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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위한 삶을 사는 지금, 너무나 행복해요"
"동물위한 삶을 사는 지금, 너무나 행복해요"
  •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승인 2016.09.1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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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채은 동물을위한행동 대표가 11일 <뉴스1>과 인터뷰를 가졌다. © News1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그는 잘나가는 학원 강사였다. 고등학생들에게 사회탐구영역을 가르쳤다. 그를 찾는 학생은 끊이지 않았고, 높은 연봉 덕분에 삶은 여유로웠다. 남부러울 게 없는 인생이었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경제적 여유도 그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과도한 입시경쟁 한가운데서 영혼이 피폐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리라' 다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남편이 자꾸 개를 때린다고 했다. 걱정스런 맘에 친구 집을 찾아갔더니 생기 잃은 시추 한 마리가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친구는 개를 더 이상 이곳에 두면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한 살도 안 된 강아지였다. 그는 10만원을 주고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 동물 근처에도 가본 적 없던 그였지만 자신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2001년 일이다.

국내 유일한 동물원 복지 전문단체 '동물을위한행동' 전채은 대표의 옛 이야기다.

전 대표가 데려온 강아지는 안타깝게도 학대 후유증으로 두 눈을 잃고 말았다. 당시 하루의 대부분을 학원에서 보내야 했던 그에게 앞을 보지 못하는 강아지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강아지를 생각하는 마음은 커져갔다. 그 맘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으로 바뀌었다.

그 후부턴 길을 다닐 때도 개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길을 떠도는 길고양이도 보였고, 전신줄에 앉아 지저귀는 새도 보였다. 동물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집에 있을 땐 동물 관련 자료를 찾아봤고,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자연스레 그의 삶에 동물이 들어왔다.

자료를 뒤지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찾게 됐다. 동물복지 모임에 가입해 활동하기 시작했고, 회원들과 정보를 공유했다. 그리고 그의 관심은 동물원에 갇혀 있는 전시동물에게 향했다. 대학에서 중국철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한국사를 공부했지만 동물에 대해 공부하는 일은 또 다른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동물에 관심을 기울이고 처음 찾아간 서울동물원이 너무나도 달라 보였다. 흙 기운 없는 아스팔트와 식물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철창 안의 삶이 전부인 동물들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대로 둬선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7월 서울시청에서 열린 '서울시 관람·체험·공연 동물 복지 지침 수립 시민토론회'. 전 대표는 이날 '전시동물 가이드라인 TF팀'을 대표해 동물복지지침안을 발표했다. © News1

전채은 동물을위한행동 대표는 그렇게 2003년 동물보호단체 회원이 됐다. 강사를 겸해 일하기 벅차다는 생각에 이듬해 과감히 학원에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2012년 그는 국내 최초 동물원 복지 전문단체인 '동물을위한행동'을 만들었다.

"한 번 관심을 갖기 시작하니 한순간에 빠져들었어요. 흥미를 느끼니까 다른 건 눈에 안 들어오더라고요. 수입은 형편없었지만 정말 즐거웠어요. 지금 받는 급여도 10년 전 강사 시절보다 훨씬 적어요. 그래도 행복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요."

한국의 수많은 동물원 중 전 대표가 가보지 않은 곳은 없다. 수족관도, 체험동물원도, 동물공연 전문시설도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은 없다.

"정말 형편없었어요. 동물원을 운영하면서도 야생동물 복지 개념이 전혀 없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제가 나타나서 문제를 지적하니 얼마나 당황스러웠겠어요. 외국엔 진작 전시동물 복지를 위한 단체들이 많았는데 국내엔 전무했으니까요.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던 거죠."

전 대표가 다니며 문제를 제기한 곳들에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서울동물원은 그의 제안으로 동물쇼와 동물 만지기 체험전을 없앴고, 전주동물원은 전시동물 수를 늘리겠다는 의지를 꺾었다. 차가운 아스팔트가 깔려 있던 우리에 흙이 깔리고 나무가 심어졌다. 63씨월드의 바다사자 우리 앞엔 울타리가 쳐졌다.

"한국에서 동물원을 가장 많이 다녀본 사람이 아마 저일 거예요. 정말 많이 다녀보고, 계속 고민하고 공부했어요. 반려동물은 많이들 기르니 관심을 갖기 쉽잖아요. 전시동물은 다르죠. 사람들이 동물원에 가야만 접할 수 있는 동물들이다 보니 접근하기 어려운 독특한 분야예요. 그래서 전문가가 필요한 거고요."

전 대표가 전북대 수의예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하고 있는 모습. © News1

동물원 관계자들에게 그가 예뻐 보일 리 없는 건 당연한 이치지만 시설에 변화를 계획할 때면 그들은 어김없이 전 대표를 찾는다. 그만큼 동물원에 대해 빠삭한 사람이 한국엔 없기 때문이다.

"동물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똑똑해요. 코끼리만 봐도 동료가 죽으면 옆에 가서 슬퍼하고 애도해요. 쇼에 동원돼 학대를 받던 코끼리가 탈출해서 자신을 때렸던 사육사를 찾아가 죽이는 일까지 있어요."

전 대표는 지금도 이런 동물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 노력하고 있다. 전시동물만이 아닌 반려동물, 실험동물, 공연동물 등도 그에겐 관심을 갖고 지켜줘야 할 대상이다. 동물복지와 관련한 각종 이슈의 현장에서 그를 빠짐없이 볼 수 있는 이유다. 이달부턴 전북대 수의예과 겸임조교수로 학생들에게 '동물복지와 수의사'를 주제로 한 강의도 시작했다.

"인간의 유희를 위해 야생동물을 잡아 가두는 것, 물론 없어졌으면 좋겠죠. 그게 꿈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사실상 실현할 수 없잖아요. 사람들이 동물을 보는 걸 굉장히 좋아하기도 하고요. 동물원을 없앨 수 없다면 최소한의 복지를 보장해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는 누구나 동물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고, 보는 것, 먹는 것, 입는 것 모두가 동물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죠.”

최근엔 우후죽순 들어서는 파충류 전문 쇼핑몰에 관심을 쏟고 있다는 전 대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말에 "이 땅 어디에선가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해 착취당하는 동물이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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