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03:58 (일)
[리셋 반려동물⑤] "돈으로 키운다"…진료비 무서워 유기까지 생각
[리셋 반려동물⑤] "돈으로 키운다"…진료비 무서워 유기까지 생각
  • (서울=뉴스1) 권혜정 기자
  • 승인 2017.10.25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료사진) © News1 유승관 기자

(서울=뉴스1) 권혜정 기자 = 반려동물 1000만 시대. 한 집 건너 한 집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시대가 왔지만 그에 따른 제도는 여전히 '제로'에 머무르고 있다. 반려동물로 인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면서, 인간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도록 반려동물 자체를 관리하는 제도는 물론 마음 놓고 반려동물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부르는 게 값' 동물병원마다 진료비 천차만별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이 가장 고민하는 이유 중 하나는 '부르는 게 값'이 되어버린 동물병원 진료비다. 진료비가 무서워 반려동물을 유기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서울 동작구에 거주하는 A씨(29)는 최근 한 달 동안 고양이의 진료비로만 100만원 이상을 지출했다. 올해로 7살이 된 페르시안 고양이 '계피'를 키우고 있는 A씨는 지난달 계피가 한쪽 눈을 깜빡 거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평소 자주 가던 동물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몇가지의 검사를 통해 알게 된 질병은 허피스 등으로, 잠복해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지면 발생하는 질병 중 하나였다. 사람으로 치면 감기와 같다.

A씨는 "병원에서는 허피스가 재발하기 쉽다며 면역력을 높이는 치료를 권했다"며 "다른 병원에서는 1만원 상당의 영양제를 한달 동안 먹이면 된다고 했지만 이 병원에서는 하루에 3만~5만원에 달하는 면역증강제와 같은 약을 약 한달 가까이 먹여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A씨는 두 병원 사이에서 치료를 고민했지만 그래도 오랜 기간 계피를 봐 온 병원을 택했다며 "나에게는 가족 같은 존재로, 가장 좋은 치료를 해주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결국 병원비와 별도로 면역과 관련한 치료비로만 100만원 정도를 지출했다"고 전했다.

이달 말 또 허피스를 계기로 가게 된 병원에서 스케일링을 권유받아 예약을 해 놓은 A씨는 "스케일링 비용만 20만원이 넘고, 특히나 페르시안은 신장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각종 검사를 권유했다"며 "이것저것 검사를 추가하니 40만원이 넘는 상황"이라며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같은 상황은 A씨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고양이와 개 등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늘도 지갑으로 키웠다'라는 말이 우스갯소리처럼 나올 정도로 동물병원 진료비가 부르는 게 값인 지경이기 때문이다.

A씨는 "간단한 검진을 위해 동물병원을 찾아도 기본이 '20만원'을 넘어가는 상황이라며 "대체 어떠한 기준으로 진료비가 책정되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4살 된 고양이를 키우다 무지개다리로 건너보냈다는 이모씨(36)는 "노령묘이다보니 병원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적외선치료 등 사람도 안 받는 치료를 권하더라"며 "처음에는 고양이에게 좋을 것 같아 응했으나 몇차례 치료를 받고 난 후에는 효과를 잘 모르겠고, 가격도 비싸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마치 병원에서는 동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처럼 취급해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경험담을 털어놨다.

지금도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이씨는 "동물병원을 갈 때면 '15만원은 기본으로 나오겠지'라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먹게 된다"며 "특별한 증상 없이 병원을 찾아도 몇십만원은 우습게 나온다"고 토로했다.

강아지를 키우는 이들의 불만도 크다. 2㎏ 미만의 소형견 요크셔테리어의 견주인 B씨는 한 반려견 카페에서 최근 강아지가 먹으면 안되는 포도를 먹어 급히 병원을 찾은 경험을 밝히며 "포도를 토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해서 구토유발 시술부터 받고, 반드시 며칠 동안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해서 각종 처치를 받으니 이틀 동안 병원비만 48만원 이상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동물병원 진료비가 비싸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상상 그 이상이다"라며 "동물 병원비가 이렇게 비싸니, 앞으로는 운동과 음식에 더 신경 써서 병원에 갈 일 없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인 것 같다"고 속상해 했다.

