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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앞둔 노량진 옛 수산시장에 "고양이 갇혀 있어요"
철거 앞둔 노량진 옛 수산시장에 "고양이 갇혀 있어요"
  • (서울=뉴스1) 김연수 기자
  • 승인 2019.10.02 0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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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위해 울타리 설치…동물단체·캣맘들 "생태 통로 확보해야"
서울시 "공유지 아니라 수협 측 결정 따라야"
구시장 상인B씨가 새끼 때부터 밥을 주며 키웠다는 고양이 2마리. 중성화도 모두 된 상태다. © 뉴스1


(서울=뉴스1) 김연수 기자 = 철거를 앞둔 서울 노량진 옛 수산시장에 수십마리의 길고양이들이 갇혀 있어 생태 통로를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옛 수산시장은 철거를 둘러싸고 상인과 수협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수협 측에서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울타리를 설치했고 구시장 안에 남겨진 고양이들의 이동 통로까지 막혔다는 주장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6일 수협 측은 오후 11시부터 새벽까지 구시장 상가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시장 둘레에 울타리를 설치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상인들과 수협 간의 충돌이 발생했고, 일부 상인들은 "안에 찾지 못한 짐이 있다"며 항의했다. 문제는 물건뿐만 아니라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길고양들도 갇혀 있다는 것이다.

지난 29일 오전 9시 노량진 옛 수산시장 앞에는 '동네고양이' 서울연대 회원 1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손에는 고양이 사료와 간식 등이 가득 담긴 가방이 들려 있었다. 이들은 지난 5월부터 동물자유연대와 함께 노량진수산시장의 고양이 중성화수술(TNR)을 진행해 왔다.

이날은 구시장 안에 갇힌 고양이들에게 급한 대로 사료를 던져줄 계획이었다. 사람들이 모이자 일부 상인들은 "어디에서 왔냐"며 묻거나, 멀리 선 경찰과 용역 직원들이 사진을 찍으며 감시하듯 긴장감이 맴돌았다.

노량진 옛 수산시장 근처는 경찰, 상인, 수협 측 직원들이 곳곳에 서있어 긴장감이 맴돌았다. © 뉴스1

이보경 영등포구 캣맘 모임 대표는 "처음엔 무서웠는데 이젠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며 "5월부터 자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이제는 '고양이 밥주러 왔다'고 하면 이해해 주시고, 서로 인사하는 분들도 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우리는 되도록 조심해서 다니려고 한다"고 말했다.

사료는 봉투에 나누어 담았고 물은 미리 준비해 온 납짝한 그릇에 부었다. 사료는 울타리 위로 던져주고, 물 그릇은 울타리 바닥 작은 틈 사이로 넣어주기 위해서다. © 뉴스1

이들과 함께 둘러본 구시장 주변은 작은 구멍 하나 없이 높은 울타리로 빼곡히 막혀 있었다. 건물 옆쪽으로 돌아가자 구시장과의 경계 사이로 깨진 유리 파편과 버려진 집기류들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이 대표는 "보다시피 고양이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통로가 전혀 없다. 지난 6월 동물자유연대와 함께 새끼들부터 20여 마리를 구조했는데 구조된 고양이 모두 설사하고 피부병이 걸려 있었다. 안에 상황이 그만큼 열악하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구조된 고양이들은 동물자유연대의 도움으로 현재 치료를 받고 있다.

상인 중에는 갇힌 고양이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철거 전 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줬다는 상인 A씨는 "그래도 고양이들이 이곳에 살면서 쥐도 없어지고 좋았다"며 "아직 안에 고양이들이 많이 갇혀 있을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양이 2마리와 함께 앉아 있던 상인 B씨는 "새끼 때부터 밥을 주며 키운 반려묘인데 울타리 때문에 안에 갇혀 있었다"며 "밤늦게까지 돌려 달라고 요구해 겨우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없도록 막아 놓은 노량진 옛 수산시장 건물 © 뉴스1

동물자유연대 등에 따르면 현재 구시장 내부에는 40~50여 마리의 고양이가 갇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구시장 안 곳곳은 포크레인으로 땅이 일부 파헤쳐진 상태였다.

한 캣맘은 "지난 5월 서울시 '길고양이 중성화 날'에 용역업체 직원들의 감시를 받으며 고양이를 잡으러 다녔다. 처음엔 우리 뒤를 따라다니며 경계했지만 나중엔 친해져서 고양이 잡는 데도 많이 협조 해 줬다"며 "사실 사람 간 갈등이 극에 달했는데 고양이가 중요하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 고양이도 엄연한 생명체인데 그저 인간들의 싸움 때문에 목숨을 잃도록 내버려 둘 수만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노량진 옛 수산시장 주위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 © 뉴스1

구시장 부지의 본격적인 철거가 임박한 가운데 동물자유연대와 동네고양이 서울연대 측은 서울시와 수협에 생태통로 마련을 공식적으로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이번 상황은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서울시에서 '재건축, 재개발시 길고양이 보호조치' 정책까지 내놓은 만큼 공사 전 생태통로만은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할 계획"이라며 "생태통로가 중요한 이유는 많은 고양이들을 하루에 구조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직접 데리고 나오지 못하는 고양이들을 위해선 통로를 뚫어 밖으로 나오길 유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2014년도 8월 노량진수산시장 냉동창고가 폭파될 당시 그곳에 있던 수많은 고양이들이 죽었다"며 "그때 숨이 붙은 채 힘들어 하던 고양이의 모습은 상인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고 한다. 더이상 같은 일이 되풀이 되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시 수의공정보건팀의 한 관계자는 "현재 캣맘 측에서 고양이들을 위한 생태통로를 확보해 달라 요구해 내부적으로 검토를 한 다음 수협에 방문해 협의할 계획"이라며 "다만 그 땅이 공유지가 아닌 수산시장 건물이기 때문에 수협이 결정을 해야 할 사안이라 확답을 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그나마 틈이 조금 있는 울타리 밑으로 물 그릇을 넣어주고 있는 캣맘들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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