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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위해 고양이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다'
'인간을 위해 고양이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다'
  •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승인 2016.09.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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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한국고양이수의사회 회장이 7일 서울 중랑구 태능동물병원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회장에게 안겨 있는 고양이는 스물 세 살짜리 반려묘 밍키. © News1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동물보호법 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도, 동물보호법 개정안 준비 모임에서도, 유기동물보호소 봉사활동에서도, 지방자치단체의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에서도…. 동물보호와 복지에 관련한 곳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 공식 행사장에선 말쑥한 정장을 차려 입고 동물과 사람이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버림받거나 병든 동물들 앞에선 언제 그랬냐는 듯 한없이 따뜻해지는 사람.

7일 서울 중랑구에 위치한 태능동물병원에서 만난 김재영 원장(52)은 동물을 위해서라면 열일 제쳐두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탓에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국고양이수의사회 회장, 대한수의사회 부회장·의료봉사단장·동물복지위원장, 국회동물복지포럼 자문위원, 강원대학교 수의학과 연구교수, 태능동물병원장. 그가 맡고 있는 직책만 봐도 얼마나 바쁠지 짐작이 간다. 회장님, 원장님, 교수님, 박사님, 선생님…. 그를 부르는 이 많은 호칭들이 활동의 내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는 지치지 않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동물권, 생명권이 바로서야 사람도 동물도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품고 있기 때문이란다.

"사람이 잘 살려면 환경이 건강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선 지구라는 별에서 함께 살고 있는 동물도 건강하고 행복해야 하죠. 혹자는 동물복지 언급하면 '사람도 먹고살기 벅찬데 동물까지 신경 써야 하느냐'고 냉소를 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물복지는 '동물만을 위한 행복'을 추구하는 게 아녜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는 게 핵심입니다. 이곳 지구에서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자는 거죠. 전 사람 복지에도 관심이 많답니다."

실제로 그는 2008년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사회복지를 공부하며 생명권과 동물권이 동떨어진 게 아니라는 점을 더욱 확신했다.

김 회장이 이끄는 대한수의사회 의료봉사단. © News1

사실 그가 동물복지에 관심을 가진 건 수의학과를 졸업하고서도 몇 년이 흐른 뒤였다. 수의학과에 들어간 것도 별다른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학교 다닐 땐 이론만 공부했죠. 졸업 후 인턴생활을 하며 수의사가 동물과 그 보호자를 함께 치료하는 직업이라는 걸 깨달은 후 달라졌어요. 사람과 동물이 함께 행복해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정말 기분이 묘하고 좋더라고요."

그를 결정적으로 바꿔놓은 계기가 있다. 약 15년 전 어느 날 서울여자대학교 총학생회 학생들이 500g도 채 안 되는 새끼 길고양이를 데리고 왔다. 저혈당, 저체온증을 앓고 있었다. 김 원장의 손길을 거친 길고양이가 건강을 되찾자 학생들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 어떤 환자들보다 더 크게 기뻐했다.

"수의사는 동물의 대변자로 불려요. 동물이 이야기하고 싶은 걸 전문 지식을 통해 보호자에게 얘기해주는 거죠. 생명을 살리고, 보호자로부터 신뢰를 받았을 때 오는 감흥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학생들은 꾸준히 길고양이 치료를 의뢰했다. 학생들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도 병들고 다친 길고양이를 데려왔다. 동물들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만나며 김 원장의 생각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길고양이를 돕는 최선의 방법은 중성화수술을 해주는 겁니다. 고양이는 사실상 365일 내내 발정기를 겪는 동물인데 얼마나 괴롭겠어요. 또 고양이 수가 끊임없이 늘면 경쟁으로 인해 고양이도 힘들겠지만 주변 사람들도 힘들어집니다. 발정기 때문에 고양이가 울고 그 스트레스로 사람이 고양이를 학대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라도 중성화수술이 필요합니다. 개인이 봉사하는 수준으론 해결할 수 없는 문제죠.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지난 6월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동물보호 콘퍼런스&동물보호법 개정 건의식'에서 김 회장이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동물보호법 개정 건의안을 전달하는 모습. © News1

김 원장은 2005년 각 지방자치단체에 '길고양이 보호에 관한 제안서'를 보냈다. 이 같은 제안을 낸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길고양이는 물론 사람들을 위해서도 중성화수술 사업을 관이 주도해 진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는 확고했다.

"제가 중성화수술 사업을 제안하기 전엔 개체 수 조절을 위해 길고양이를 모두 안락사시켰어요. 전 인도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죠. 2007년 강남구, 용산구가 시범적으로 중성화수술 사업을 운영했고 이후 서울 25개 구가 정책을 도입했어요."

김 원장은 자기 생각이 유별난 게 아니라고 했다. 환경이 건강해야 동물이 건강할 수 있고, 동물이 건강해야 인간이 건강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생각이라고 했다. 메르스, 지카바이러스, 에볼라 등 동물과 사람이 함께 감염되는 인수공통전염병이 주기적으로 유행하는 데서 동물복지의 중요성을 알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어린이, 노인, 동물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려는 이제 '배려'가 아닌 '의무'입니다. 길이 만들어져야 자동차가 다니잖아요. 사람이 동물이 모두 행복하게 다니는 길을 만드는 데 제가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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