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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말복날 개농장서 새삶 찾은 80여마리 개…美서 날아온 도움 손길
[르포]말복날 개농장서 새삶 찾은 80여마리 개…美서 날아온 도움 손길
  • (여주=뉴스1) 문동주 인턴기자
  • 승인 2019.08.12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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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HSI서 6명 활동가 지원, 예방접종 등 해외 입양 준비 도와
개농장의 개들에게 예방접종을 진행하는 활동가들 © 뉴스1 문동주 인턴기자

(여주=뉴스1) 문동주 인턴기자 = 새벽 6시 종로에서 봉고차 2대가 출발했다. 차 안에서는 모두 같은 티셔츠를 입은 외국인들이 영어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야기의 주제는 바로 한국 육견농장의 개.

말복답게 뜨거운 날씨를 자랑했던 지난 11일. 국제 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umane Society International·이하 HSI) 해외활동가들이 경기도 여주의 한 개농장을 찾았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도착한 개농장은 사람의 인적이 드문 시골길 끝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엔 80여 마리의 개들이 철장 안에서 사람들을 향해 짖고 있었다.

HSI의 미국 본사 활동가 6명, 한국 지부 활동가 2명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해외 입양을 앞둔 농장의 개들에게 예방접종을 해주기 위해서다. HSI는 한국 식용견 농장의 개들을 해외로 입양 보내는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해외로 입양 보내기 위한 필수적인 첫 절차가 바로 출국 전 예방접종을 시키는 것이다. HSI에서는 접종을 마친 이곳의 모든 개를 순차적으로 출국 시켜 해외에서 새로운 보호자를 찾아줄 예정이다.

HSI가 특별히 이곳의 식용견들을 구조하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농장주의 구조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약 10년간 농장을 운영했다는 주인은 개농장 폐업을 결심하는 과정에서 HSI를 알게 됐다며 "개들을 다 정리하려는 마음을 먹었는데, 아는 형님이 죽이지 않고 좋은 단체로 보내는 방법이 있다고 해서 도움을 요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농장주에게 단체를 소개해준 지인 역시 다른 식용견 농장주에게 HSI를 소개받아 폐업 절차를 밟은 식용견 농장주였다.

개농장 폐업을 결심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돈도 안 되고 나라에서도 반대가 너무 심하니까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며 "실제로 아는 개농장주들은 벌써 다 접었다"고 덧붙였다. 폐업 과정에서 도살 대신 단체의 구조를 선택하게 된 이유를 묻자 "살아있는 동안은 내 새끼였으니 도살 안 당하고 좋은 데 가서 호강한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이날 HSI는 농장의 개들에 4가지 접종(5종 종합 백신, 코로나 장염, 인플루엔자, 광견병) 주사를 맞혔다. 주사를 맞히고 상태를 확인하는 데만 한 마리당 대략 3~4분, 80마리 개를 접종하는 데만 총 5시간 남짓의 시간이 걸렸다. 접종을 무서워하는 개들을 어르고 달래느라 처음 예상한 것과 달리 시간이 오래 걸렸다. 햇볕이 살을 찌르는 말복 더위에도 접종 작업은 쉴 틈 없이 계속됐다.

그렇다면 미국 본사의 해외활동가들이 직접 한국까지 찾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김나라 HSI 한국지부 매니저는 본사의 활동가들이 구조 인력으로서의 전문적인 실력을 갖췄다는 점도 있지만, 농장의 개들이 한국에서 쉽게 입양되지 않는 점도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김 매니저는 "해외입양 시 입양을 담당하는 해외 지부에 충분한 가이드라인을 설명해주기 위해서는 해외 활동가들이 직접 한국에 와 개들의 특성을 파악해가야 한다"며 "한국에서 입양된다면 이런 과정을 조금 덜 수 있겠지만 개농장의 개들이 한국에서 입양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미 한국에 많은 보호소가 유기견으로 꽉 차 있고, 작고 예뻐야 입양률이 높은 한국에서 개농장의 개들은 입양 기회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개농장주들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생업으로 해온 만큼 무작정 비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다만 그들의 생각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김 매니저는 "사실 폐업을 하는 개농장 중에 도움이 필요한 곳들이 많다. 정부에서 이런 점들을 잘 발견해서 해결책을 마련해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2018년 동물자유연대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진행한 개 식용 인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1006명 중 59.6%는 개고기 섭취에 대해 '부정적'으로 느끼고, '긍정적'으로 느낀다고 답변한 사람은 15.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농장의 개들 © 뉴스1 문동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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