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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동수의 동물보호이야기] '가축살처분' 모두에게 고통이다
[버동수의 동물보호이야기] '가축살처분' 모두에게 고통이다
  • (서울=뉴스1) 한창희 수의사
  • 승인 2018.01.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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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버려진동물을위한수의사회(버동수) 소속 명보영 수의사를 비롯한 회원들이 '버동수와 함께하는 동물보호 이야기' 코너를 연재한다. 지난 2013년 200여명의 수의사들이 설립한 '버동수'는 매달 전국 유기동물보호소 등을 찾아다니며 중성화 수술, 예방접종, 외부기생충 구제 등 정기적으로 의료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이 코너에서는 유기동물보호소를 비롯한 각종 현장에서 수의사로서 직접 경험한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동물을 물건이 아닌 생명으로 대하는 따뜻한 시선을 만날 수 있다.

조류인플루엔자(AI) H5형 항원이 검출된 전북 고창군 흥덕면 오리농가에서 방역관계자들이 살처분 준비를 하고 있다. © News1 문요한 기자


(서울=뉴스1) 한창희 수의사 = 필자는 수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 주 업무는 가축의 전염병 발생을 막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소, 돼지, 닭 등 산업동물은 인간의 먹거리를 위해 길러진다. 이 동물들이 병에 걸리지 않고 식탁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수의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내 경우는 질병이 의심되는 가축들의 혈액을 채취해 실험실에서 검사를 진행하거나 산골 농장에 직접 찾아가 가축의 사육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부적합한 부분을 시정하거나 현장의 고충을 듣는다. 종종 최악의 상황에는 가축의 죽음에 직접 관여하기도 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동물들을 좋아했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아직 채식을 실천하고 있지는 않지만, 내 앞에 놓인 고기에 감사함을 느낄 줄 아는 양심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수의사가 돼 뜻하지 않게 가축 방역 업무를 맡게 된 지금, '내가 진정 모든 동물을 아끼고 사랑했는가'에 대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다. 애써 피해왔던 고기의 어두운 이면을 직접 마주하게 되면서 내가 동물들에게 가져야 할 감정은 감사함이 아니라 죄책감임을 알게 됐다. 현실은 언론 매체에서 다루는 것보다 훨씬 잔혹하고 비상식적이었다.

대다수 농장에서 사육되는 가축들은 어둡고 축축한 사육장 안에서 평생을 보낸다.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힘든 공간에서 먹고 자고 용변을 본다. 가축은 거칠게 다뤄야 말을 듣는다는 통념 때문에 동물들은 딱딱한 장화를 신은 사람들의 발길질에 채이거나 쇠막대기에 찔려가며 비명을 지른다. 상품가치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시멘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새끼돼지, 매섭게 추운 겨울날 야산에 버려져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병든 송아지를 보며 우리가 과연 같은 땅을 밟고 살아가는 동물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진다. 농장은 동물보호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동물학대의 온상일 수도 있다.

사람에게 전파력 강한 질병이 발생하면 환자들은 격리돼 집중치료를 받는다. 가축은 어떨까? 가축에게 치명적인 전염병이 발생하면 가장 효과적인 예방법 중 하나는 살처분이다. 살처분이란 문자 그대로 '죽여서 처리하는' 방식이다. 발생지역 인근의 동물들이 감염되기 전에 미리 죽여 질병 전파를 차단하는 개념이다. 동물들의 죽음은 '발빠른 방역조치'라는 이름으로 뉴스의 한 대목을 장식해 국민들을 안심시킨다. 동물들이 어디서 어떻게 죽어갔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동물보호단체에 의해 이따금 언론에서 주목을 받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차츰 무뎌지고 잊혀진다.

매뉴얼 상에는 동물들이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윤리적인 방법을 통한 살처분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 투입되면 매뉴얼이 단순히 보기좋은 포장지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질병이 확산돼 살처분 대상 동물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면 그곳은 도륙의 현장이 된다. 인력과 장비,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잔혹한 행위들이 동물들에게 행해지는 것이다. 일례로 살아있는 상태의 동물들을 구덩이에 몰아넣고 압사시킨다던가, 쇠파이프를 들고 동물들의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내려치는 경우도 있다.

수의사 신분인 나와 동료들은 군 복무를 대체한다는 이유만으로 살육의 현장에 투입된다. 생명을 살리는 수의사를 꿈꿔 온 젊은 청춘들에게 국가의 이름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것이다. 그리고 살처분에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된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실시한 '가축매몰(살처분) 참여자 트라우마 현황 실태조사'의 분석결과, 참여자의 70%가 심리적 외상으로 트라우마를 겪는다고 한다.

인간은 동물에게 죽음을 부여할 권리가 없다. 다만 부득이하게 행해져야만 한다면 최소한의 인도적인 절차를 거쳐야함이 마땅하다. 경제성과 효율성 때문에 동물들의 존엄성이 외면받고 있다. 동물들의 권리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는 지금, 그 시선이 개·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들에게만 국한돼 있는 것은 아닌지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창희 수의사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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