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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령이 긴 지팡이 들고 나타난 이유가…북한산 들개
산신령이 긴 지팡이 들고 나타난 이유가…북한산 들개
  • (서울=뉴스1) 윤석민 대기자
  • 승인 2017.07.05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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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다큐 '북한산 들개'© News1

(서울=뉴스1) 윤석민 대기자 = 반려동물 인구가 천만을 돌파한 반면 유기 동물 수 또한 그에 비례해 늘고 있다. 사는 아파트가 큰 단지여서인지 눈에 띄는 놈들도 부쩍 많아졌다. 한 귀퉁이서 눈치 보며 떨고 있는 놈들을 보자면 참 마음이 편치 않다. 귀엽다 키울 땐 언제고 한순간 짜증나 버린 인간의 무책임함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먹이 주는 것을 두고 벌어지는 주민 간 대립은 층간소음 못지않은 사회적 갈등이 되고 있다. 심지어 인명피해 폭력까지 번지니 유기동물 대책이 시급해 보인다.

일전 EBS서 방영된 다큐 ‘북한산 들개’는 그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재개발 등으로 버림받은 개들이 일대서 무리지어 저 나름대로 생존해가는 장면이다. 아직 주민에 위해를 가하는 수준은 아니라지만 점차 야성의 습성을 더해가는 그들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큐를 보다가 예전에 들은 말이 떠올랐다. 취재차 들른 바그다드서 당시 공관장이 전해준 얘기다. 우리 대사관을 포함해 대다수 외국 공관들은 풍광 좋은 티그리스 강변을 따라 자리했는데 조깅으로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 일상화돼 있었다. 근데 꼭 지참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고 했다. 긴 몽둥이나 지팡이다.

얘기는 이랬다. 새벽 조깅을 하다보면 개 한두 마리가 앞을 막듯이 나타나기 일쑤다. 그래서 뒤돌아서면 두세 마리가 어느새 에워싸듯 포위해 있다는 말이었다. 당시는 8년간의 이라크-이란 전쟁이 끝난 직후였다. 서로 쏘아댄 미사일에 집이나 주인을 잃은 유기견이 늘었고 굶주린 놈들이 시신까지 뜯으며 점차 포악한 야성의 들개 무리가 됐다는 설명이다. 안전을 위해 지팡이 소지는 필수였던 것이다.

옛적 재밌게 보았던 영화에서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80년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부시맨(원제 the gods must be crazy)’은 하늘에서 떨어진 콜라병 하나로 인해 순박했던 원시 공동체가 파괴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린 문명비판 역작이다. 하루는 부시맨 꼬마가 들판에 나갔다 하이에나를 만난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꼬마는 기지를 발휘한다. 들고 있던 콜라병을 머리위로 높이 세우고 걷는 것이다. 하이에나가 어리둥절 하는 사이 꼬마는 위기에서 벗어난다. 자신들보다 몸집이 큰 상대에게는 섣불리 덤비지 않는 동물의 습성을 알고 있는 부시맨의 지혜로 보인다. 개나 고양이 등이 위협을 느낄 때 털을 곤두세워 몸집을 부풀리는 이치와 맞닿아 있다.

영화 십계중 홍해를 가르는 모세© News1

그러고 보니 긴 지팡이를 든 모습으로 각인된 도사나 산신령의 표현도 다 일리가 있어 보인다. 노인네가 가득이나 힘들 텐데 왜 자신보다 크고 무거운 지팡이를 들고 다닐까하는 의문도 품었었다. 보행 보조외 안전 목적도 있는 듯싶다. 그땐 지금보다 호랑이 등 금수가 더욱 풍부했을 터다. 영화 ‘십계’ 속 모세나 ‘반지의 제왕’ 간달프도 과하다 싶은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것을 보아 동서고금 같은 목적 아니었을까. 홍해를 가르거나 마법을 부르는데 굳이 그렇게 큰 지팡이가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

반지의 제왕 마법사 간달프© News1

혹독한 자연 속에 내팽겨진 유기동물들도 적자생존의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보인다. 다큐를 보면 반려견중 수가 많은 말티즈, 시추 등과 같은 소형견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백구 황구 등 튼튼한 종자가 살아남아 교배를 통해 더욱 강한 종으로 토착화하는 과정으로 파악된다. 호주 생태계 최고 포식층에 자리하고 있는 들개 ‘딩고’도 사람과 함께 이주한 유기견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생화하는 유기동물 문제는 직면한 위험의 하나다. 한라산에서는 이미 들개 떼가 백록담의 상징인 사슴, 노루 등을 위협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등산로 어구서 새벽 산책길 나서는 아줌마, 아저씨나 등산객을 상대로 지팡이 렌트 사업은 어떨지 구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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