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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와 반려동물 사이, 봉준호 감독 신작 '옥자'
고기와 반려동물 사이, 봉준호 감독 신작 '옥자'
  • (서울=뉴스1) 이주영 기자
  • 승인 2017.06.13 1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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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자에게 옥자는 소중한 반려동물이지만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옥자는 큰 돼지고기다. (사진 퍼스트룩 제공) © News1

(서울=뉴스1) 이주영 기자 = 나의 반려동물이 누군가에겐 그저 잘 팔리는 고기로 여겨진다면 어떨까. 12일 서울 중구 대한극장에서 영화 '옥자'(봉준호 감독)가 공개됐다.

언론배급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영화는 언론사 취재진 및 영화계 관계자 등 약 1000여명이 몰려 화제성을 입증해보였다. 그 뜨거운 관심에는 동물권이 한 주제로 놓여있었다.

봉준호 감독이 비록 가상의 동물이지만 여러 동물 중에서도 옥자의 모습을 슈퍼돼지로 설정한 것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돼지는 '가장 보편적인 축산동물'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칼튼 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봉준호 감독은 "요즘 반려인이란 단어를 쓰는데 저도 반려견이 있다"며 "그렇다고 강아지, 고양이를 키운다고 다 채식주의자는 아니지 않나 점심엔 스테이크를 먹는다든지. 자연스러운 대부분의 모습인데 그게 나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지금의 자본주의적인 대량생산 시스템에 동물이 대량 생산되는 상품으로 포섭이 되지 않았나. 그래서 그 거대 공장형 도살장이 나오고 평생 1m²도 안 되는 쇠틀 속에서 제품으로 자라는 돼지들이 있고"고 말했다.

그는 "자본주의 이전 시대에 인간이 고기를 먹는 방식은 큰 문제가 없었다"며 "지금은 애초부터 먹히기 위해 배치되어 있고 키워지는 동물들이 공장시스템에서 자라다가 분해되고 이것은 인간의 원초적인 삶을 위한 것이 아닌 돈을 벌기 위한 것이다"라며 비판의 날을 세운 바 있다.

옥자는 미국의 대기업 '미란도'의 식량난 해결을 위한 슈퍼돼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6개국 26명의 축산인에게 보내진 돼지 중 하나다. 소비자들의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한 불안을 불식시키고자 친환경적으로 자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옥자는 강원도 산골에 사는 할아버지(변희봉)과 미자(안서현)에게 보내졌다.

회수의 기간이 돌아오자 할아버지는 미자 몰래 옥자를 미란도에 넘긴다. 미국 '슈퍼대지 경연대회'에 선보이기 위해 옥자는 미국으로 끌려간다. 하지만 결국 옥자의 운명은 '맛이 좋은' 소시지가 될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옥자를 되찾기 위한 미자의 모험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미자는 '동물해방전선'(ALF·Animal Liberation Front)을 만난다. 이들은 영화 뿐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단체 이름이기도 하다. 이 단체는 동물실험 및 상품화에 반대하는 국제단체로 1963년 영국에서 창설된 수렵방해협회(HSA·Hunt Saboteurs Association)에서 유래했다. 동물구조를 위해 비합법적 수단도 마다하지 않아 영국과 미국에서는 테러단체로 규정돼 있다.

이들의 큰 그림 속에 이용된 옥자와 미자는 예기치 않은 일들을 겪게 된다. 여기에 동물보호단체가 갖는 딜레마가 드러난다. 동물보호 진보의 한 걸음 내딛는 일과 옥자와 미자라는 개인의 희생은 피하기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대기업 미란도에게 옥자는 자신들의 거대 공장에서 분쇄되어 제품으로 만들어지는 하나의 고깃덩어리일 뿐이다. 그것도 가성비가 좋은. 생명체를 돈의 가치로 환산하는 순간 더 이상의 불쌍함이라는 인간의 감정은 개입되기 어렵다.

옥자를 미란도에게 뺏기고 속상해하는 미자에게 할아버지는 "옥자는 삼겹살, 등심, 이게 이놈 타고난 팔자여"라고 하는 말은 어쩌면 우리가 돼지 같은 축산동물에게 갖고 있는 보편적인 시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속에 억지로 짝짓기를 시키고 번식해 상품으로 팔리는 것을 당연히 봐야할까.

이에 대해 박소연 동물권단체 케어 대표는 “우리 인간은 동물을 다스릴 수 있는 착취해도 좋을 대상으로만 바라봐 왔다”며 “인간 외의 타자에 대해서 이제는 단순히 도구가 아닌 생명을 가진 대상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며 그것이 타자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을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옥자는 누군가에겐 밥상 위에 차려지는 '고기'일 테지만 적어도 미자에게는 가족 같은 반려동물이다. 낭떠러지에서 추락할 뻔한 미자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날리는 옥자. 미자가 주는 사과와 감을 제일 좋아하는 옥자. 그 과정에서 미자와 옥자는 교감을 나눈다.

반려의 사전적 의미는 '짝이 되는 동무'다. 옥자의 눈 속에 투영되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순간 미자는 포기할 수가 없다. 그에게 옥자는 둘 도 없는 반려동물이기 때문이다.

미자는 자신을 바라보는 옥자의 눈을 기억하기에 이 여정을 포기할 수가 없다. (사진 퍼스트룩 제공)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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