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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월요묵상] 타인·동물 고통을 자신 고통으로 느끼십니까
[배철현의 월요묵상] 타인·동물 고통을 자신 고통으로 느끼십니까
  • (서울=뉴스1)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 승인 2019.12.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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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고전문헌학자.© 뉴스1

(서울=뉴스1)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 2019년도 며칠 남지 않았다. 2010년대가 이렇게 쏜살같이 사라지고 있다. 과거는 아무리 장구하더라도 현재 시점에서 보면 언제나 순간이다.

137억년 전 빅뱅의 순간이나, 2019년 1월1일이나, 5분 전이나, 모두 지금을 기준으로 보면, 그 길이가 모두 순간(瞬間)이다. 아쉬운 2019년을 복기하며, 내 삶의 발자취를 가만히 떠올려본다.

올해 나는 최선을 경주했는가? 나에게 감동적인 일을 수행했는가? 2019년에 내가 한 일들 중 신비한 일이 있었다. 나에게 그런 마음과 용기가 어디에서 왔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지난 11월초, 나는 시골의 좁다란 골목길을 차를 운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이라 천천히 운행해야 했다. 이런 시골길을 지나다 보면, 1m 줄에 묶여 일생을 사는 개들과 마주치게 된다.

나는 한 농가주택 담벼락 밑에서 연신 짖어대는 두 마리 개를 봤다. 한 개는 흰둥이였고 다른 개는 깜둥이였다. 인간은 상대방에 대해 잘 모를 때, 그 대상의 신체 특징으로 기억한다. 흰둥이와 깜둥이는 내가 붙인 이름이다.

나는 목줄이 허리에 묶여있는 그 깜둥이가 이상해 차에서 내렸다. 목 주변은 상처로 뒤덮여 고통스러워 보였다. 개집은 앞뒤로 누더기처럼 뚫려 있었고 찌그러진 양철 먹이통엔 집주인이 가져다준 김치찌개 국물과 생선 가시가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추위에서 벌벌 떨고 있는 이 어린 개들 때문에 심란했다. 시골에 이사 온 후, 자연과 동물에 민감해졌다. 나는 두 마리 진돗개와 읍내 시장에서 발견한 유기견인 '예쁜이'를 키우는 견주로서, 흰둥이와 깜둥이가 추운 겨울밤 느낄 고통(苦痛)에 잠을 설쳤다.

3년 전 예쁜이는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 철물점 뒤편에 1m도 안 되는 쇠줄로 묶여 있었다. 예쁜이는 당시 배고파, 누군가 갖다버린 스티로폼을 뜯어먹고 있었다. 온몸엔 지독한 피부병이 걸려 진물이 나는 상처와 하얀 털이 엉겨붙어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처참해 이름을 역설적으로 예쁜이라 지어줬다.

나는 6개월에 걸쳐 예쁜이를 치료해줬다. 우리집 진돗개인 샤갈과 벨라가 예쁜이를 가족의 일원으로 수용하는 과정은 어려웠지만 감동적이었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책 한권 분량이 필요하다. 나는 우연히 본 그 두 마리 개가 마치 예쁜이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번 겨울 짧은 줄에 묶인 동네 8마리 개들에게 3m 목줄로 교체해주고, 겨울 집을 지어 환경을 개선해줬다. 내가 만난 시골 견주들은 나의 진심에 감사해했다. 나는 새로 조립한 방풍 개집 안에 볏짚을 두둑이 깔고 바람막이와 사료그릇과 물그릇을 부착해줬다.

흰둥이와 깜둥이가 내 마음을 아는지, 이내 꼬리를 치며 나를 반겼다. 내가 새로운 밥그릇에 사료를 주니, 두 마리는 신이 나서 금방 먹어치웠다.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료를 먹은 것 같다. 이들에게 사료는 미슐랭 레스토랑의 진귀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나는 타인의 집 마당에 불법 침입해 헌 개집들과 밥그릇을 치웠다. 나는 마당에 가득 쌓인 개똥을 치우고 땅을 평평하게 다졌다.

깜둥이를 자세히 보니 털 속 피부가 깊이 패어 피고름이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깜둥이는 목이 불편해 지속적으로 숨이 차올라 쇳소리를 내며 헐떡거렸다. 나는 아내와 그날 저녁 다시 그 집을 찾았다. 직장에 다니는 40대 후반 남편과 아내, 두 초등학생 아이 그리고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나는 생면부지 타인의 집 마루바닥에, 그 식구들과 어색하게 앉았다. 견주는 나의 간섭을 성가신 일이라 여기고 나를 쫓아낼 수도 있었다. 그 집주인은 내게 물었다. "왜 이런 수고를 하세요?" 나는 대답했다. "깜둥이의 고통이 내 고통 같아요."

