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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진드기·AI 범인이 길고양이라니…참 어이없죠?"
"살인진드기·AI 범인이 길고양이라니…참 어이없죠?"
  • (서울=뉴스1) 이병욱 기자
  • 승인 2017.01.1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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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카라 정책팀장은 그동안 공장식 축산 철폐 캠페인, 동물복지형 축산 문화 캠페인 등을 전개하고 달걀 사육환경의 허위·과장 광고 실태를 소비자들에게 알리는 데 앞장서 왔다.© News1

(서울=뉴스1) 이병욱 기자 =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땅 속에 묻힌 닭과 오리 등이 전국적으로 3000만 마리를 넘어선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대표 임순례) 더불어숨센터. 센터는 저녁 늦도록 불을 밝히고 있었다. 역대 최악의 AI 사태와 정부의 '길고양이 포획 검사' 방침에 활동가들은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여느 때보다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들 가운데 이번 사태에 정부의 뒤늦은 대응과 잘못된 논리를 침착한 목소리로 날카롭게 집어내는 이가 있었다. 김현지(38) 카라 정책팀장.

김 팀장은 해마다 어김없이 반복되는 AI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공장식 축산'에 주목해야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해 살인진드기 바이러스가 문제가 됐을 때도 길고양이였는데, 이번 AI사태도 길고양이가 범인으로 몰리고 있어요. 참 어이없는 상황이죠? 2016년 11월부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럽, 일본, 대만까지 많은 국가에서 AI가 발생했어요. 그런데 3000만 마리라는 독보적인 규모의 살처분 수나 고양이로의 이종간 감염 등 최악의 방역 실패로 이어진 국가는 대한민국뿐이죠. 이번 AI사태는 한국의 공장식축산에 잠재한 위험이 결국 드러난 것이에요. 그런데 이제라도 적법한 살처분과 제대로 된 방역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정부가 갑자기 산으로 들로 고양이를 포획하러 나가겠다고 하네요. 문제의 원인을 바로 잡는 게 아니라 여론이 바라보는 하나의 결과에 매달려 방역이라는 본류를 놓친 채 엉뚱한 길로 가고 있는 겁니다. 고양이 포획하러 다닐 여력이 있다면 이런 엉터리 방역부터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김현지 팀장이 사무실 벽에 걸린 '고돌이' 사진을 보고 있다.© News1

김 팀장의 카라 합류는 이제 2년이 조금 넘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그가 독일로 유학의 길 접고 선택한 곳은 환경시민단체였다. 그곳에서 5년여간 시민사회운동의 기본을 배운 뒤 2015년 1월1일 카라로 자리를 옮겼다.

막시즘과 케인즈주의를 공부하던 대학원시절에도 마음 속은 항상 '비인간동물'에 대한 관심과 열정으로 가득했다.

"석사 논문을 준비하다 '과연 이 삶이 내게 맞는 것인가, 올바른 선택은 무엇일까'라고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 큰 깨달음을 얻게 했고, 결국 '현실참여'라는 해답을 얻게 되었죠. 현실참여쪽으로 방향을 틀고 일단 처음 발을 내딪은 곳이 환경운동연합이었는데 처음엔 절벽에서 떨어지는 느낌으로 참여했었죠. 그런데 막상 그곳에 가보니 전공과 정말 많이 연관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동안 학교에서 공부했던 것, 언론사 준비를 하며 공부했던 것, 하고 싶은 것 모두 그곳의 일들과 연결돼 있더라구요. 미국 NBC의 간판 앵커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톰 브로커가 '세상의 답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고 했듯 말이죠."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녹색당, 카라는 지난 2015년 10월 달걀 사육환경의 허위·과장 광고 실태를 소비자들에게 알렸다.. 사진 왼쪽이 김현지 팀장. © News1

카라로 둥지를 옮긴 첫 해 김 팀장은 공장식 축산 철폐 캠페인, 동물복지형 축산 문화 캠페인 등을 전개하고 달걀 사육환경의 허위·과장 광고 실태를 소비자들에게 알렸다.

이 일로 한 대기업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까지 당했지만, 그의 노력이 평사 사육(마리당 최소 0.11㎡ 면적)을 자유방목(마리당 1.1㎡ 이상)처럼 오인하게 하는 달걀 상품의 광고 관행을 멈추게 했다.

지난해에는 울릉도를 찾아가 수술 실습에 활용되던 유기견들을 직접 구조하기도 했다.

김 팀장의 명함에는 강아지 사진이 아로새겨져 있다. 13년을 함께 지내다 지난 2013년 떠나보낸 반려견 '깜식이'다.

어린 시절부터 반려견과 함께 생활하는 시간이 그에겐 많았다. 처음엔 그저 개가 좋다는 이유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반려견은 '동물들을 이해하는 특별한 방식이 있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준 선생님이었다. 그런 마음이 점차 커졌고, 동물보호단체 회원이 돼 후원을 시작했다.

김현지 팀장은 동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일하고 있다.© News1

"어린시절부터 집에서 반려견을 키웠던 것이 지금의 제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특히 마지막에 키웠던 아이가 많은 영향을 줬죠. 제 나이 10대 후반에 키우기 시작해서 20대 후반까지 10여년을 함께 했던 아이였어요. 그 아이와 사별하면서 참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됐어요."

카라 정책팀장을 맡고 있는 그의 활동은 여러 분야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동물 관련 법제도 개선, 시민들을 상대로 진행하는 각종 캠페인, 학대 현장을 비롯해 도움이 필요한 동물들을 찾아다니는 등 각종 현장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펼치고 있다.

동물보호 문화가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동물보호 활동가로서의 삶은 어떨까.

"교환학생으로 간 독일에서 그곳 사람들로부터 동물을 대하는 태도, 마음가짐, 문화 등을 생활 속에서 배웠어요.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에서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로 일하면서 독일과 비교해 느끼는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제 스스로 지향하는 바에 따라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지점이 같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 아닌가요."

삶은 일로 완성된다고 했던가 우리는 일을 통해 자신의 삶을 완성해간다. 그런 과정 속에서 보람을 느끼고 그 보람을 통해 더욱 성숙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런 궤적이 김 팀장의 삶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가차원의 동물보호 시스템이 없어요. 무너진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도록 요구하는 것이 시민단체들이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그리고 동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드는 그런 소명의식을 갖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일을 해나가고 싶습니다. 카라가 목표하는 최고의 지향점은 아마도 카라가 없더라도 동물보호가 지켜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일 거예요. 하루하루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그런 날이 꼭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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