머리를 맞대어 낸 아이디어로 좋은 일까지 한 데 대한 뿌듯함이 엿보였다.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가 되면 서울 성북구 삼선동의 장수마을 박물관엔 초등학생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이유는 하나. 놀기 위해서다. 토요일만큼은 이곳을 찾는 아이들 모두가 '놀이 연구원'이 된다. 어떻게 놀지 함께 고민하고, 자신들이 찾은 놀이를 동무들과 공유한다. 선생님은 그저 도우미가 될 뿐이다.

아이들이 매주 장수마을에 모이는 건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가 함께 운영하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는 주5일제 시행으로 토요일에 학교를 가지 않는 아동 및 청소년들이 제대로 놀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기 위해 시작됐다. 만화, 애니메이션, 사진, 미술, 연극, 무용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아이들 놀이를 돕는다.

장수마을에서 열리는 토요문화학교에는 지난 4월 성북구 4~6학년을 대상으로 모집한 20명이 다니고 있다. 이들은 매주 이곳을 찾아 함께 공연을 보러 가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고, 사진을 찍어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축제 참가를 준비하며 회의를 하던 아이들이 적은 기록들. '동물원은 동물과 사람이 같이 평화롭게 있는 곳이 아니라 오직 사람만을 위한 곳이다'라는 메모가 눈에 띈다. © News1

학생들은 지난달 22일 성북문화다양성축제 '누리마실'에 참가해 직접 만든 팔찌와 주먹밥을 내다 팔았다. 대견하게도 아이들은 축제에서 번 돈 14만7000원을 유기견과 길고양이를 위해 사용하겠다고 했다.

조선화(31·여) 교사는 "행사 기획부터 기부 결정까지 모든 걸 아이들이 회의를 통해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비롯한 교사 5명은 그저 아이들을 지켜보고 도와주는 게 전부였다고 했다.

"주먹밥하고 캐릭터 매듭 팔찌를 팔았어요. 팔찌는 약 한 달 전부터 아이들이 직접 틈틈이 만들었고, 주먹밥은 현장에서 직접 만들어 판매했어요. 기특하게도 아이들이 스스로 역할을 분담하더라고요. 남자아이들은 주먹밥을 만들고 여자아이들은 큰 소리를 내가며 주먹밥을 팔았어요. 우리 선생님들이 한 건 주먹밥에 쓸 밥을 한 솥씩 해간 거밖에 없어요."

축제에 참여하기 전 아이들은 머리를 맞댔다. 자신들을 위해 마련된 두 개의 부스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거듭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바로 '복불복 주먹밥'과 팔찌 판매였다.

축제에서 아이들이 판매한 팔찌. (사진 조선화 선생님 제공) © News1

아이들은 초콜릿, 겨자, 젤리, 삼겹살 등이 들어간 주먹밥을 만들어 1000원에 팔았다. 주먹밥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어 재미와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메뉴였다. 그래서인지 인기가 대단했다. 준비해 간 약 70인분 재료가 모두 동 났다. 팔찌도 인기가 좋았다. 또래들에게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손님이 늘수록 아이들은 흥에 겨웠다. 불쌍한 동물 친구들에게 더 많은 기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주먹밥을 팔았던 이소율양(12)은 "'수익금은 유기견을 돕는 데 쓰인다'는 안내판을 들고 주먹밥을 사달라고 소리쳤다"면서 "처음엔 부끄러웠는데 손님이 모여들고 잘 팔리기 시작하니 이상할 정도로 기분이 좋아졌다"고 했다.

외국인에게도 주먹밥 인기가 대단했다. 외국인들이 많이 참여하는 축제라는 걸 알게 된 아이들은 어렸을 때 외국에서 살다 온 박지환군(13)을 주축으로 영어 퀴즈를 준비하기도 했다.

"주먹밥을 사 먹는 외국인들에게 퀴즈를 냈어요. 제가 너무 고난이도 문제를 내서인지 잘 못 맞추더라고요. 힌트를 줘가며 손님들과 재밌게 놀았어요. 다들 즐거워했어요. 저도 유기동물을 돕는다는 생각에 뿌듯했던 것 같아요."

축제에서 아이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팔고 있는 모습. (사진 조선화 선생님 제공) © News1

아이들이 수익금을 길고양이와 유기견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결정한 건 동네를 오가며 <뉴스1> '해피펫'(happypet.co.kr)과 동물보호단체 케어(대표 박소연)가 함께 진행한 길고양이 급식소 프로젝트 현수막을 봤기 때문이다. 회의에서 아이들의 의견은 자연스레 '동물들을 위해 기부하자'는 쪽으로 모아졌고, 그렇게 길고양이 급식소와 유기견 입양센터에 사료를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유기동물들을 위해 축제에 참여하고, 또 그 과정을 즐기면서 기부까지 한 데 대해 큰 뿌듯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유기동물을 위해 축제 내내 뒤편에서 주먹밥을 만들었다는 최승영군(11)은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불쌍하잖아요, 유기견이랑 길고양이들이요. 저희가 번 돈을 딱 반으로 나눠서 고양이, 개 사료를 살 거예요. 고양이들도 먹을 수 있고 개들도 먹을 수 있어서 뿌듯해요. 주먹밥 만드는 동안은 아주 조금 힘들었는데, 지금은 너무 기분 좋아요. 또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번 14만7000원으로 구입한 사료는 장수마을 주민협의회와 동물보호단체 케어의 유기동물 입양센터에 기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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