12살의 소형 노견을 키우고 있는 또 다른 견주도 "십자인대 파열과 코 세균감염 등으로 2주마다 병원에 한번씩 가고 있는데, 경제적 여유가 없어 가족 생활비로 병원비를 충당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병원마다 진료비가 천차만별인 점을 지적하며 "한 병원에서는 보통 몇천원에 불과한 넥카라에 3만원을 요구하길래 큰소리를 내기도 했다"고 밝혔다.

뇌수막염에 걸린 강아지 치료비로 한 달 동안 600만원이 들었다는 견주도 있다. 그는 "적금까지 깨서 병원비를 내고 있는데, 지출 정도가 너무 크니 내가 죽을 것 같다"며 "매시간 매초가 돈이다"고 하소연 했다.

이밖에도 많은 견주들은 "동물병원비 때문에 여행도 못 가고, 옷도 못 사입고 있다"며 "안약과 피부연고 처방 받는데 7만원이 들었다. 영양제도 사람의 10배 가량"이라는 등 웃지 못할 경험담을 털어 놓고 있다. 한 견주는 "사람도 기본권이 보장되듯 동물도 아플 때 걱정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 다른 견주도 "병원비 때문에 병원 가는 것 조차 무섭다"며 "동물병원비도 투명하게 공개됐으면 좋겠다. 병원마다 같은 증상이어도 병원비가 다르니 마치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든다"고 말했다.

이처럼 동물병원 진료비가 말 그대로 '비싸다'는 점과 함께 병원마다 제각각이라는 점 역시 문제다. 직접 개와 고양이(암컷 기준) 중성화 수술비용을 서울시내 10곳 동물병원에 문의해본 결과, 가격은 10만원대에서 90만원대까지 천차만별이었다.

강남의 한 동물병원은 복강경을 이용해 최소 절개를 한다며 중성화 수술비용으로 90만원을 불렀고, 영등포구의 한 동물병원은 할인을 하고 있다며 19만원을 이야기했다. 이밖에도 다른 동물병원의 중성화 수술비용은 30만원대(2곳) 40만원대(4곳)가 가장 많았다.

실제 지난해 5월 소비자교육중앙회가 전국 동물병원 25곳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역시 초진료 최고가는 2만원, 최저가는 3000원으로 6.7배의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와 고양이.(사진 이미지투데이)© News1


◇진료비 기준 만들어야…"표준수가제 도입 필요"

전문가들은 동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사회를 마련하기 위해 동물병원 진료비의 표준화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정부는 지난 1999년 자율경쟁으로 동물병원 진료비를 낮추고 진료의 질을 올리겠다며 동물의료수가제를 폐지한 바 있다. 그러나 자율경쟁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진료비가 천정부지로 높아지며 이같은 불만이 야기되고 있다. 현재 정부는 반려동물 의료수가제 도입에 대해 올 연말까지 결론을 내리기 위해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정겹성 우리동생(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은 "동물의료수가제 폐지에 따라 결과적으로는 동물병원과 보호자들의 불신만 커진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동물병원 진료비는 각자(병원마다) 병원 상황과 임대료, 입지조건, 의료 서비스에 따라 알아서 정하는 것으로, 제각각 인 것은 맞다"고 말했다.

이어 "반려동물을 전국민의 20% 이상이 키우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이같은 문제를 방관할 게 아니라 정책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전진경 카라 이사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개인병원, 상급병원, 종합병원에서 어느정도 가격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기본진료비와 같은 부분에서는 어느정도 대략의 진료비 범위라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진료비가 과도하게 부각되는 면도 있지만 정말 문제는 진료비 편차가 크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합리적인 선에서 최저가와 상한가 등에 대한 범위 정도만 정해지면 신뢰가 생길 수 있다"며 "병원비에 대한 기준 등이 투명하게 공개되면 반려동물 주인들이 각자의 형편에 맞게 선택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정보가 합리적으로 제시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