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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 부실·방치…'법의 사각지대' 된 국내 수족관들
관리 부실·방치…'법의 사각지대' 된 국내 수족관들
  • (서울=뉴스1) 이병욱 기자
  • 승인 2017.03.29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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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정의당 의원과 동물자유연대, 한핑크돌핀스 회원들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고래류 사육시설 부실 관리실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은 '돌고래 쇼를 폐지하고, 바다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7.3.29/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서울=뉴스1) 이병욱 기자 = 국내 8개 고래류 사육시설에 대한 민관공동조사 결과 부실한 관리 실태가 드러났다. 또한 정부는 수 십년간 이를 방치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과 동물보호단체인 케어(대표 박소연), 동물자유연대(대표 조희경), 핫핑크돌핀스(공동대표 황현진·조약골) 등 민관공동조사단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이 같은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2월 울산 돌고래 폐사 사건을 계기로 2월 22일부터 3월 3일까지 열흘간 8개 시설에 대한 시설관리(수온, 수질, 조명, 소음 등)와 돌고래 건강관리(사료급식방법, 건강관리차트, 수의사 등) 실태를 점검했다.

특히 서울대공원의 경우 1984년 돌고래 쇼를 시작한 이래 33년 만에 처음 조사가 이뤄졌다.

하지만 조사과정에서 업체측의 수족관 시설 출입 제한, 자료 미제출,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법적기준 미달의 개별 수조…상주 수의사 없는 곳도

우선 돌고래들이 생활하는 공간은 매우 협소했고, 환경풍부화 시설은 전무했다. 또 열악한 의료 환경 등도 문제였다.

공동조사단에 따르면 고래류 사육시설 8곳 모두 총면적은 법적기준을 만족했지만, 여러 개로 쪼개진 개별 수조의 면적은 법적기준(수면적 84m², 깊이 3.5m 이상)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울산 장생포 고래박물관의 경우 10번 돌고래를 격리 중인 수조는 38m²로 법적기준의 절반에 불과했고, 보조수조는 칸칸으로 나뉘어 실제 공간은 훨씬 비좁은 상태였다.

또 흰고래(벨루가)를 사육하고 있는 거제씨월드도 마찬가지로 수조가 칸칸으로 나뉘어 있어, 돌고래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개별 수조면적은 법적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자연에서 하루 100km 이상을 이동하는 돌고래들에게 국내 관리기준인 수조 길이 20~30m는 매우 좁은 공간일 수 밖에 없다.

열악한 사육환경에 노출된 돌고래의 극심한 스트레스에 대한 징후도 관찰됐다. 이미 큰돌고래 6마리가 폐사했던 거제씨월드에서는 돌고래가 한 자리에서 반복적으로 뛰어오르거나, 계속에서 벽에 부딪히는 정형행동을 보였다.

돌고래의 건강을 관리하는 수의사가 상주하는 업체는 8곳 중 5곳이고, 나머지 3곳(1곳은 촉탁수의사)은 협진형태로 수의사가 고래류의 건강을 관리했다.

수의사가 상주하는 업체도 법적으로 구비하도록 한 서류를 제출하지 않아 적절한 수의적 의료행위가 이뤄지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또한 대부분 수족관 전체를 1명의 수의사가 담당하고 있어 질병 또는 상해가 발생하면 적절한 치료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울산 장생포 고래박물관 내 고래생태체험관에서 조련사들이 돌고래 쇼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자료사진)© News1 이윤기 기자

◇관리기준은 제각각…기본 매뉴얼도 없어

거제씨월드는 물 냉각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아 수온 14도 내외에서 사는 흰고래(벨루가)에게 여름철 20도 이상의 물을 공급하고 있는 것을 확인됐다.

국내에는 흰고래(벨루가)에 대한 관리기준이 없어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큰돌고래 관리기준을 흰고래(벨루가)에게 적용하고 있었다.

또한 업체들은 염도, 수온, 잔류염소농도, 대장균 등을 제각각 관리하고 있었다. 특히 대장균의 경우 울산 장생포 고래박물관은 년간 4회를, 제주 한화아쿠아플라넷은 격월로 조사를 진행했다.

해수를 사용하는 제주 마린파크와 제주 퍼시픽랜드, 거제씨월드는 대장균을 측정하지 않았다.

적조발생, 해수염도변화, 지하수 오염 등에 대한 위기대응 매뉴얼을 갖추지 않은 곳은 여수 한화아쿠아플라넷과 제주 한화아쿠아플라넷, 울산 장생포고래박물관 등 3곳이었으며,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은 서류자체를 제출하지 않았다. 제주 마린파크는 매뉴얼이 있다고 표시했으나 근거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최근 일본에서 수입한 큰돌고래 1마리 폐사로 논란이 된 울산 장생포고래박물관은 사육사 관리 매뉴얼 조차 없었다.