눈물이 맺힌 내 눈을 보고 그들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그는 "감사합니다. 깜둥이의 병을 고쳐주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깜둥이를 동물병원으로 이동시켰다. 깜둥이의 혀가 파래지고 숨을 제대로 쉬질 못해 위급하게 수술했다.

수술 중 엑스레이에도 보이지 않았던 이물질이 목 깊은 곳에서 발견됐다. 그것은 두껍고 긴 노란 고무줄이었다. 그 고무줄은 살의 일부가 돼 신경조직과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동물병원 원장은 깜둥이 신경이 손상되지 않도록 섬세한 박리를 거듭하며 5시간 동안의 긴 수술을 무사히 마쳤다. 깜둥이의 목이 완쾌되기 위해서는 한 달 이상의 입원치료가 필요했다.

12월24일 촬영한 깜둥이의 모습.© 뉴스1

12월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내와 나는 회복 중인 깜둥이를 보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나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깜둥이는 내가 보던 그 개가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였다.

목이 완쾌돼 동물병원 다른 개들과 뛰어놀고 있었다. 몸 전체는 물론 눈까지 까만 깜둥이는 가슴과 네발 앞부분만 흰색이었다. 걷는 모습이 얼마나 고고한지! 걸을 때마다 가슴에 있는 다이아몬드 문양의 흰색 털이 반짝인다. 그것은 마치 새벽에 등장하는 수메르 샛별여신인 이난나(Inanna) 여신이 살짝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나는 깜둥이에게 어울리는 새로운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견주 가족에게 전 과정을 설명하고 간곡히 설득했다. 그리고 몇 주 전 깜둥이의 소유권을 인계받았다. 요즘 아내는 그 집에 홀로 남겨진 흰둥이를 위해 초등학생들에게 산책훈련을 가르쳐주고 있다. 우리는 태어난지 9개월 된 깜둥이에게 새로운 멋진 가족을 찾아줄 것이다.

미국 프린스턴대학 교수인 철학자 피터 싱어는 1975년에 출간한 '동물해방'이란 책에서 21세기 인류가 가져야할 혁신적인 윤리의식을 소개했다. 인류는 자신이 속한 '사람류' 이외의 동물을 하등하게 여기는 차별주의자다. 서양사상의 근간이 히브리 사상과 그리스 사상에서는 인간을 다른 동물보다 우월한 신의 형상을 지닌 동물로 자화자찬했다.

싱어는 인간이 지닌 오만(傲慢)을 '종차별'(種差別, speciesm)이란 용어로 설명한다. 종차별이란 인간이 동물이나 식물에 대한 조직적인 차별이자 학대를 지칭하는 용어다.

21세기 인류는 윤리를 인간중심이 아니라 생명 중심으로 전환해야할 시점에 왔다. 생명 중심 윤리의 핵심은 '고통'(苦痛)이다. 상대방이 고통을 느끼는 행위는 스스로 절제하고 법적으로도 절제해야 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고통에 취약한 동물을 학대하거나 방치하는 행위는 비도덕적이며 비인간적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자신과 다른 언어, 종교, 신체, 성적 성향, 피부색을 지닌 인간을 차별하고 착취해왔다.

인류문명의 발전은 이 차별을 하나둘씩 극복하는 과정이었다. 이제 인간중심이 아니라 생명-중심의 문명으로 대전환해야 할 갈림길에 서있다.

위대한 종교전통에서 말하는 최상의 가치인 그리스도교의 컴패션(compassion), 불교의 자비(慈悲), 유교의 용서(容恕)는 모두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이다. 우리는 역지사지 정신을 우선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동물인 개와 고양이에게 적용하기를 연습해야 한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유대인들이 생명을 구해준 쉰들러에게 선물한 반지에 적힌 인용구가 생각난다. '탈무드' 미쉬나 산헤드린 4장5절에 등장하는 문구이다. "한 인간을 구한 사람은 온 세상을 구한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이 문구를 다음과 같이 고치고 싶다. "한 동물의 생명을 구한 사람은 온 세상을 구한 것과 마찬가지다." 2019년은 나에게 묻는다. "당신은 생명을 구한 적이 있습니까? 자신의 가족이나 친척이 아닌, 타인과 동물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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