◇법적 구비서류와 현장조사결과 불일치

현재 정부의 고래류에 대한 공식통계는 없다. 1984년 서울대공원이 돌고래 쇼를 시작한 이래 지난 33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특히 야생생물보호법에 규정하고 있는 동물건강관리(수의적 기록, 건강검진 자료 등), 용도변경현황 등에 대한 자료도 없다. 정부 스스로 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번 조사과정에서 수족관 업체의 설명과 정부의 자료가 불일치한 경우도 확인됐다.

고래류 수입용도에 대해 여수 한화아쿠아플라넷 관계자는 흰고래(벨루가)를 '연구용'으로 들여와 해수부 산하 고래연구센터와 함께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을 했으나, 환경부의 수입허가신청서에는 '전시용'으로 표기돼 있다.

롯데월드 아쿠아리움도 전시용에서 상업용으로 용도를 변경했다고 했지만, 환경부는 용도변경서류가 없다고 밝혔다.

국제멸종위기종 고래류의 폐사 현황은 더 심각하다.

환경부가 업체들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그동안 폐사한 개체수는 22마리(22건)이다. 하지만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최소 70여마리 이상 폐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차이는 업체들이 '고래류 인공증식 미신고', '업체들간의 내부 거래 미신고' 등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공동조사단은 밝혔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과 환경단체 회원들이 지난 2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울산 남구청의 생태학살정책인 돌고래 수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자료사진) © News1 허경 기자

◇업체의 민관공동조사 방해…정부는 조사의지 없어

환경부와 해수부는 야생생물보호법에 의거해 해양 멸종위기종 사육시설을 관리하고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수족관 관리를 사실상 방치했다.

여기에 일부 수족관 업체는 민관공동조사를 거부하거나 방해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거제 씨월드와 제주 마린파크는 국회 보좌진과 동물보호단체의 현장출입을 막고, 보안각서에 서명을 요구하는 등 조사진행을 지연시키기도 했다.

또한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울산 장생포고래박물관, 제주 마린파크, 제주·여수 한화아쿠아플라넷 등 5곳은 여과시설, 사료시설 등을 점검하는 조사단 인원수를 제한하기도 했다.

이밖에 법적으로 구비하고 공개해야 할 자료를 1개월 가까이 제출하지 않고 있다.

특히 여수 한화아쿠아플라넷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수조물이 혼탁했으며, 오후 3시경 먹이 점검표를 조사단에게 제출하면서 오후 5시에 먹이를 주었다고 표기한 부실자료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정부의 부실한 사전준비와 현장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정부가 수질조사 도구를 준비하지 않아 8곳 중 2곳에서만 실제 조사가 진행됐고, 나머지는 육안으로만 확인했다. 그나마 조사가 진행된 2곳도 수질조사결과는 제출하지 않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동물보호단체가 민관공동조사를 위한 점검표를 사전에 작성해 정부에 제공했으나 업체에는 전달되지 않는 등 정부의 조사 의지를 찾기보기 어려웠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센터), 해양생물자원관, 해양환경관리공단, 국립생물자원관 전문가들에게 조사평가서를 작성하도록 하지도 않은 점에서도 정부의 미온적 태도는 여실히 드러났다.

◇바뀐 동물원 및 수족관법…제도 개선 불가능

해수부와 환경부는 동물원 및 수족관법을 통해서 수족관 전체의 관리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여러울 것으로 보인다.

5월부터 시행예정인 동물원 및 수족관법에는 지방정부의 시·도지사만이 동물원과 수족관을 관리하도록 돼 있다. 이는 중앙정부 특히 해수부가 동물원과 수족관을 관리할 법적권한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의 경우 야생생물보호법에 따라 환경부가 일부 관리할 수 있을 뿐이다.

이정미 의원은 "고래류 수족관 관리는 업체에 따라 제각각 진행되고, 정부는 일년에 한 번 점검표 없이 형식적인 정기점검을 수십년간 해왔던 사실이 드러났다"면서 "고래류 한 종에 대한 수족관의 관리실태가 이러한데 수많은 해양동식물의 관리가 어떠한지는 미루어 짐작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한 "환경부와 해수부는 이번 민관공동조사의 한계를 바탕으로 수족관 전체에 대한 종합점검을 실시해야 한다"면서 "울산 남구청의 큰돌고래 수입과 죽음을 교훈삼아 우리나라도 큰돌고래 등 해양포유류 시설의 기준을 강화하고, 헝가리, 인도, 칠레, 코스타리카, 미국처럼 점차 돌고래 쇼 등을 전면 폐지하고 고래류의 수족관을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정미 의원과 동물보호단체는 폐쇄할 시설의 돌고래들을 '바다쉼터'로 옮겨 더 나은 환경에 살도록 하는 '돌고래 바다쉼터 추진위원회(가칭)'를 구성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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